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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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조고의 증손자
이광희 | 李光禧

관직
<white,#000> 아간(阿干)
본관
<white,#000> 전주 이씨

<white,#000> 광희(光禧)
부친
<white,#000> 이천상(고려)
모친
<white,#000> 영일 정씨(迎日 鄭氏)
부인
<white,#000> 황씨(黃氏)[1]
자녀
<white,#000> 이입전 외 7남[2]
19대손
<white,#000> 태조
생몰년도
<white,#000> 미상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조선국성 전주 이씨시조 이한의 증손자.


2. 상세[편집]


고려시대 초기 이천상의 아들로 아간(阿干)을 지냈다. 배위는 대장군 황지선(黃志善)의 딸이다.

'아간'이란 벼슬은 '아척간'(阿尺干), '아찬'이라고도 하는데 신라 17등 관계의 제6위였다고 한다. 고려 초기에는 태조 왕건이 신라 및 태봉의 제도를 섞어서 사용했다.

'광희'(光禧)를 《씨족원류》(氏族源流)에서는 '광희'(光喜)로 썼다.

태조 이성계의 친구였던 이색(李穡: 1328∼1396)이 지은 <환조대왕 정릉 신도비명>(桓祖大王 定陵 神道碑銘)에는

전주 이씨는 대성(大姓)으로 신라 아간 광희가 사도삼중대광(司徒三重大匡) 입전(立全)을 낳고…

라고 기록하여 시조를 나말여초 시기의 인물인 이광희로 봤다. 이 신도비가 세워진 때는 조선 개국으로부터 불과 수십 년 전이었지만 이한, 이자연, 이천상 3대에 대한 기록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이 세 인물은 1393년 이성계의 언급을 통해 처음 등장한다.

《완산실록》에는 별다른 일화가 없고, 《동국세기》와 《충효전》에는 '세직'(世稷 : 世直)으로 시조를 삼아, 중국 당나라의 황실인 농서 이씨의 종실로 있다가 우리 나라로 건너와 전라도 전주에 세거하면서 전주 이씨의 시조가 된 양으로 기록해 놓았는데, 그것이 세대로는 이광희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세직공은 훌륭한 인물로 문장과 도덕이 뛰어난 당대의 은둔 군자인데 아들 8명을 두었다. 공은 이 아들들에게 형제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며 참언과 재물을 멀리하라고 경계했다. 그러나 아들 8형제 중에 한 명만이 대를 잇고, 나머지는 전염병에 모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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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장군 황지선(黃志善)의 딸이다.[2] 여덟 명의 형제들이 있었으나 이입전 외에는 모두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한다.(《동국세기》와 《충효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