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재(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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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호는 오봉(晤峰)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2. 생애[편집]
1925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학교, 보성전문학교 경제과를 졸업하였다. 1952년 인촌 김성수의 개인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고흥문계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 이정래 대신 전라남도 보성군 선거구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양달승 후보에게 낙선하였다. 그러나 양달승 당선자가 부정선거를 저질러서 1969년 벌교읍에서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그 때는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황성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보성군-고흥군 선거구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신형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신형식 후보와 무소속 김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고 민주한국당에 입당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를 서울특별시 강남구(서초구 분구 전)로 옮겨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김형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다시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정부 여당이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하다가 대통령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되기도 했다. 그러나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낙선하자 1988년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국민당 김동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따라가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김 정치 청산을 주장하면서 통합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역임하였다.
2008년 12월 18일 오후 8시24분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3. 기타[편집]
국회 의정활동 기간 중 국회 재무위원회에서만 활동했고 다른 곳에서는 활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명석한 경제통"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2대 국회 당시, 야당의 예산안 투쟁을 주도하기도 했다.
사촌 동생 옥암 이경재는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제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여담으로 사촌동생인 이경재하고 1995년 이후 정치노선을 달리해(이중재는 그대로 민주당이 개편된 통합민주당에 잔류하였고, 이경재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때 사촌형과 달리 따라갔다.)1997년에 이중재는 한나라당에 합류해 보수로 전향하면서 두 사촌형제가 별세할 때 까지 서로 다른 정당 소속이었다.
장남 이종구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근무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제17, 18,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차남 이종욱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이고, 삼남 이종오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다 별세하였다.
4. 선거 이력[편집]
5. 소속 정당[편집]
6. 둘러보기[편집]
[A] A B 보성군[1] 전임자 양달승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2] 1972.10.17 자격박탈(10월 유신)[3] 보성군, 고흥군[4] 민주공화당 신형식 후보와 동반 당선[5] 강남구[6] 신한민주당 김형래 후보와 동반 당선[7] 1985.4.4 민주한국당 탈당 및 신한민주당 입당, 1987.4.8 신한민주당 탈당, 5.6 통일민주당 창당 합류, 10.29 탈당, 11.13 평화민주당 창당 합류[8] 6대 국회의원 선거벽보는 확인 되지 않고 있다. 이는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벽보 보존의 필요성을 못 느껴 선거벽보를 보존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으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비롯한 1950년대 부터 정치를 시작한 원로 정치인들의 선거벽보 상당수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9] 민주당에 흡수 합당[1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1] 5·16 군사정변으로 인한 정당 해산[12] 민주당과 신설 합당[13] 신한당과 신설 합당[14] 신한민주당 창당을 위한 탈당[15]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6]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7] 민주당과 신설 합당[18]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19]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