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발

덤프버전 :

정현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우승반지

1985


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8.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199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0번
팀 창단

정현발
(1982~1986)


김정수
(1987~1992)
{{{#ff9933 [[청보 핀토스|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40번}}}
이춘근
(1982~1983)

정현발
(1987~1988)


조웅천
(1989~1990)
{{{#ff9933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72번}}}
강태정
(1986~1987)

정현발
(1989~1993)


이광근
(1995~2007)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37번}}}
김봉연
(1989~1994)

정현발
(1995)


임창용
(1996~1998)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74번}}}
결번

정현발
(1996~1997)


김형성
(199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3번
장효조
(1993~1998)

정현발
(1999~2000)


정인교
(2012~2014)


파일:external/news.unn.net/129302_19738_385.jpg
2014년 당시 인천재능대학 야구부 감독 시절.
정현발
鄭鉉發 | Jeong Hyeonbal

출생
1953년 3월 11일[1]
대구광역시
사망
2023년 9월 20일 (향년 70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경북고 - 한양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멤버
소속팀
롯데 자이언트 (1976~1981)
삼성 라이온즈 (1982~1986)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1987~1988)
지도자
태평양 돌핀스 2군 타격코치 (1989)
태평양 돌핀스 1군 타격코치 (1990~1993)
해태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1995~1996)[2]
해태 타이거즈 1군 주루코치 (1996)[3]
해태 타이거즈 타격코치 (1997)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1999~2000)[4]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00)[5]
경찰 야구단 수석코치 (2006~2007)
경찰 야구단 타격코치 (2008)
경찰 야구단 감독대행 (2008)
인천재능대학교 야구부 감독 (2014)
해설위원
대구방송 야구 해설위원 (2005)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프로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사망
5. 여담
6. 연도별 성적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삼성 라이온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선수 및 코치이자, 인천재능대학교 야구부의 초대 감독이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1971년 경북고의 전국대회 5관왕의 주역 중 하나로 한양대를 거쳐 1976년 실업팀 롯데에 입단했다. 롯데에서 중심타자로 활약하며 실업야구보다 고교야구의 인기가 더 많았던 시절에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타격 덕분에 팬층을 확보했던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였다.

당시 선수 중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깔끔하고 교과서적인 스윙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런 평가와 달리 국가대표 주전 경쟁은 대부분 다른 선수들에게 밀렸다.


2.2. 프로 경력[편집]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연고팀인 삼성에 입단했다. 그러나 이미 만 29세로 당시로서는 노장축에 속해 다른 선수들과 번갈아 가며 기용되기는 했으나 한방이 있는 타격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1987년 재일교포 투수 김기태의 트레이드 상대로 김근석과 함께 청보로 이적했고 이듬해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1989년부터 1993년까지 태평양 타격코치를,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해태 타격코치를,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롯데의 타격코치를 맡았다. 이후로 40대의 비교적 젊은 감독들이 부임하며 프로야구계를 떠나 대구방송 해설위원으로 있다가 2005년 말에 창단된 경찰 야구단의 수석코치 겸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이 때 키웠던 선수 중 대표적인 선수는 최형우. 원래 포수였던 최형우를 타격에 전념하라는 취지에서 외야수로 전향시켰고, 최형우는 2006년 북부리그 타격 7관왕을 달성하며 원 소속팀인 삼성에 금의환향했다.

2008년 6월 김용철 경찰청 감독이 사임하며 감독대행이 되었다가, 2009년에 유승안 신임 감독이 부임하며 경찰청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코치로서 평은 좋지만 프로팀 감독들보다 나이가 많아 프로팀 복귀는 어려울 듯하다.

2014년부터 인천에 위치한 인천재능대학교 야구부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4. 사망[편집]


이후 2023년 9월 20일 급성 뇌출혈로 사망했다. 향년 70세. #


5. 여담[편집]



  • 태평양 돌핀스 코치를 그만둔 후 잠시 야인으로 지내던 중 아내에게 택시기사라도 할까 얘기를 꺼내자, 아내는 "그러려면 나랑 이혼하고 해라. 난 야구선수랑 결혼했지, 택시기사랑 결혼한 거 아니다"고 답하여 겨우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2년만에 김응용 당시 해태 감독의 부름을 받고 프로코치로 복귀에 성공하게 된다.

  • 2009년에 박동희 기자가 병석에 누워 계신 자신의 아버지와의 야구 얘기를 꺼내면서 자기가 야구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버지와 함께 본 경기에서 정현발 선수한테 싸인을 받아서란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때 정현발 선수가 네이버 댓글에 박동희 아버지의 쾌유를 빌면서 싸인 관련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으나... 네이버 스포츠 댓글이 사라지며 해당 기사 댓글도 사라졌다. 당시 기사
이후 2021년 8월 본인의 유튜브에서도 이 일을 다시 언급하였다. '아들이랑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어떤 유명한 선수를 발견하고 식사 후 나가려는 해당 선수에게 사인을 받으려 했으나 그 선수가 아버지를 멸시하는 행동을 해서 아들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매우 분노하면서 '당시 정현발 선수의 행동은 단순히 팬에게 사인을 해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의 자존심을 살려 준 것이었다며 언급했다.

  • 마구마구 초창기시절 인기있는 노멀카드였다. 84년도는 파워가, 86년도는 컨택이 좋아서 잡덱이나 삼올에서 종종 대타로 등장하곤 했다.



6.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삼성
54
146
.288
42
9
1
5
26
31
4
29
.466
.403
1983
86
255
.231
59
11
0
6
25
30
2
24
.345
.292
1984
54
132
.280
37
6
0
10
28
23
2
19
.553
.368
1985
51
119
.269
32
7
0
3
19
13
1
14
.403
.343
1986
72
128
.328
42
5
1
4
23
17
2
26
.477
.439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7
청보
103
284
.264
75
16
2
13
(5위)
49
33
4
39
.472
.35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8
태평양
57
138
.188
26
5
0
5
17
11
0
16
.333
.269
KBO 통산
(7시즌)
477
1202
.260
313
59
4
46
187
158
15
167
.431
.347


7. 관련 문서[편집]



[1] 음력 1월 26일.[2] ~6월 24일[3] 6월 25일~[4] ~5월 8일[5] 5월 9일~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11:10:20에 나무위키 정현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