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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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교수, 정치인이다. 2008년 제23대 노동부장관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43년 7월 19일 경상북도 경산군(현 경산시)에서 태어났다. 부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61학번)을 졸업하고 1970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헌법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법 전공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육군에 학적보유병으로 입대해 1962년 상병으로 귀휴전역했다. 이후 6.3 항쟁에 참여했다가 2년간 제적된 바 있다. 석사 학위 취득 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에서 일하면서 일찍이 노동 분야에 몸 담았다. 1978년 7월부터 2년간 당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일했다. 1980년 8월부터는 인하대학교 법학부에 노동법 전공 교수로 임용되어 강의했고 박사학위 취득 이후에는 미국 코넬 대학교에 객원교수로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 시민연대회의 상임운영위원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3. 정치 활동[편집]
1995년 2월 민주자유당의 정책연구 싱크 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처음 진출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5공, 6공 출신들이 당을 이끌 수 없다는 발언으로 대표최고위원인 김윤환에 의해 사퇴한다.[1] 2007년 당시 이명박의 대선캠프 지원단체인 선진국민연대 상임의장을 맡았으며 2007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3.1. 노동부 장관[편집]
2008년 2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공장노동자와 교수를 같은 카테고리에서 볼 수 없다."며 대학교수의 노동자성을 부정하여 논란이 되었다. 또한 이날 1996년 12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노동부 고용정책심의위원회 위원을 맡았지만, 이 기간 6차례 열린 고용정책심의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자, 이에 대해서는 "고용 그 자체 문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실력이 없었다. 경제학자와 같은 수준에서 그런 얘기를 할 것은 아니었다"며 고용 문제를 주관해야 하는 노동부장관으로서의 역량이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임기 중에 저소득층 우선 취업지원정책인 취업성공패키지의 초석을 놓은 것이 업적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는 노동유연성 제고였기 때문에 노동계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 장관 퇴임 이후에는 국무총리실 행정협의조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교수직에 복귀하였다.
4. 사망[편집]
2016년 10월 20일 서울특별시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73세.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시안공원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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