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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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가산점 제도 토론[편집]


2007년 7월 1일 KBS 1TV 심야토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군가산점 제도 찬성 측에 나와 끓어오르는 열의로 군가산점 제도에 찬성하는 뜻을 제시하며 남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인터넷에서는 '전거성'이라는 별칭을 얻었다.[1] 이때 나온 명언이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디 있습니까?"[2]

전원책 변호사의 군대에 대한 의견이 예비역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육군 중령까지 진급해 군단 법무참모로 야전에서 군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든게 직접 자신이 겪고 느낀 경험에서 우러나온 '군대'에 대한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국방일보에 실려있다. 글의 서두에 그냥 그렇게 운을 떼고 시작한다. 군대가 체질에 잘 맞았던 거 같다고. 군 생활 당시에 상하로 인정받는 유능한 군인이었다고 알려져 있고, 현역 때에도 육군 병사들 생활에 깊은 관심을 보여 일선에 시찰나가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중령이 시찰 나온다니까 밑의 부하들이 엄청 귀찮아했을 것이라는 회고가 인상적이다. 자기 딴에는 그냥 병사들 보러 가는 것이 재미있고 부대 생활을 보는 것이 의욕적이고 좋아서 그랬겠지만 밑의 부하들은 매번 청소에 검열에 데꿀멍했다는 얘기다. 그만큼 군대의 실상을 자세하게 인지한다는 증거다.

그렇지만, 사실 전원책은 토론에서 제도 개선을 위해 건설적인 제안을 한 적이 많지 않다. 그냥 현 제도 안에서 조금씩 고치는 정도로도 충분히 해결된다고 보는 입장. 토론을 보면 알겠지만 전원책은 군대에서 군인들 상대로 보장해주는 복지 제도도 까고 병 월급 상향도 까는 입장이다. 군대는 군대로서 최대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3] 굳이 말하자면 군가산점을 긍정[4]하며, 사기업 채용 시까지 가산점을 확대시키자는 정도가 군 장병들과 예비역을 위해 제안한 대안이다.


2. EBS 토론[편집]


이렇게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EBS 토론카페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진보 논객 오한숙희가 "동남아시아에 한국보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가 많다."라는 황당한 외국의 사례를 들자 "동남아에서 한국보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가 도대체 어디있느냐?"며 출처를 요구해서 반박했다. 오한숙희는 정확한 대답을 못하고 머쓱하게 웃어넘겼고, 가수 이안이 토론 과정에서 이안은 전원책 변호사에게 “혹시 자식 있으세요?”라고 질문했고, 전 변호사가 “아직 없다”라고 대답하자 “진짜요? 그러니까 이러시는구나”라며 손뼉을 치며 웃었고 전원책은 "방금 그 말은 정말 옳지 못한 토론 태도이며 정말 예의를 잃은 말입니다!"라며 화를 냈다. 전원책의 부인은 불임이었기 때문에 이안의 발언은 불임 여성들을 비롯한 많은 네티즌들에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다른 의견으로는 토론 당시 전원책의 성차별적인 발언이 있어 이안이 반박하는 과정에서 생긴일이라는 옹호 의견이있지만 발언 의도가 어떻든 해당 발언은 토론 주제와는 상관없는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었고 실제로 방송을 보고 상처를 받은 불임 여성들이 많았다. 이후 이안은 "자녀가 없는 분들의 깊은 슬픔을 미처 알지 못했던 제가 그분들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제 발언은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라고 사과문을 올리고 전원책에게도 다시 한 번 사과했다.[5]


3. 자유선진당 대변인[편집]


얼마 동안 자유선진당에 입당해서 대변인 역할을 맡았으며, 당의 방침이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퇴하고 탈당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이상돈 교수의 글 기네스북에 오를 나흘! 이후 토론 참여에는 보수 측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으며 2008년 6월 20일에는 촛불집회를 민중독재라고 평하고,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촛불시위는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바 있다. 2008년 12월 18일 100분 토론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촛불집회는 한미 FTA를 구실로 한 반정부 운동이다."라고 평가했다.

안보에서 막힐 정도로 비타협적인 모습이라 다른 사안에서도 그럴 것 같은 편견이 있지만 실제론 상당히 중도적인 면모를 많이 보이는데, 교육 개혁에 대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중학교 교육을 뿌리부터 뽑아 바꾸겠다."라고 말할 정도다.[6] 그렇다 해서 그를 결코 보수주의 틀 밖의 인물로 설명할 수 없다. 몇 가지 진보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해서 호주제 찬성, 공기업 민영화 찬성 등 그의 정치적 성향 기저에는 경제적으로 자유주의, 정치 사회적으로 보수주의가 기본 베이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탓인지 새누리당이나 이명박 계열의 실리주의 보수주의자들에겐 진보주의자 그 이상으로 비판적인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자유 시장질서와 공정 경쟁을 파괴하는 재벌들의 편법 상속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서구 자본주의 모델이지 세습 재벌들의 족벌 경영과 같은 한국만의 기형적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4. 노무현 정부 과거사 진상규명 관련 발언[편집]


과거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실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을 비판했다. '민족을 위한 수많은 일을 했음에도 본의가 확인되지 않은 몇 개의 부역 흔적만으로, 정부가 나서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몰아간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범죄가 될 것이다.'라며 중앙일보누가 광장의 단두대에 죽은 이들을 세우는가 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이후 채널 A 쾌도난마 방송에서는 몇가지 일화를 들며 본인은 윤치호를 친일파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고, 본인의 저서 자유의 적들에서는 시일야방성대곡을 언급하며 장지연의 서훈을 박탈한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5.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토론[편집]


2011년 8월 12일 SBS 시사토론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편에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원군으로 출연해서 곽노현 교육감,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과 토론을 벌였다. 토론 자체의 분량은 오세훈과 곽노현의 발언시간이 대부분이고 전원책과 홍헌호의 발언 기회는 매우 적었으나,[7] 워낙 양측의 토론 실력 격차가 심해서 곽노현 측은 그야말로 영혼까지 털렸다(...). 방송 이후 진보 성향의 사이트인 네이트의 기사들까지 보수성향 베플들이 전부 점령하며 보수층의 결집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주민투표는...

2011년 9월 20일에는 어버이연합, 대한민국수호원로회의, 미래청년연합, 자유수호국민운동연합 등 30여 개 보수 성향의 단체들이 연합해서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전원책의 서울시장 출마를 촉구하는 집회를 여는 일이 벌어졌다. # 기존 한나라당이 일으킨 수많은 논란과 한 달 전 시사토론에서 전원책이 보여준 임팩트가 주요한 원인으로 보여진다. 이에 전원책은 자신은 부족함이 많은 인물이라며 해당 단체들을 말려 출마를 고사했다. 이후 9월 29일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를 통해 '내가 출마해서 보수의 표를 분산시키게 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며 고사 이유를 밝혔다.[8]


6. 100분 토론 출연[편집]


2011년 11월 10일자 MBC 100분 토론에 모처럼 출연했는 데 얼굴이 너무 야위어서 구 정사갤 등지에서는 암 걸린 게 아니냐는 개드립이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자신이 자신있게 발언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이상적인 대안만을 내놓은 채 끝나 밋밋했다는 평. 그나마 그중 백미라면 조기숙[10]과의 배틀 정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매주 월요일 3부 토론에 가끔 나왔다.


7. 자유경제원 원장[편집]


2012년 3월경부터 2014년 3월 7일까지 자유경제원[11]원장을 맡았다. 2015년 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실시간 검색어에 자주 오르내렸던 그 전희경이 재직했던 곳이다. 그러나 전원책이 자유경제원에서 떠난 후 전희경이 들어왔기에 지금의 자유경제원과 전원책은 아무 관련 없다. 게다가 썰전 193회 방영분에서 유시민의 언급에 따르면 이곳을 떠나게 된 데는 전원책의 여러 가지 소신 발언에 의한 외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2]


8. JTBC 썰전 패널[편집]


사실상 전원책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해준 대표작. 이 작품을 통해 꼰대같은 이미지에서 '보수의 거성'이자 '귀여운 보수아재'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13]

2016년 1월 11일부터 이준석의 후임으로 썰전에 출연한다. 진보 측 담당 패널은 유시민 작가. 유시민 작가와 동반 출연 이후 썰전의 시청률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16년 1월 21일 방영분의 시청률은 4.2%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2016년 11월 3일 '최순실 특집' 방영분의 시청률이 전국 기준 9.287%(닐슨코리아 조사)로 동시간대 지상파 3사의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모두 꺾는 기염을 토했다.

2016년 4월 13일에 시행되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JTBC 우리의 선택SBS 국민의 선택에서 패널로 출연했다. 썰전에서 대중적인 호평을 받은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원책은 양쪽 담당자(손석희SBS NEWS PD)로부터 출연할 것을 협박(?)당해서 고민 끝에 나오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와중에 60대 드립을 치다가 손석희가 자신과 2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동안이란 사실을 알고 데꿀멍 & 쓴웃음

2016년 7월 7일 썰전 174회에서도 밝힌 적있지만 전두환 대통령의 12.12 사태를 당시 1989년에 군대 장교 신분에서 비판한 적이 있었다. 전원책 홈페이지 논문 다만 1989년이면 6월 항쟁 이후 노태우 정권 시절이긴 하지만 이때도 하나회가 건재했을 정도로 군부가 정치와 밀접했던 시대이다.


9.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 진행[편집]


2016년 10월 24일부터 TV조선의 시사 프로그램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의 진행을 맡았다.


10. TV조선 종합뉴스 9 앵커[편집]


2017년 7월 1일부터 윤정호 앵커를 대신하여, TV조선 종합뉴스 9의 앵커를 맡게 되었다. 프리랜서 계약이 아닌 TV조선 평기자 입사 형태로 합류한다고 한다. #

뉴스 오프닝 때 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해 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은 여전한 듯하다. 미숙한 뉴스 진행 능력과는 별개로 전원책 특유의 억양과 경상도 말씨 때문에 전달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평이 꽤 나쁘다. 술 마신 목소리같다고들 한다

그러나 앵커 자리를 맡은지 며칠 되지도 않아 TV조선 소속 기자 80여 명의 반발에 부딪혔다. 앵커 멘트도 주용중 보도본부장이 대필해주는 등 논란이 있었다고.

결국 5개월 만에 TV조선 메인뉴스 앵커직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TV조선 측도, 당사자도 '5개월 만의 교체' 사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낮은 시청률, 미숙한 진행 방식, 좋지 못한 발음, 부적절한 앵커멘트로 인해 사내 여론이 좋지 않은 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전원책 변호사, 5개월 만에 TV조선 메인뉴스 앵커 하차 후임자는 SBS 8 뉴스 앵커와 SBS 보도국 정치부장/국제부장을 역임한 신동욱으로 결정되었다.[14]


11. tvN 유아독존 출연[편집]


2017년 9월부터는 tvN의 시사예능 프로그램인 유아독존에 출연했다. 이때 "TV조선의 앵커를 하기 위해 썰전까지 하차했던 사람이 tvN에는 어떻게 출연하는 것인가?"란 여론에 대해 "TV조선의 앵커직을 수락하기 전부터 먼저 계약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썰전은 TV조선과 경쟁관계에 있는 JTBC(종합편성채널)이지만, tvN은 케이블채널이라 방송국에서도 넘어가줬다."라고 해명했다. #

2017년 12월 2일 전원책이 맡고있었던 tvN 유아독존이 종영되면서 사실상 고정패널의 모든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TV조선과의 내부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전원책은 스포츠경향 단독 인터뷰에서 갑자기 찾아온 체력저하문제로 인하여 잠시 쉬게 된 것이라고 토로하였다. 스포츠경향 직격인터뷰 - 신동욱에 앵커 내준 전원책


12. TV조선 강적들 패널[편집]


2018년을 기점으로 TV조선 시사 예능프로그램 강적들에 고정 패널을 맡게 되었다. 출연 이후 수호랑과 반다비를 국민들이 잘 모른다는(...) 주장을 했다가 한 방 먹었다. 그리고 김영철 방남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김영철 방남을 반대하며 통일대교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던 장제원 의원이 통일대교가 막히자 돌아서 전진교로 갔다며 분하다는 듯 말하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런데 거기까지 가서 그 시위 하면서 통일대교 말고도 전진교도 있는 줄 아무도 몰랐습니까? 자유한국당에 군필자 없습니까?"라고 해서 본의 아니게 장제원 의원을 어버버하게 만들었다.

특유의 강경한 외교-안보관을 제외하면 합리적인 면모도 있어서 오히려 같이 출연하는 정미경 전 의원보다 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 전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는 정치 보복이라며 드러나는 혐의에 침묵할 때, 그냥 이 전 대통령이 "다스 내꺼다!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으면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 다스 사장도 안 가지고 있는 다스 법인 카드를 영부인이 왜 쓰냐며 이건 옹호해주면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정 전 의원은 현역 한국당 당협위원장이라서...


13. 자유한국당 조강특위 위원[편집]


"만약에 나에게 전권을 주고 (정치인들) 먼지를 털라고 하면 전부 다 단두대로 다 보낼 자신이 있습니다."

- JTBC 썰전 2016년 1월 14일 전원책


"전례 없는 권한을 부여하겠다"

- 김병준 비대위원장


"친박, 비박 다 자르면 당내에 누가 남나? 과거는 묻지 말고 지금부터 피터지게 논쟁하자"

-월간조선 2018년 11월자 전원책 인터뷰 제목


"모두 단두대 보내겠다고 호언하던 전원책 변호사가 결국 혼자 단두대로 갔고 인적 청산 1호가 됐다."

-외부자들 2018년 11월 13일 진중권


2018년 10월 1일 자유한국당조강특위(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확정되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15]은 전원책을 '십고초려'하며 모셨다며 그에게 "전례 없는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이날 한국당은 전국 당협위원장 253명 전원을 사퇴시키며 이들의 재선임절차를 조강특위에게 맡기겠다고 하였다. 공식적인 조강특위 위원장은 당헌 당규에 따라 김용태 당 사무총장이 당연직으로 맡았지만, 사실상 전원책이 위원장 노릇을 하는 형태였다.

언론들이 전원책에게 이전에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될 당시에는 거절했는데 조강특위는 왜 받아들였냐고 하니까 비대위원장은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어서(...) 거절했지만, 조강특위는 직접 칼자루를 휘두르는 역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욕먹는 역이지만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김병준 입장에서도 자기가 직접 욕먹지 않기 위해 넘겨줬다는 말이 많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차도살인' 이라는 사자성어로 이번일을 표현한다.

썰전 때 부터 하도 "전권만 주면 모두 단두대로 보내겠습니다", "All 단두대 앞에선 자비란 없지", "기존에 부패한 보수는 단두대에 올려야 한다"를 외쳐대어 시청자들은 드디어 자유한국당의 기득권 세력들을 청산할 저승사자가 왔다며 열광했다. 그동안 자기 입으로 워낙 단두대를 외쳐서 '전원책=단두대'라는 이미지가 있는지라 언론들 역시 "자유한국당 조강특위 ‘십고초려’ 끝에 전원책 내정… 전원책 ‘단두대’ 어디로 향할까(아시아 타임즈)라며 모두가 자유한국당의 인적 청산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했다.

김병준은 사전에 당내 반발을 깔아뭉개며 253명의 지역위원장 전원의 사직서를 받고 판을 깔아두었다. 비유하자면 김병준이 253명의 지역위원장 전체를 단두대 앞으로 강제로 끌고 왔고 이제 전원책을 불러와 집행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김병준은 전원책에게 데스노트를 쥐어주고 여기에 이름만 적으면 되도록 해준 것이다. 여기에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전원책에게 조강특위 위원 중 외부위촉 위원 3명 전원을 마음대로 뽑을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 반대세력과 외부개입 없이 자신과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사람으로 골라 뽑을 수 있었다.

이에 자유한국당 내에서 친박, 친홍 등 대규모의 인적청산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보수진보 언론 가리지 않고, 김병준이 직접 친박을 청산하기 힘드니 전원책을 불러왔다고 진단하였고, 네티즌들은 드디어 All 단두대가 작동하겠다며 열광하였다. 그러나... 평소 전권만 주면 기존의 보수 정치인들을 단두대로 보내겠다는 전원책이 막상 전권을 받으니 역대급 통수를 칠 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파일:김병준 전원책.jpg

막상 전권을 받은 전원책을 단두대로 보내긴 커녕 친박, 비박 다 자르면 당내에 누가 남나라고 하며 아무도 안 쳐낼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오히려 기존의 극우-보수 세력들이 좋아할 말만 골라 했는데, 특히 "자유한국당의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16명은 방어권 보장 안 된 박근혜 재판에 왜 항의 안 했나?" 라며 박근혜 탄핵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하였으며, 오히려 박근혜 탄핵 문제로 분당했다가 복당한 복당파들을 "철새도 그렇게 치사한 철새가 없다."라고 비난 하였다. 그러자 언론에서는 그럼 비박 세력을 치겠냐고 하니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결국 전원책은 친박 비박 다치면 누가 남겠냐며 아무도 안치겠다고 하여 좌파, 우파, 언론, 국민 가리지 않고 모두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사실 "여의도 정치 9단"이라 불리는 민주평화당박지원 의원은 전원책 변호사에게 지금까지 정계에 오래 머물면서 이러한 인적청산이 처음부터 제대로 성공한 예를 본 적이 없다며 고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하며 이번 사태를 예측했다. 지금 상황상 한국당을 최대한 물갈이를 해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가 힘들고 한계가 명확하다고 학자들이 추측하고 있기도 하다.

조강특위는 어디까지나 기존의 자유한국당 기득권 세력을 정리하여 조직을 강화시키라고 만들었고, 전원책은 그러라고 십고초려 해서 모신 것이다. 그런데 전원책은 본연의 업무는 하지 않고, 당 운영에 간섭하려 하거나 박근혜 탄핵 문제를 다시 꺼내들어 왔다.

여기서 비대위는 뭐고 조강특위는 뭔지 정리하고 넘어가자면, 그동안 정당정치에서는 대선이나 총선, 지선[16]에서 패하면 당대표가 물러나고 비대위[17]가 들어서는게 관행이며 정당 규정에 나와있다. 즉 비대위원장은 임시 당대표, 비대위원회는 임시 당지도부인 것이다. 여기서 비대위의 역할이 당의 비상시기에 맞게 당 자체를 개혁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차기 전당대회 때 당대표를 뽑기 위해 관리만 해줘야 된다는 의견으로 갈린다. 성공한 비대위원장이라고 하면 천막당사 시설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문재인에게 위촉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꼽힌다.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당의 인적청산과 개혁을 실시하여 이후 선거에서 대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박근혜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직접 칼자루를 쥐고 의원들을 친 게 아니라 둘 다 공심위[18]를 구성해서 그들로 하여금 인적청산을 하게 했다. 그 공심위 역할이 바로 전원책의 조강특위인 것이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공천이 없으니 대신 김병준은 전국 당협위원장 253명의 사퇴서를 받아내서 이를 전원책의 조강특위에 넘겨주어 죽이든 살리든 인적청산을 할 수 있는 전례없는 권한을 준 것이다.

그런데 전원책은 친박 비박 다 치면 누가 남나며 인적청산을 거부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으며, 조강특위의 역할이 아닌 박근혜 문제나 당 운영 문제에만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당 운영 문제는 2019년 2월경 예정된 전당대회 대신에, 2019년 6~7월쯤으로 전당대회를 연기하자는 주장인데 이에 보수 쪽에서도 하루라도 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당대표를 뽑아 정상체제로 가야하는데 무슨 말이냐고 놀랐고, 진보 쪽 언론은 종신 비대위 체제로 가자는 거냐고 비웃었다.

그러자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전당대회는 예정대로 개최할 것이며 전원책에게 11월 8일 "언행에 유의하라"라며 자중할 것을 요청했다.김병준 "언행 유의하라" vs 전원책 "묵언수행"…끝내 갈라지나 그런데 전원책은 처음엔 "일요일(11일)까지 묵언 수행하겠다."라고 언론에 문자 메세지를 보내놓았는데... 이건 다 훼이크였고 바로 뉴시스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김병준 비대위원장에게 "눈앞에 권력이 왔다갔다 하니 그게 독약인 줄 모르고 그러는 것", "그런다고 자기에게 대권이 갈 줄 아느냐?" 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결국 다음 날인 11월 9일 1시 21분, 조강특위 위원으로 부임한지 고작 한 달여 만에 전격 퇴출되었다. 한국당 비대위 "전원책 조강특위 위원, 해촉 결정" 심지어 퇴출 통보도 대면이나 전화도 아닌 문자로 통보받는 굴욕까지 겪었다. 한국당, 전원책 문자 해고 이때 밝혀진 일인데 전원책은 평소 낮에는 오후 늦게까지 잠만 자고(...) 밤에 활동하는 스타일이라 그동안 당에서 전원책에게 할 얘기가 있으면 낮에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 유시민이 과거에 한 전원책 해촉,“어딜 가도 잘려” 발언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직에서 해촉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대위가 자신을 하청업체 취급하고 문자로 해촉 통지를 보낸 것에 대해 비대위에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전원책 "비대위가 나를 하청업체 취급…보수 재건 무너져", 전원책 "개혁 거부하는 정당에 무슨 미련 있겠나".[19] 그리고 해촉된 다음날에도 자유한국당을 향해 전원책의 뒤끝 "한국당, 마피아 보다 못한 계파 보스정치"라며 뒤끝 작렬하였다. 언론에서는 전원책이 섭외한 외부 조강특위 위원인 상성주, 이진곤, 전주혜 위원이 동반 사퇴하는 게 아닌가 예측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그들은 이후 성실하게 본연의 임무인 당협위원장 재임명 절차를 수행하며 임무를 마쳤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11월 14일에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김병준 “못 물러난다... 전원책한테? 할 말 없다” "우리 경제부총리보고 '당신은 말이야. 경제에 있어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국군 통수권까지 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라며 전원책을 월권을 꼬집었다. 아울러 전당대회 일정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같은 날 전원책은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김병준 비대위원장에 대한 인사 청탁 의혹을 터트리겠다는 늬앙스를 풍겨 언론을 들썩이게 하였다. '폭로' 없었던 전원책 회견…'불명예' 퇴진 그러나 이것도 훼이크였다. 전원책의 기자회견은 아무 내용 없이 '문자 해촉'에 대한 반감과 자신에게 통보에 앞서 언론이 먼저 알고 있었던 점에 대한 서운함을 피력하는 수준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자신과 뜻이 맞는 일부 의원들과 함께 신당 창당을 하겠다는 듯한 늬앙스를 팍팍 풍기고 다녀 여러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였다. 동월 19일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번에는 전원책과 인터뷰를 보면 전원책 “한국정치, 두목들의 정치... 마피아보다 못해”를 보면 '혁신과 대안' 이라는 이름으로 현역 의원등 10여명과 함께 새로운 보수 건설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며 12월 20일 이후에 공개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주장한다. 이에 김현정 앵커는 "몇 분이나 되세요? 10여 명 중에 현역 의원이 몇 분이나 되는지 정도까지는 얘기해 주실 수 있어야 되는 게 뭐냐 하면 지금 하도 뻥이라고들 하셔가지고. '이거 뻥 아니냐?' 이러셔서."라고 하는 모멸적인 질문을 서슴치 않았다. 이 시기에는 전원책이 입만 열면 뻥이라는거 슬슬 눈치채고 있었다. 이에 전원책은 "그건 제가 내기를 걸죠. 그렇지 않으면 제가 다시는 정치 평론을 하지 않는다든지. (참여 의원 숫자가) 다섯 손가락 이상은 넘죠."라고 까지 했다. 이에 언론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한 당일에 손학규 의원이 "전원책, 새로 창당한다고 되겠나" 라는 반응을 보인 정도.

12월 20일. 전원책이 새로운 보수 건설을 위해 뜻을 함께 하는 10여명의 현역 의원들을 공개한다는 그 날이 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까? 그런 거 없었다. 심지어 어느 언론도 12월 20일을 기다리다 전원책이 신당 공개 안 한다고 징징대는 곳이 없었다. 전부 듣고 잊어 먹었다.

결국 전원책은 그동안 전권만 주면 기득권 세력의 정치인들을 청소할 것 같은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 버리고, 확고부동한 신박 이미지만 얻었다. 썰전 시절부터 가끔 지적되어 왔는데, 전원책은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이념 보수자였을 뿐이었다. 엄청난 말빨과 드립력. 그리고 썰전 제작진들의 신들린 편집실력에 의해 순화되어 보였을 뿐이지. 여기에 문자 해촉이라는 수모 후에 김병준 비대위원장에 대한 폭로를 암시했던 기자회견이 그냥 알맹이 없이 개인적인 푸념으로 끝났고, 이어 '혁신과 대안'이라는 신당 모임 역시 뻥으로 끝나자 그의 기존의 이미지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이에 후반부로 갈수록 언론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평소 전원책의 All 단두대 이미지가 워낙 확고부동하여, 정치 뉴스를 잘 안보고 시사토크쇼만 보는 사람은 '전원책이 올단두대를 휘두르려고 하는데 이를 막는 지도부와 부딪쳐 해촉된 사건'으로 사실관계가 거꾸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링크 된 기사 몇 개만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인적청산을 강하게 요구했고 전원책이 박근혜, 태극기 세력 타령하며 반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묵언수행 하겠다는 허언, 김병준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허언, 자기와 함께하는 최소 10여명 이상의 현직의원들과 함께 신당을 만들겠다는 허언 등은 워낙 말도 안되는 기행이라 믿을 수 없었는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나의 전거성이 이럴리 없어

자신의 말이 허언이면 다시는 정치 평론을 안한다고 했는데, 한동안 잠잠하다가 21대 총선 때 슬슬 나와 정치 평론을 하다가, 2020년 4월 21일 김현정의 뉴스쇼에도 재출연 한다. 이때 자신이 예전에 조강특위 할 때 '친박비박 문제를 해결할려고 했는데 안 되었다.'며 두루뭉술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이 시기 출연한 4월 27일자 판도라에서는 박지원 의원이 전원책이 조강특위 때 문자해촉 당했다고 놀린다.

14. 오늘밤 김제동[편집]


12월 3일부터 고정출연한다. 고정코너를 맡기전에 이미 출연을 하기도 했었지만 시청률 저하등으로 제작진이 전원책 변호사를 레귤러 패널로 앉히는 강수를 두었다! 김제동과의 호흡은 놀랍게도 잘 맞는 편.[20] 엄밀히 따지자면 호흡이 맞다고 하기보단 둘간에 케미가 의외로 좋다... 시청자들이 걱정했던 분위기가 과열되는 현상과 폭발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되려 서로 킥킥대고 드립을 주고받는등 화기애애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같은 경상도 끼리 왜 발음을 못알아듣나,제작진이 음악선곡을 다른 걸로 해라, 김제동 씨도 출연료 지금 논란 있잖아 등등 생방송임에도 폭탄드립을 던지고 있는데, 이때마다 김제동이 그럭저럭 그걸 또 잘 받아친다. 다만 지식면에서 아직 얕은 김제동과 같이 전변호사도 한번 입이 트이면 멈추지 않는등 단점은 여전하다 예능적인 면에선 생방송중에 이런 돌발행동,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습이 꽤 먹혔는지 시청률은 되려 상승했다(...) 일단 재미 자체는 있기 때문이고 가끔 서론이 길기도 하지만 얘기 자체가 진짜 할말이 많아서 길어지는 경우도 많기때문이라 시청자들은 점입가경하게 되는듯. 아울러 앞서말했지만 분위기 자체가 딱히 나쁘지도 않다 아무래도 생방송이다 보니 서로 긴장하기도 하겠거니와 서로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이니 존중하는 모습이 더 눈에 띈다.


15. 유튜버로서의 활동(전원책TV망명방송)[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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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MBN 판도라 패널[편집]


2020년 1월 20일 부터 판도라 고정패널로 합류 하였다. 미래통합당에 상당히 비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희망이 없다는 말까지 할 정도다.

21대 총선 직전인 4월 13일 '내가 오늘 방송 나오기 전에 구슬을 만져봤는데 통합당이 1석이라도 더 이긴다면 정치지형이 바뀔 것이다.'라는 예측을 하였다. 함께 출연한 보수패널 '최진'도 통합당이 이길것이라고 하였는데 총선 전 보수인사들의 인식을 알 수 있다.[21][22]

또한 전원책은 이날 방송에서 2020년 차명진 세월호 유가족 망언 파동에 대해 "세월호 XXX발언의 진위여부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제명하면 어떡하나? 제명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라고 발언했다.[23]


17. 김태현의 정치쇼 출연[편집]


* 230703 尹 '반국가세력'? 정확히 저격한 말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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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인은 처음에 이 별명을 듣고 큰 별을 뜻하는 거성(巨星)인 줄 알고 좋아했다가 거성의 의미(巨(클 거) 聲(소리 성))를 알게 되자 실망했다(...).[2] 참고로 이때 상대 측 패널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홍미영 前 부평구청장이다.[3] 문제는 한국의 병 관련 제도가 다른 징병제 국가와 비교해도 상당히 열악한 수준인데, 그와 관련한 개선안도 그냥 까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 개선안도 현실적으로나 제도이론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보면 전원책이 딱히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각종 문제점 등을 열거하며 까는 것이지, 결코 대책없이 무작정 까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까긴 깐다 이는 한국의 군대 문제와 관련해서 개선안이랍시고 주장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실현할 수 있더라도 실효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원책 본인이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군인들 및 예비역들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군대의 실태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탕발림에 불과한 엉터리 개선안들을 시원하게 반박하기 때문이다.[4] 폐지되기 전까지의 군가산점 제도가 굉장히 미진했다고 평가하고 깠다.[5] 방송을 마치고, 이미 대기실에서 전원책에게 사과를 했으며 전원책은 사과를 받고 격려까지 해 주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안은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에 신청했으나 심사에서 떨어져서 최종 명단에 오르지는 못했다.[6] 100분 토론 500회 특집에서 20대의 취업난에 대한 문제로 초등학교, 중학교에 인문학 수업의 결여를 원인으로 제시했다. 여담으로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발언들은 그냥 상징적 의미지, 정치에 뜻을 두는 것은 아니다고. 여튼 진보적 성향 자체는 어느 정도 확고한 부분도 있어서 주 맞토론 상대방이던 진중권은 "왜 거기 계세요?"라고 물어볼 정도. 참고로 진보 성향인 진중권과는 사적인 자리에서 호형호제할 정도로 굉장히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 전원책의 발언만 편집한 분량이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8] 전원책이 이회창 캠프에서 일했던 전적을 생각해보면 실제 이인제를 겨냥해서 한 말일지도(...). 후에 다른 인터뷰를 통해 '당내 경선이었다면 나도 나갈 용의가 있었다'라고 밝혔다.[9] 솔직히 말하면 조상이라는 관계를 제외하면 단순 남인 만큼 증조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든지 솔직히 밝히고 자기는 그와 별개로 애국하면 되는 것인데 굳이 또 조상 쉴드를 치다가 역관광당했다...[10]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홍보수석을 역임한 경력이 있다. 대체로 친노 성향이며 정확히 말하자면 친노 세력의 존재 자체를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홍보수석 재직 중 구한말의 네임드 탐관오리 조병갑의 증손녀임이 알려지고 난 후, 조병갑은 동학 농민 운동의 정당성을 위한 희생양이며 조병갑이 동학 농민 운동의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은 역사적 오류라며 어디서 개 짖는 소리 안 나나 항변했다.[9] 하지만 결국 이에 대해 사과하고 청와대 홍보수석 자리에서 사퇴한 바가 있다. 이때 조병갑의 가계가 재조명되면서 조기숙의 조부뻘인 조강희도 친일 행각이 밝혀져서 조기숙에 대한 여론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된 고부 농민 봉기의 그 조병갑 맞다.[11] 본래 명칭은 자유기업원이었지만 원장으로 취임한 전원책이 현재의 자유경제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이유는 경제 단체가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춰져서는 안된다고 한다.[12] 유시민이 "자유경제원도 외압으로 나왔죠?"하고 묻자 전원책은 그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13] 실제로 썰전 200회에서 유시민이 전원책의 이미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야기한 별명이었다.[14] 신동욱 앵커는 만 5년을 넘기면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물론 TV조선 보도본부장까지 맡으면서 뉴스 제작을 총 지휘하고 있다. 뉴스특보만 주구장창 틀어대던 강효상 - 최희준 시절보다 크게 발전했다는 평.[15] 비상대책위원회[16] 심지어 열린우리당은 초미니 규모의 재보선까지[17] 비상대책위원회[18] 공천심사위원회[19] 다만 낮에는 계속 자기 때문에 평소처럼 문자로 통보한 것이라는 비대위 측 주장에는 딱히 아니라고 답변하지 않았다.[20] 그건 네 생각이고의 첫회 당시 전원책 변호사가 김제동이 이제 시간 얼마 안남았다 빨리 끊어야한다 할때 못가!라고 하는 장면을 보면 굉장히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볼수있다.[21] TV조선에서도 강적들 총선 직전 방송에서 보수패널들이 모두 이러한 예측을 했다. 비관적인 예측을 한 보수 인사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결과는 참패였기에 이들의 예측은 대부분 헛다리가 된 셈[22] 다만, 선거 후에 방송 출연에서 이야기하기론 전원책 변호사 또한 수도권에서 20석에 못미치는 의석을 얻을 것이란 예측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보수가 비등하게 이길 것이라는 말을 한 것은 의욕을 고무시켜서 한 사람이라도 컨벤션 효과를 의도하기 위함이였다고 말하였다. 실제로 통합당 내부에서는 수도권 20석 미만을 예측하였고 이 정보는 일부 지도부와 방송인에게 공유되었다는 점을 보자면 전원책 변호사는 통합당 내에서 극비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신망이 높은 방송인인 셈이다.[23] 여담으로 4월 17일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홍준표 의원도 차명진 제명은 잘못 한 것이라며 '그냥 유권자들이 선택하도록 나뒀어야지'라고 발언 했었다. 오랫동안 보수적 가치에 투신해온 인사들이 차명진 제명에 반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