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 자신을 3인칭 객관화, 객체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윤동주가 나를 자아분열하여 표현하기 때문에 이를 자아분열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드려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드려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사나이가 미워서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一九三九·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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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성찰의 매개체이다.[2] 화자가 바라는 이상과 동경의 세계이다.[3] 화자 자신을 3인칭 객관화, 객체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윤동주가 나를 자아분열하여 표현하기 때문에 이를 자아분열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