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프버전이 더 최근에 편집되었을 수 있습니다. > 덤프판 보기
이궁진
최근 편집일시 :
분류
1. 개요[편집]
이궁진(李宮進, 생몰년 미상)은 고려의 관료로 생전 한림(翰林) 또는 호장을 지냈으며 이진유의 아들이자 이용부의 아버지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원조부(遠祖父)이다.
그의 아들 이용부가 무신정권의 초대 수장인 이의방과 조선 태조의 열조부인 이린의 아버지이다. 또한 태조 이전에서 갈라진 전주 이씨 시중공파(侍中公派)의 시조인 이단신(李端信)의 아버지가 이궁진이다.
2. 생애[편집]
완산실록과 동국세기, 충효전의 내용이 다소 다르게 전해지며, 완산실록에 따르면 아내는 이씨(李氏), 동국세기 및 충효전에 따르면 아내는 김씨(金氏)이다. 또한 완산실록의 관직과 이름은 한림(翰林) 이궁진이나 동국세기 및 충효전에 따르면 호장(戶長) 이어열(李餘說)이다.
그는 슬하에 장남 이사원(李四原), 차남 이삼원(李三原), 3남 이용부, 3남 이단신(李團申)을 낳았다.
2.1. 완산실록[편집]
언제 태어났는지는 불명이나 15세에 이름이 실전된 선생 밑에서 수학하였으며, 27세가 되자 과거에 급제했고 호류궁(琥琉宮) 교수관(敎授官)에 임명받았고 인종에 의해 한림원으로 이직하여 그곳에서 일했다. 그러나 이듬해에 모함을 받아 귀양을 갔고 그곳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2.2. 동국세기 및 충효전[편집]
동국세기에선 이름이 이어열(李餘說)로 나타나며, 15세에 김대유(金大有)의 밑에서 수학하였다고 한다. 또한 김대유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기에 아내도 이씨가 아닌 김씨(金氏)이며 이궁진이 27세가 되던 해 과거에 합격하자 홀유궁(屹留宮)의 교수관(敎授官)으로 임명받았는데 모든 선비들이 그에게 몰려들 정도로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이후, 배륭대군(裴隆大君 또는 濱龍大君)이란 자가 이궁진의 기상과 문장을 보고 인종에게 이궁진을 대제학(大提學)에 임명시킬 것을 건하였다. 그러나 이궁진을 질투하는 자들이 많아 본인은 대제학을 거부했고 하야한 후 죽었다고 한다.
3. 계보[편집]
3.1. 선조[편집]
3.2. 자녀[편집]
- 장남 이사원(李四原)
- 차남 이삼원(李三原)
- 3남: 이용부
- 4남: 이단신(李端信)
3.3. 후손[편집]
4. 팔고조도[편집]
5. 참고 항목[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02-16 15:46:38에 나무위키 이궁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3 03:53:48에 나무위키 이궁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