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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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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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니키타 흐루쇼프
시기
1945년 ~ 1954년[A]
1945년 ~ 1964년[A]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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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S. 트루먼 (1945 ~ 1953)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1953 ~ 1961)
존 F. 케네디 (1961 ~ 1963)
린든 B. 존슨 (1963 ~ 1969)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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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종료 (1945)
미국(제1세계)와 소련(제2세계)간의 냉전
마셜 플랜
매카시즘 광풍
트루먼 독트린 (1947)
한국전쟁 (1950 ~ 현재)[1]
쿠바 미사일 위기 (1962)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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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시대
다음
민권 시대 / 베트남 전쟁 시대[1]

1. 개요
2. 역사
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미국사의 시대 구분. 2차 대전 종전 이후부터 통킹만 사건 조작으로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적극 개입하기 전까지의 시점이다. 학자에 따라 민권 운동 활성화 이전까지의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영어로는 Post-World War II Era 또는 Post-War Era라고 한다.


2. 역사[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미국은 자본주의(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국가로, 소련은 공산주의(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국가로서 서로 양분됐고, 미국과 소련을 지지하는 국가들이 서로 줄을 서면서 냉전의 서막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공산주의는 식민지 출신 국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였고, 공산주의가 미국 역시 덮칠지도 모른다는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공포감은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발현된다.

그리스에서 공산파 게릴라와 정부 간의 그리스 내전이 발발한 것을 보고 미군이 직접 개입해 공산 게릴라와 싸운 직후, 미국에서는 공산 세력이 득세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특히나 1949년 소련의 스탈린 정권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중국 국공내전이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이러한 반소 반공주의적 분위기는 더욱 확대됐다. 미국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개입한 것도 이때였다. 따라서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UN에서 적극 항의하고 UN군 결성과 파병을 건의한다. 때마침 중국과 대만 중 누가 상임이사국이 되느냐로 싸우다가 소련이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을 거부한 상태라 소련을 제외한 전 상임이사국들이 찬성하여 기적적으로 UN군 파병이 이뤄진다.[2]

한국전쟁 참전 초기에는 스미스 특임대가 오산에서 관광먹고 24사단이 대전에서 패배하는 등 고전했지만 인천 상륙작전으로 결국 전세를 역전시키고, 이후에도 공산군과의 교전에서 주력 역할을 하는 한편 한국에 대한 막대한 물자 지원으로 6.25 전쟁 승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무튼 한국전쟁 3년 기간 동안 3만 6,000명의 전사자를 낸 미국은 자신의 세력권인 남한의 이승만 정부를 지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해리 S. 트루먼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20년 정권은 슬슬 고인 물은 썩는다고 부정부패가 이어졌다. 결국 6.25 전쟁을 끝내겠다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승리로 민주당 20년은 종식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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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주택광고

세계적으로는 소련과의 긴장 국면으로 위기의식이 높은 시대였으나, 경제적으로는 2차 세계 대전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승전국으로써 국력도 절정에 다다른데다 전후 재건 특수까지 누리며 베트남 전쟁 이전까지 광란의 20년대 이후 나타난 새로운 황금기를 맞게 된다.

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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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 B 학자에 따라 견해가 갈림[1] 민권 시대와 베트남 전쟁 시대는 구별된다. 후자의 경우 1964–1975[2] 그런데 계속된 연구로 밝혀진 그 당시 기록에 따르면, 소련의 불참은 전쟁 발발의 책임을 회피하고, 미국이 한반도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에 국력 회복 및 유럽에서의 공산화 작업을 위해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한다. 미국도 저게 안 통하면 다른 방식으로 파병을 할 방안을 강구해놓았으므로 어찌되었든 파병은 진행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