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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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조고의 7세손
이승삭 | 李承朔

관직
<white,#000> 생원(生員), 호장(戶長)
본관
<white,#000> 전주 이씨

<white,#000> 승삭(承朔)
부친
<white,#000> 이염순
모친
<white,#000> 오씨(吳氏)
부인
<white,#000> 백씨(白氏)[1]
자녀
<white,#000> 이충경 등 3남
15대손
<white,#000> 태조
생몰년도
<white,#000> 미상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조선국성 전주 이씨시조 이한의 7대손.


2. 상세[편집]


이염순의 아들로 벼슬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생원 호장이었다. 배위는 시랑(侍郞) 백광현(白光賢)의 딸이다.

자녀는 3남이 있었는데 장남 이사팔(李四八), 차남 이삼팔(李三八), 3남 이충경이다.

`시랑'은 고려 때 육부(六部) 또는 육조(六曹)의 버금 벼슬로 조선조 때 참판(參判) 곧 요사이의 차관에 해당된다.

<완산실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승삭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하여 사람들이 동방의 효자라 칭했다. 나이 67세에 문과에 급제했는데, 향린산(香麟山)에 올라가 산맥을 보고 돌아오다가 청평산 (靑平山) 아래에 이르러 객사하였다. 왕이 예관(禮官)에게 명하여 호상(護喪)케 하고, 시호를 문효(文孝)라고 내렸으며, 서원에다 모시게 했는데 고려 말에 이르러 없어졌다.'

<동국세기>와 <충효전>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는데, 승삭이 화선(和善 : 和先)으로, 60세에 등과하여 65세에 벼슬이 평의사(平義使 : 平義士)에까지 이르렀는데, 갑자기 작고하여 국왕이 예관을 파견하여 호상하고, 평장사(平章使 : 平章事)로 증직하고 시호를 문학(文學) 이라 하고, 향린산 아래에다 서원을 짓고 모셨는데, 공근왕(恭勤王 : <충효전>에는 恭讓王) 때 소인배들이 참소하여 서원을 헐어 버렸다고 한다.


[1] 시랑(侍郞) 백광현(白光賢)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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