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진보사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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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우크라이나 진보사회당 로고.png
Прогресивна соціалістична партія України (ПСПУ)
До Перемоги Завжди!
항상 승리를 위하여!

영문 명칭
Progressive Socialist Party of Ukraine (PSPU)
한글 명칭
우크라이나 진보사회당
창당일
1996년 4월 20일
금지일
2022년 3월 20일
전신
우크라이나 사회당
대표
나탈리야 비트렌코
이념
민족 볼셰비즘
유라시아주의
좌익대중주의
사회보수주의
범슬라브주의
유럽회의주의
친러
반미
우크라이나
정치적 스펙트럼
혼합정치
당원 수
2,654명
당 색
빨간색 (#921A1B)
파란색 (#002FCF)
최고 라다
0석 / 450석}}}
지방의회
0석 / 43,122석}}}
당가
진보사회당 행진곡
국제조직


청년조직
우크라이나 진보사회당 청년 근위대 (Молода гвардія ПСПУ)
홈페이지
파일:우크라이나 진보사회당 로고.png

1. 개요
2. 역사
3. 성향



1. 개요[편집]


우크라이나 진보사회당우크라이나친러 성향 정당이다.


2. 역사[편집]


나탈리야 비트렌코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사회당 급진파 당원들이 1995년 10월 사회당을 탈당한 후 비트렌코를 주축으로 해 1996년 4월 20일 진보사회당을 창당했다.

유럽연합의 대안으로 유라시아 경제 연합에 가입할 것을 공약하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국제통화기금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1998년 총선에서 4.0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에서 17석을 얻었다. 199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당수 나탈리야 비트렌코가 10.97%의 득표율로 4위에 안착했다.

이후 대표적인 반 쿠치마 세력으로서 활동했다. 그러나 2002년 총선에서 3.22%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봉쇄조항 4%를 넘는 데 실패해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입성이 좌절되었다.

이후 친 쿠치마로 노선을 바꿔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를 지지했으며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1.53%의 득표율을 기록한 이후 결선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를 지지했다. 오렌지 혁명 이후 친러 정당인 데르자바와 연합해 반 유셴코 세력으로 활동하며 2006년 총선에 참가했지만 2.93%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1], 2007년 총선에서는 더 떨어진 1.3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회당이 진보사회당에 좌파-중도좌파 세력 연합을 제안했으나 진보사회당은 이를 거부하고 나탈리야 비트렌코를 대선 후보로 추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선관위에 기탁금을 내지 않아 후보 등록이 무효가 되었고 대신 지역당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를 지지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세바스토폴에서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

2011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지지 정당들의 조직인 전러시아 인민전선에 가입했다.

2012년, 2014년 총선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2014년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당시 일부 당원들이 친러시아 반군 세력에 가담했고, 파벨 구바레프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 직이었던 인민의 주지사 직을 맡기도 했다.

2015년 6월 12일 다른 좌파-중도좌파 정당과 좌파 야권 연합을 구성했고 2015년 지방선거에 참가했다.

2022년 3월 20일 정당 활동이 금지되었다. 나탈리야 비트렌코 대표는 이에 대해 항소했다. # 금지된 정당 중 최초로 항소한 사례이다.

2022년 러시아헤르손을 점령하고 세운 헤르손 군민정청에도 진보사회당 출신 인사들이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파벨 구바레프의 아내인 예카테리나 구바레바가 민정부장관을 맡고 있다.


3. 성향[편집]


유럽연합의 대안으로 유라시아 경제 연합을 지지하고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 가입 반대 및 우크라이나 중립국화를 지지하며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의 공용어로 삼을 것을 지지하는 등 친러 성향이 있다. 또한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의 스테판 반데라 영웅화도 반대한 바 있으며, 당의 최대 지역 기반이 크림 반도세바스토폴인 등 친러 성향 유권자들을 지지자로 삼고 있다.

민족 볼셰비키당, 유라시아당알렉산드르 두긴과도 친밀한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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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7% 차이로 봉쇄조항에 미달했다. 이때 무효표와 아무 정당에 투표하지 않음을 제외하면 비트렌코 블록(진보사회당+루스)의 득표율은 3%를 넘겼고, 많은 단체와 정당들이 친러, 친서방 진영을 넘어 22%의 사표가 발생한 선거 방식을 비판하면서 비트렌코 측을 지지했다.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 역시 재검표의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끝내 재검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