존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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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헨리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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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회장 · 구단주
마틴 브러튼 경
(2010)

존 헨리
(2010~)

현직



파일:fsg-white.png


존 윌리엄 헨리 2세
John William Henry II

출생
1949년 9월 13일 (74세)
일리노이주 퀸시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직업
펜웨이 스포츠 그룹 설립자 겸 소유주
NESN 소유주
보스턴 글로브 발행인
경력
플로리다 말린스 구단주 (1999~2002)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 (2002~ )
RFK 레이싱 소유주 (2007~ )
리버풀 FC 구단주 (2010~ )
슈퍼 리그 부회장 (2021~ )
피츠버그 펭귄스 구단주 (2021~ )
재산
36억 달러 (2021년 포브스 기준)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생애
3. 구단주 경력
5. 우승 경력
6. 가족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PA-10044662.jpg

보스턴 지역을 근거지로 둔 미국의 거대 스포츠 기업인 펜웨이 스포츠 그룹(Fenway Sports Group, 이하 FSG)의 소유주. 또한 보스턴 레드삭스보스턴 브루인스 전담 케이블 방송국인 NESN(New England Sports Network)의 오너이자 보스턴 지역 신문인 보스턴 글로브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본인이 오너로 있는 FSG가 소유한 스포츠 팀으로는 보스턴 레드삭스리버풀 FC, 피츠버그 펭귄스, 나스카 시리즈에 참가하는 러쉬 펜웨이 레이싱 팀이 있다. 보스턴 팬들에게는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리고 우승컵을 가져온 구단주로, 리버풀 팬들에게는 맘에 안차는 미국식 자본주의 경영으로 이윤 추구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1] 이중적인 평을 듣는 인물이다. 다만 이러나저러나 자신이 인수한 팀들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선 평가받을 점이 있는 구단주다.


2. 생애[편집]


헨리는 1949년 9월 13일 일리노이주의 퀸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콩을 재배하는 농부였고 그는 농가에서 15살까지 살다가 캘리포니아주의 애플 벨리로 이사갔다. 빅터 벨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헨리는 빅터 벨리 대학에 입학했고 거기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도중에 중퇴했다. 헨리는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는 기술을 학습했고 계절 변동 또는 토지 황폐화로 인한 가격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초 교육을 습득했다.

1976년, 레이놀드 증권회사의 상품 중개인이 다른 농부들을 도와주는 일을 맡아 달라고 제의했지만 헨리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그는 노르웨이에서 그의 첫번째 아내와 여름 신혼 여행을 갔다 온 후 미래 상품매매 손익계정을 관리하기 위해 추세추종전략(trend following)을 기반으로 한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성공적으로 자신만의 경영 전략을 고안해냈고 1981년 존 W. 헨리 & 컴퍼니(약칭 JWH)를 설립했다. 그 후 헨리는 탁월한 사업 수완을 발휘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여 미국 최고의 갑부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그의 자산은 26억 달러(포브스 2017년 기준)로 추정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3. 구단주 경력[편집]


헨리는 어린 시절 스탠 뮤지얼의 팬이었고 그가 속한 야구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열렬히 응원했다. 그는 사업에서 성공한 뒤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데 뜻을 두고 1989년 미국 베이스볼 마이너리그에 속한 트리플 A 퍼시픽 코스트 리그 야구팀인 투산 토로스(Tucson Toros)를 인수했다. 또한 그는 은퇴한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겨울 야구 리그를 운영하는 시니어 프로야구협회를 공동 창립하기도 했다. 1990년, 그는 투산 토로스의 지분을 판 후 NBA 올랜도 매직의 지분 일부를 구입했고 NHL 탬파베이 라이트닝의 지분 일부를 사들였고 또한 1991년에는 뉴욕 양키스의 지분 일부를 구입하기도 했다. 이렇듯 여러 스포츠계를 찔러보던 헨리는 1999년 1억 5800만 달러를 지불하고 플로리다 말린스의 구단주로 부임했다가 2002년 1월 제프리 로리아에게 구단주 자리를 넘겨줬다.[2]


3.1. 보스턴 레드삭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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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엡스타인과 존 헨리

2002년 7월, 헨리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인수하고 새 구단주로 부임했다. 그는 취임식 자리에서 "밤비노의 저주를 부숴버리겠다."라고 공언했다. 구단주 부임 후, 헨리는 레리 루치아노를 클럽 사장에 임명했고 세이버매트리션 야구 전문가 빌 제임스를 경영 자문에 전격 임명했다. 또한 헨리는 8년간 보스턴의 단장으로 활약했던 댄 듀켓을 경질하고[3] 마이클 포트를 임시 단장으로 고용해 2002 시즌을 마무리 한 후 테오 엡스타인을 새 단장에 임명했다. 사실 그는 '머니볼'을 현실에 구현해 명성이 자자했던 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을 고용하려 했다. 그러나 빌리 빈이 장고 끝에 거절의 뜻을 밝히자[4], 헨리는 샌디에이고 대학 로스쿨 출신이자 래리 루치아노 사장과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일한 바 있는 서른 살 청년을 전격 단장에 임명했다.

그의 이러한 움직임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신임 단장 테오 엡스타인머니볼 이론과 세이버메트릭스에 따른 야구 스탯을 적절히 이용해 구단 개혁을 착실히 수행했고 마침내 2004년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에 86년만의 우승을 안겨주는 데 성공했다. 이후 보스턴은 2007년에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했고 엡스타인이 떠난 후 몇 년 간 부침을 겪다가 2013년2018년에 또 다시 우승하며 21세기 명실상부한 명문팀으로 부활시켰다.[5]

한편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영원한 홈그라운드 펜웨이 파크의 리모델링에도 크게 기여했다. 1990년대 중반 메이저리그에 신축구장 붐이 불었을 때 레드삭스 구단과 보스턴 시 정부도 구장 신축안이었던 '뉴 펜웨이 파크' 프로젝트를 계획했고 1999년 5월 15일에 존 핼링턴 레드삭스 CEO가 신축구장 계획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레드삭스의 골수팬들은 신축 계획안을 반대했다. 오랜 세월 자신들과 함께 해온 구장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펜웨이 파크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낡을 대로 낡아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쓰기 어려웠고 리모델링을 하기에는 돈이 턱없이 많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2년 구단주로 부임한 헨리는 통 크게도 3억 달러를 들여 리모델링 공사에 착수했다. 좌석 교체, 편의시설 확충은 물론 2002년에는 펜웨이 파크의 상징인 그린몬스터 위에 관중석을 새로 설치했다. 신축구장 짓는 돈과 맞먹을 정도의 돈이 들었지만 리뉴얼이 끝난 펜웨이 파크는 앞으로도 100년은 끄떡없는 구장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3.2. 리버풀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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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헨리와 리버풀 FC 의장인 톰 워너

2010년 4월 16일, 리버풀의 톰 힉스조지 질레트 주니어 구단주는 리버풀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인수했던 금액의 3배의 가격으로 판매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가능하면 4배 가격으로 받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리버풀을 인수할 당시 들였던 돈은 2억 1890만 파운드였으니 매각 가격을 6억 파운드에서 8억 파운드로 매긴 셈이다. 그러나 리버풀이 아무리 명문 구단이라지만 어느 누구도 이 엄청난 가격을 들여가며 인수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리버풀 보드진은 질레트와 힉스가 구단을 부당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영국 법원에 두 사람의 구단주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힉스와 질레트는 그들을 "회사 자산 약탈자"라고 묘사하고 리버풀이 탐욕자들에 의해 진이 빠지고 있다고 비난했다.[6]

2010년 10월, 리버풀 보드진은 존 헨리의 FSG에게 구단을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톰 힉스 구단주는 보드진이 자신의 의향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인수자를 멋대로 정했다며 그들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리버풀 보드진은 즉각 해고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당시 리버풀은 톰 힉스, 조지 질레트의 엉성한 팀 운영으로 인해 빚이 천정부지로 쌓였고 제때에 인수자를 구하지 못하면 파산당할 지경에 처해 있었다. 다행히 10월 15일 법정이 리버풀 보드진의 손을 들어줬고 FSG는 3억 파운드 가량의 인수금을 들여 리버풀을 인수했다.

그후 존 헨리는 로이 호지슨의 다음으로 리버풀의 레전드 케니 달글리쉬를 임시 감독으로 고용했고 달글리쉬는 하위권에 처진 리버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해 2010-11 시즌을 좋은 분위기 속에서 끝마쳤다. 그렇게 달글리쉬는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1-12 시즌을 맞았으나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자[7] 헨리는 시즌이 끝난 후 달글리쉬를 경질하고 스완지 시티에서 훌륭한 지도력을 보여줬던 브랜던 로저스를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로저스는 차츰 전력을 끌어올려 2013-14 시즌에 눈부신 성공을 거두는 듯 했지만 수비 불안을 극복하지 못해 막판에 우승을 놓치고 리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2014-15 시즌에 급격한 경기력 저하로 부진을 겪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고 2015-16 시즌에도 부진하자 결국 시즌 중반인 2015년 10월 4일에 경질되었다.

2015년 10월 8일, 존 헨리는 장기적인 비전으로 위르겐 클롭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클롭은 암흑기에 허덕이던 리버풀을 부활시키며 2016-17 시즌에는 리그 4위권 복귀, 17-18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행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18-19 시즌에는 14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을 유럽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냈고, 이듬해 19-20 시즌에는 UEFA 슈퍼컵FIFA 클럽 월드컵 우승에 이어, 클럽의 오랜 염원이었던 30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까지 달성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2021년 슈퍼 리그에서 창립 팀들이 탈퇴하기 시작한 후 계획이 파토될 상황이 다가오자 구단주로는 유일하게 사과 영상을 올렸다. 당시 FSG 측에서 리버풀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후로도 구단주로 남아있어 단순 루머가 되었다.

그러다가 2022년 11월 7일, 동시다발적으로 FSG가 리버풀의 매각을 결정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FSG도 이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서 리버풀은 또 다른 역사적인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FSG와 리버풀의 동행은 끝이 나는 줄 알았으나 2023년 2월 돌연 매각 의사를 철회하고 일부 지분 매각으로 선회하며 일단 계속 동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팬들에게 욕먹고 미국 구단주중 누가 최악이냐는 얘기에 매번 존 헨리가 나오고는 하지만 매년 더한 최악의 빌런들이 나와 본의 아닌 재평가를 받고있다.[8]


4.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존 헨리/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우승 경력[편집]





6. 가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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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dn1.bostonmagazine.com/53-1056x895.jpg

1976년에 마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나 얼마 안 가 이혼했다. 그리고 1993년에 두 번째 결혼했지만 2007년에 이혼했고 2009년에 29세 연하의 1978년생 린다 피주티(Linda Pizzuti)와 결혼했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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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에드윈 베리 || 1904~1909 || 새 이사회 구성 ||
|| 4대 || [[파일: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 [[존 맥케나]] || 1909~1913 || 최초의 감독 출신 회장[br]최초의 외국인 회장 ||
|| 5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존 애스버리 || 1913~1917 || ||
|| 6대 || [[파일: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 [[존 맥케나]] || 1917~1919 || 최초의 중임 회장 ||
|| 7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윌리엄 윌리엄스 || 1919~19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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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토마스 크롬튼 || 1926~1932 || ||
|| 10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왈터 카트라이트 || 1932~1935 || ||
|| 11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윌리엄 해롭 || 1935~19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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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조지 리차즈 || 1950~1953 || ||
|| 16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윌리엄 해롭 || 1953~1956 || 중임/재임 중 타계 ||
|| 17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T. V. 윌리엄스 || 1956~1964 || ||
|| 18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시드니 리크스 || 1964~1967 || 새 이사회 구성 ||
|| 19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해롤드 카트라이트 || 1967~1969 || ||
|| 20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허버트 로버트 || 1944~1947 || 재임 중 타계 ||
|| 21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존 스미스 || 1973~1990 || 최장 기간 재임 회장 ||
|| 22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노엘 화이트 || 1990~1991 || ||
|| 23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데이비드 무어스 || 1991~2007 || ||
|| 24대 ||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 [[톰 힉스]] & 조지 질레트 주니어 || 2007~2010 || 최초의 공동 구단주[br]최초의 미국인 구단주 ||
|| 25대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마틴 브러튼 경 || 2010 || 구단 매각을 위한 임시 구단주 ||
|| 26대 ||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 [[존 헨리]] || 2010~ || ||
||<-5><bgcolor=#D00027> '''{{{#FFFFFF 참고 사항}}}''' ||
||<-5><bgcolor=#ffffff> {{{#191919 * 리버풀 FC의 회장은 구단 이사회가 선출하는 최고직이었으나, 데이비드 무어스 이후 구단 지분 과반 이상을 소유해 구단주로 명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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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스태프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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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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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헨리
John William Henry ll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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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워너
Tom Werner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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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고든
Michael Gordo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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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이건
Michael Egan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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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달글리시
Kenny Dalglish, MBE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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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호건
Billy Hogan
C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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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스캐멀
Matt Scammell
CO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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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휴즈
Andy Hughes
스포팅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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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르크 슈마트케
Jörg Schmadtke
스태프
직책
국적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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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롭
Jürgen Klopp
수석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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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크라비츠
Peter Krawie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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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 레인더스
Pep Lijnders
골키퍼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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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아흐터베르흐
John Achter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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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로빈슨
Jack 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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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지우 타파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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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디벨롭먼트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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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르 마투스
Vítor Matos
피트니스 및 컨디셔닝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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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코른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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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및 퍼포먼스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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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슐룸베르거
Andreas Schlumberger
정골의학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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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제스 반덴 오웰레
Frigyes Vanden Auweele
1군 피트니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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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널 머터
Conall Murtagh
피트니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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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힐
John Hill
보조 피트니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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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페어클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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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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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피트니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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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라이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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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분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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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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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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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 아셴브레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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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루터스
Barry Lewtas
U-18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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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브릿지윌킨슨
Marc Bridge-Wilkinson
틀 정보
출처: 리버풀 FC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2023년 9월 03일
[A] Chief Commercial Officer, 최고 상업 관리자[B] Chief Operating Officer, 최고 운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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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쓸 땐 쓰는 스타일이지만, 클럽의 명성이나 기타 구단 씀씀이에 비해 짜긴 하다.[2] 훗날 두산 베어스단장이 말린스를 리빌딩 롤모델로 하려고 하다가 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사태가 일어났다.[3] 이전 직장이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NL 동부 상위권 팀으로 만든 바 있어 보스턴으로서는 이 부분을 높이 사 선수단 체질 개선을 맡겼다. 경질 전까지는 보스턴을 AL 동부 2위를 꾸준히 찍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가을야구에서 뉴욕 양키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번번히 밀렸다.[4] 그리고 오클랜드는 2020년 이후 지나친 비용삭감 행보로 욕을 먹고 있다.[5] 2000년 이후 근 20년간 벌어진 21번의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은 상기 언급한 4회 우승을 일궈냈다. 그 다음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3회 우승(2010, 2012, 2014). 보스턴의 철천지웬수 양키스는 생각보다 적은 2회 우승(2000, 2009)을 했다.[6] 이에 텍사스 레인저스, 댈러스 스타즈,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 팬들은 한 마음으로 힉스와 질레트를 깠다.[7] 그래도 리그컵 우승은 거머쥐며 무관을 끊어내긴 했다.[8] 이 분야 GOAT는 말할것도 없이 맨유의 글레이저 가문이 있고 떠오르고 있는 신성 AC 밀란의 제리 카디널도 거론된다. 그에 못지않은 구단주로 조 루이스도 있긴 하지만 이쪽은 미국 구단주는 아니니까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