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수(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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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감독

파일:정종수축구인.jpg
이름
정종수
鄭種洙 / Chung Jong-Soo
출생
1961년 3월 27일 (63세)
경상남도 울주군[1]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2]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고려대학교 (1982~1983)
유공 코끼리 (1984~1989)
현대 호랑이 (1990~1995)
감독
울산 현대 호랑이 (1996~2000 / 2군 감독)
울산 현대 호랑이 (2000 / 감독대행)
울산 현대 호랑이 (2001~2004 / 수석코치)
정종수 어린이 축구교실 (2007~ / 총감독)
다롄 스더 (2011~2012 / 2군 감독)
상북중학교 (2015~2017)[3]
정종수 FC U-18 (2018~)
국가대표
38경기 3골 (대한민국 / 1982~1990)
병역
병역 특례[4]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은퇴 이후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현재 울산에서 초, 중, 고 전 연령대를 포함하는 유소년 축구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선수 시절 K리그에서 통산 225경기를 소화한 명수비수였으며 국가대표로도 오래 활약했다.


2. 클럽 경력[편집]


고려대학교 때부터 수비 유망주로 각광받았던 선수로, 1984년 유공 코끼리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23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이 활약상에 1985년부터 주로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1985, 1986 시즌은 유공에서 10경기도 뛰지 못했다. 멕시코 월드컵 이후 소속팀으로 복귀해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유공의 핵심 수비수로 뛰었고, 1987시즌에는 프로 통산 첫 골도 기록했다.

파일:91 ulsan hyundai squad.jpg
1991년 프로축구 개막전 때 현대 호랑이 선수들[5]
1990년 그의 고향 울산이 주 연고지인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게 된다. 첫 시즌 국가대표 차출 등으로 8경기 출장에 그친 적을 제외하면 1994년까지 매 시즌 30경기 가까이 뛰면서 팀의 핵심 수비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1994년부터는 플레잉 코치로 전환했으나 1994년에도 24경기를 소화하며 여전한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후 1995년 한 시즌을 더 선수로 등록한 그는 팀의 95 아디다스컵 우승에 일조했고 이후 1995 시즌 종료 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고려대학교 1학년이던 1982년부터 국가대표 2군에 선발되며 일찌감치 유망주로 눈도장을 받았다. 인도에서 열린 친선 국가대항전인 네루컵에 출전하며 A매치에 데뷔했고, 네루컵 1차전이자 국가대표 데뷔전인 인도와의 경기에서 데뷔골까지 넣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같은 해 열린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도 동행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국가대표팀 붙박이 선수로 뛰게 된 건 1984년 아시안컵 예선부터였고 이후 1984 아시안컵, 1986 멕시코 월드컵, 1986 서울 아시안게임에 연이어 출전해 선발과 교체를 오가면서 중용되었다.

파일:86 wc korea.jpg
86 멕시코 월드컵 한국 대표팀 프로필 일부[6]
이후 한동안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지 않다가 1989년 말보로컵에서 다시 국가대표에 복귀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과 본선 명단에 승선해 2회 연속 월드컵에 나가 2차전 스페인전, 마지막 우루과이전 등 본선 2경기에 출전했다. 월드컵 이후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까지 소화한 뒤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멀어졌다. 국가대표에서는 총 38경기 출전, 3득점을 기록했다.


4. 은퇴 이후[편집]


선수 생활 은퇴 직후부터 울산 현대에서 2군 감독부터 시작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정종수는, 1999년 K리그 올스타전 당시 남부선발팀 감독인 고재욱과 함께 코치로 등장하기도 했으나 2000년 울산 현대의 팀 부진으로 성적이 최하위까지 내려가자 고재욱 감독의 자진 사퇴 당시 짧은 감독 대행을 맡으며 처음 1군을 지휘해 6승 5패의 성적을 내면서 팀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비록 김정남 신임 감독이 선임된 후 바로 제자리로 내려갔지만, 2001 시즌부터는 아예 1군 코치로 합류해 수석코치까지 역임하면서 오랜기간동안 김정남 감독을 보좌했고 2002년, 2003년 K리그 준우승 등에 기여했다.

울산 현대에서 떠난 이후 2007년 울산 지역에서 유소년 축구 선수 양성에 힘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연령대를 가르치는 정종수 축구교실부터 시작해 2015년 산북중학교, 2018년 U-18 클럽팀인 정종수 FC를 창단하며 초-중-고 유소년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센터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2010년대 초 잠시 박성화 감독의 부름을 받아 중국 다롄 스더의 2군, 유소년 감독을 맡은 적을 제외하면 줄곧 지금까지 고향 울산에서 유소년 발굴에 힘쓰고 있다.


5. 여담[편집]


  • 차범근이 현대 호랑이 감독으로 있던 시절, 정종수는 차 감독의 토탈 사커 전술에 적응하지 못해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차범근이 '나도 분데스리가에서 36살 까지 뛰었다'며 일갈해 마음을 바로 잡았다는 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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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울산광역시 울주군[2] 레프트백 [3] 2018년부터 클럽형 축구단인 상북 FC로 전환[4]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금메달[5] 사진 앞줄 좌측에서 네 번째가 정종수.[6] 왼쪽이 정종수, 오른쪽이 김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