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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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orld Rugby logo.png
정식 명칭
World Rugby
약칭
WR
창설 연도
1887년
본부
아일랜드 더블린
공식 언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회장
빌 보몬트 (Bill Beaumont, CBE, DL[1])
부회장
베르나르 라포르트 (Bernard Laporte)
CEO
앨런 길핀 (Alan Gilpin)
가입
국제올림픽위원회
소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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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지역별 산하 단체
4. 주관 대회
5. 국가대표팀 출전 관련 규정
6. 월드 럭비 랭킹
7. 상훈



1. 개요[편집]


World Rugby

월드 럭비(World Rugby)는 럭비 유니언의 국제 기구이며, 1886년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가 "국제 럭비 풋볼 위원회(International Rugby Football Board, IRFB)"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하였으며, 1890년에 잉글랜드가 가입하였다.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49년에 정식 회원국이 되었으며, 1978년에는 프랑스가, 1987년부터 1999년까지 전세계에서 80여 회원국들이 가입했다. 1998년에 국제 럭비 위원회(International Rugby Board, IRB)로 개칭되었고, 2014년 11월에는 현재의 명칭인 월드 럭비(World Rugby)로 개칭되었다.

15인제 럭비 유니언, 7인제 럭비 세븐스, 10인제 럭비 텐스에 관해 규칙을 만들고 하부 조직 및 유관 대회를 관리한다.

2. 역사[편집]


파일:Scotland v England.jpg

1885년까지 럭비 풋볼(Rugby Football)의 규칙들은 잉글랜드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1884년 스코틀랜드잉글랜드의 국제 럭비 경기에서 트라이(Try)에[2]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잉글랜드는 트라이(Try)라고 말했지만 스코틀랜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서신 교환에서 잉글랜드는 럭비 규칙들을 만들었다는 명목을 내세우며 그것이 트라이(Try)였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곧 트라이(Try)라고 주장했다. 결국 스코틀랜드는 1885년 잉글랜드와의 Home Nations Championship 경기를 거부하였다. 이 논쟁 이후, 잉글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홈 네이션스(Home Nations) 국가들에 해당하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홈 유니온(Home Union)들은 럭비 폿볼의 표준 규칙에 동의하는 국제 연합을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이 세 나라는 1886년 더블린에서 만났지만, 공식적인 규정은 합의되지 않았다. 1887년 12월 5일, 아일랜드 럭비 풋볼 유니온,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3], 웨일스 럭비 유니온의 위원들이 잉글랜드의 맨체스터에서 만나 국제 럭비 풋볼 위원회(International Rugby Football Board, IRFB)의 첫 네 가지 원칙을 작성하였다. 잉글랜드는 더 많은 클럽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사회에서 더 많은 클럽들을 얻기 위해서는 더 큰 대표자가 맡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IRFB의 설립과 가입을 거절했다. 잉글랜드는 또한 국제 럭비 풋볼 위원회가 경기의 공인된 규칙을 만드는 기구라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국제 럭비 풋볼 위원회는 회원국들이 RFU(럭비 풋볼 유니온)가 IRFB에 가입할 때까지 잉글랜드와 경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이에 따라 1888년과 1889년 사이에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1890년, 잉글랜드는 국제 럭비 풋볼 위원회(IRFB)에 가입하여 6석을 얻었고, 다른 유니온들은 각각 2석을 얻었다. 같은 해, 국제 럭비 풋볼 위원회(IRFB)는 럭비 유니언의 첫 번째 국제 규칙을 만들었다.

파일:IRB Letter.png
IRFB의 첫 번째 공식 회의록

이미 1910년부터 파이브 네이션스 챔피언십에도 참여해오고 있었던 프랑스는 1919년 프랑스 럭비 연맹이 국제 럭비 풋볼 위원회(IRFB)의 산하 기구로 발족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럭비 연맹이 자국 프로 리그를 창설함으로써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하던 IRFB와 갈등을 빚고 1932년 퇴출된다. 퇴출된 프랑스 럭비 연맹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함께 1934년, FIRA(Federation Internationale de Rugby Amateur, 국제 아마추어 럭비 연맹, 현 럭비 유럽)를 창설하였다. 그러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 럭비 연맹과 홈 네이션스 간의 교류가 다시 시작되고, 1947년 프랑스가 다시 파이브 네이션스 챔피언십에 참여하게 되면서 IRFB와 FIRA, 둘 사이의 경쟁적인 관계는 풀어지게 되었다. 이후 1978년도에 프랑스 럭비 연맹이 IRFB(현 월드 럭비)에 다시 가입하기에 이른다. 1987년~1999년까지 전세계에서 80여 개의 국가들이 IRFB에 가입하게 되고, 1995년에는 월드 럭비가 럭비 유니언에 전면 프로페셔널리즘을 도입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2000년 이후로는 이탈리아까지 파이브 네이션스 챔피언십에 참가하면서 오늘날의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이 되었다. 기구의 명칭은 1998년에 국제 럭비 위원회(International Rugby Board, IRB)로 개칭되었고, 2014년 11월에 현재의 명칭인 월드 럭비(World Rugby)로 개칭되었다.

3. 지역별 산하 단체[편집]


  • 럭비 아프리카 - 월드럭비 회원 21개국, 준회원 3개국, 비회원 13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 아시아 럭비 - 월드럭비 회원 19개국, 준회원 9개국, 비회원 8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 럭비 유럽 - 월드럭비 회원 39개국, 비회원 6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 럭비 아메리카스 노스 - 월드럭비 회원 14개국, 준회원 6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 수드아메리카 럭비 - 월드럭비 회원 9개국, 비회원 7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 오세아니아 럭비 - 월드럭비 회원 13개국, 준회원 2개국, 비회원 1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4. 주관 대회[편집]


월드 럭비에서 직접 주관하는 대회는 다음과 같다. 테스트 매치 및 그에 해당하는 7인제 대회는 볼드체.


5. 국가대표팀 출전 관련 규정[편집]


월드 럭비는 국가대표팀 출전 자격에 관해 반드시 해당 국가의 국적을 가질 필요가 없고, 아래의 조건을 만족하면 자격이 주어진다고 규정하고 았다.
1. 해당 국가 국적이 있는가?
2. 부모 또는 조부모가 해당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인가?
3. 해당 국가에 5년 연속 거주하고 있는가?
4. 해당 국가에 거주한 기간이 총 10년을 넘는가?

해당 규정은 시간에 따라 아래와 같이 변화해 왔다.
  • 아마추어 시대 - 대표팀으로 뛰려는 국가에서 태어나거나, 부모 또는 조부모가 해당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일 것. 이 시절엔 규정에 따라 자유롭게 대표팀을 바꿔가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때는 거주 기간에 관한 사항은 없었는데, 그럼에도 20세기동안 규정과 상관 없이 다른 나라 대표팀으로 뛰는 사례가 다수 적발되었다.
    • 1990년대 초 - 3년 이상 해당 국가에 거주한 경우 해당 대표팀으로 출전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추가됨. 또 이에 맞춰 대표팀을 다시 바꾸려면 최소 3년 기다려야 한다는 규정도 추가한다.
    • 1994년 - 거주 기간이 3년에서 1년으로 변경됨. 3년 대기 기간은 아직 유효하다.
  • 프로화 이후 - 1995년, 럭비 유니언은 공식적으로 프로 스포츠가 되었음이 선언된다. 그에 따라 많은 선수들이 타국의 구단에서 활동하며 점차 타국 대표팀에서 활동하게 되었고[4] 결국, 1997년 1월 "오직 한 대표팀에서만 뛸 수 있다"는 규정이 공포된다. 이 규정은 2000년부터 효력을 발휘하며, 3년 대기 규정에 따라 실질적으로 1997년 1월 1일 이후 대표팀을 바꾼 선수들은 다시는 바꿀 수 없다.
  • 2000 ~ 2014년 - 이 기간동안 제반 규정을 수정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2000년도에 호주 럭비 협회는 조부모 관련 조항을 폐지하고, 연속 거주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려 했지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철회한다. 같은 해 뉴질랜드도 IRB에 7인제에서는 규정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반려되었다. 2004년 IRB는 "티어1국가 대표팀 선수가 티어2국가 대표팀으로 이전하는 사항에 한하여 변경을 허락해 달라"는 뉴질랜드의 건의를 다시 반려한다. 2009년에도 오세아니아 럭비 협회가 같은 내용을 건의했으나 아일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가 특히 반발하여 무산되었다.
  • 2017년 - 필요 거주 기간에 관해 수정이 이루어진다.
    • 개정) 2020년 12월 31일부터 요구되는 연속 거주 기간이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5]
    • 신규) 총 10년간 해당 국가에 거주한 경우 (2017년 5월 10일부 발효)
    • 2018년 1월 1일부터 U-20대표팀 경력은 성인 대표팀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음.
  • 2021년 - 평생 하나의 대표팀에서만 뛸 수 있다는 규정이 드디어 수정되었다. 월드 럭비가 이 개정안에 대해 투표에 붙인 결과 근소한 차이로 통과 기준인 75%를 넘겨 가결되었다. 내용인즉슨 15인제 또는 7인제 대표팀에서 뛴 선수는 한 번에 한하여 본인 또는 부모 혹은 조부모의 출생 국가로 변경할 수 있다. 추가로 2021년 11월 24일 18세 이후 유소년 대표팀에서 뛴 경우에도 관련 규정에 구속된다는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6. 월드 럭비 랭킹[편집]


여느 종목처럼 2003년부터 공식 세계 랭킹을 집계하고 있다. 월드 럭비 랭킹 문서 참조.


7. 상훈[편집]


월드 럭비는(그리고 그 전신인 IRB) 2001년부터 매년 각자 분야의 성과에 따라 World Rugby Awards를 수여하고 있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괴물들이 즐비한 가운데 "엥? 웬 이탈리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세르지오 파리세는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이자 어디 내놔도 절대 꿀리지 않는 인물이다. 2002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국가대표로서 142번이나 출전했고, 주장으로서만 94번 출전하여 국제 대회 2위 기록을 갖고 있다. 팀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8번의 역할에 적격이었고 특유의 뛰어난 럭비 센스로 직접 라인 돌파를 하거나 트라이를 찍기도 했다. 가끔 드롭킥도 찼다. 또 여기저기 얻어맞는 이탈리아 입장상 사기가 떨어질 수 있는데,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대표팀을 이끌었다.

잉글랜드의 오웬 패럴도, 아일랜드의 조니 섹스턴도 경력의 후반부에 접어든 댄 카터에 미치지 못했다. 북반구가 월드컵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이렇게 임팩트 있는 선수가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아일랜드는 8강딱이니까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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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eputy lieutenant[2] 골라인 바깥 인골 지역의 그라운드에 공을 찍는 것.[3] 당시엔 스코티시 폿볼 유니온(Scottish Football Union)으로 불렸다.[4] 특히 남태평양 섬나라 선수들이 그랬다. 15인제와 7인제 공히 정말 많은 인원이 시장이 큰 호주나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다른 남반구 국가에서도 유럽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5] 하지만 2020년 8월에 월드 럭비는 이 개정안 발효를 1년 유보한다. 사유는 코로나19로 해외 이주 자체에 제한사항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