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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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문장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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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법률상)
(사실상)
시간대
UTC+3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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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47,820명(2022년)
인구 밀도
591명/㎢
면적
1079.6㎢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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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미하일 라즈보자예프
시의회


14석 / 2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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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 3166-2
UA-40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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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도시의 건설
2.2. 러시아 제국-소련 시기
2.3. 우크라이나 통치기
2.4. 러시아 연방으로 귀속
3. 하위 행정구역
4. 여담
5. 관련항목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www.globogirls.com/MC4zNDA4NDAwMCAxMzcwMDg4OTg2XzUxYTllNjFhNTM3ZWU=.jpg
파일:external/www.encyclopediaofukraine.com/pic%5CS%5CE%5CSevastopol%20city%20center.jpg

세바스토폴은 크림반도의 남서쪽 끝 부분에 있는, 크림반도 최대 도시다. 흑해에 접해 있는 해안 도시로, 항구러시아 해군 흑해 함대의 모항이다. 소련 붕괴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였으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크림 공화국과 함께 러시아로 편입된 도시로, 러시아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흑해 북부 연안에서 오데사 다음 가는 두번째로 큰 항구도시이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와 함께 행정적으로 특별한 지위를 가졌었다. 군항으로서의 입지가 탁월해서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이 곳에 해군 기지를 세워 놓았다. 러시아 입장에선 남의 나라 땅이다 보니 2042년까지 임차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후 2014년 3월에 세바스토폴 의회가 크림 자치공화국과 함께 폭탄 선언을 했다. 우크라이나로부터 벗어나 러시아로 편입하겠다는 것. 우크라이나 정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라 우크라이나-크림 자치 공화국-러시아간 긴장이 고조되었다. 3월 16일에 이 선언을 승인하는 주민 투표가 있었고 압도적 찬성률로 승인. 3월 17일 크림 의회는 러시아로의 합병을 요청했고, 18일에는 러시아가 크림 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의 합병을 승인하는 조약에 서명하여 세바스토폴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어 러시아의 3번째 연방시가 되었다.


2. 역사[편집]



2.1. 도시의 건설[편집]


오늘날의 가가린 구에는 케르소네소스(Χερσόνησος)라는 고대 그리스 유적이 있지만 케르소네소스와 세바스토폴의 역사는 이어지지 않는다. 케르소네소스는 기원전 6세기에 펠로폰네소스 반도 본토에서 온 고대 그리스인들이 건설하였으며,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헤르손(Χερσών)[3]이라 불리며 1천 년 이상 크림반도의 주요 그리스계 도시들 중 하나였지만 동로마 제국이 붕괴되어 가던 14세기 말에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버려졌다.

이후 크림 타타르인이 케르소네소스 인근에 새로 정착해 크림 칸국을 세웠으며, 오스만 제국 시대에 이 지역은 Aqyar이라 불렸다.

현재의 세바스토폴은 1783년 러시아 제국이 해군 기지로 쓰기 위해 건설한 군사도시이다. 이듬해인 1784년 2월에는 예카테리나 2세포템킨 공작에게 그 곳에 요새를 짓도록 명령하고 그리스어로 '세바스토폴'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세바스토폴은 그리스어로 '덕망있는(세바스토스: σεβαστός) 도시(폴리스: πόλις)'라는 뜻이다.[4]

그리스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는 도시임에도 그리스어식 이름이 붙은 도시인데, 세바스토폴 외에도 심페로폴, 마리우폴, 스타브로폴, 헤르손, 오데사, 티라스폴, 멜리토폴 등 흑해 연안의 옛 러시아 제국 영토에는 유독 그리스식 지명이 많다. 이 지명들의 공통점은 예카테리나 2세가 건설한 도시들이란 것인데 제3의 로마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그리스 계획의 일환으로 크림 칸국 일대를 정복한 후, 해당지역이 옛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영토였던것을 반영해서 그 지역에 여러 도시들을 건설할 때 마다 그리스식 이름을 붙였다. 세바스토스는 그리스어로 라틴어 '아우구스투스'에 동치되는 단어다. 따라서 예카테리나 황제의 도시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 해당지역이 그리스-로마의 영토였던것이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지명비정은 당시 지명과는 영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5]


2.2. 러시아 제국-소련 시기[편집]


계속된 확장을 거쳐 1788년부터는 중요 해군 기지가 되었고, 상업 항구로서도 기능하게 되었다. 좀 쌩뚱맞긴 하지만 온화한 기후 덕에 러시아인에게는 바다 휴양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 곳이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도 2번의 전투의 격전지로서일 것이다. 첫번째 전투는 크림 전쟁 중에 벌어진 세바스토폴 공방전이다. 이 전투는 1854년~1855년에 걸쳐 세바스토폴에서 벌어졌는데, 러시아 제국군영국, 프랑스,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오스만 제국군에 맞서 피터지게 싸웠지만 결국 패해서 세바스토폴을 버리고 퇴각했다. 퇴각 과정에서 자신의 함대 전체를 자침시켜야 했던 건 덤.

이런 전란 속에서도 세바스토폴은 점점 발전하여 1897년에는 인구 5만 3천 명을 기록했고, 소련이 들어선 후에도 계속 발전하여 2차 대전 직전인 1940년에는 인구 10만을 돌파했다.

두번째 세바스토폴 공방전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에 일어났다. 전략적 요충지다 보니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도 역시 대규모 공방전이 일어난 것. 이 전투에서 소련군나치 독일에 맞서 처절히 저항했으나 결국 패했다. 세바스토폴은 이 전투를 기려 영웅 도시로 지정되었다.

나치의 점령으로부터 1944년 소련이 세바스토폴을 수복했을 때 인구는 1만 1천 명으로 줄어버렸다. 그러나 승전 후 세바스토폴은 재건되었고 1959년에는 인구 14만 8천 명을 기록했다. 이후 1967년에는 인구 20만, 1979년에는 30만을 기록하였다.

1954년에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관할에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관할로 이전되었다. 1955년 10월 29일 세바스토폴에 정박 중이던 소련 해군 함정 <노보로시스크(Новороссийск)>[6]가 폭발 침몰, 608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1957년에는 인근의 발라클라바라는 도시와 합병되었다. 이 도시에는 소련의 중요한 잠수함 기지가 있었다. 적 공격을 막기 위해 지하에 기지를 만들어 놨는데, 핵폭탄에 직격으로 맞아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매우 중요하다 보니 도시 주민 거의 전부가 잠수함 관련 일을 했던 적도 있었다고. 엄청난 보안이 요구되었기에 외부에 살던 가족들조차 웬만한 사유로는 방문을 허락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잠수함 기지는 폐쇄에 들어갔고, 1996년 마지막 러시아 잠수함이 기지를 떠나면서 폐쇄가 완료되었다.

소련 시절에는 폐쇄 도시였다. 외부인이 방문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세바스토폴이 아니라 소련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소련 붕괴 후에는 사라졌다. 참고로 우크라이나에는 세바스토폴을 비롯하여 총 18개의 폐쇄 도시가 있었다.


2.3. 우크라이나 통치기[편집]


세바스토폴은 우크라이나의 특별행정구역이었는데, 러시아계가 많이 사는 데다가 러시아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기에 우크라이나 vs 러시아+세바스토폴이라는 갈등 관계가 생겨났다.

1991년까지는 우크라이나러시아소련이라는 한 나라의 일부였으므로 갈등의 요소가 없었다. 문제는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세바스토폴 지배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아니, 세바스토폴뿐만 아니라 크림반도, 옛 크림 오블라스트 전체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었고, 그것이 계속 불씨로 남아 왔다.

1992년 12월에는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국회의원들을 제국주의자라 비난했던 일도 있었다. 러시아 연방의회가 세바스토폴의 지위를 명확히 정의하도록 의원들이 밀어붙였기 때문. 남의 나라 도시에 대해 지위를 논하니 우크라이나로서는 당연히 빡칠 수 밖에. 얼마 안 있어 크림 공화국에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대리인 사무실지점이 생겼고, 이에 대해 러시아 연방의회 지부에 소속된 사람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다.

1993년 7월에는 러시아 연방의회가 세바스토폴이 러시아 연방의 도시임을 선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달인 7월, 크림 자치국 의회의 공산당 간부회가 자체적인 대통령직의 신설을 주장했다. 쉽게 말해 "우리끼리 알아서 살테니 우크라이나 대통령 꺼지셈"이라는 소리다. 곧 이어 러시아 대표는 러시아가 크림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를 감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심지어 크림반도 내의 러시아인 단체의 한 지도자는 무장봉기(!)를 통해 러시아계 정부를 옹립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1997년 5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평화 우호 조약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이 조약을 통해 세바스토폴 및 크림반도의 기지와 설비를 2017년까지 20년간 전세임차하고 그 뒤 5년마다 갱신하는 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신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이 우크라이나 땅임을 조약에 명시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은 셈. 이로서 세바스토폴의 소속에 대한 갈등은 일단락되었으나, 러시아는 여전히 세바스토폴은 러시아의 일부이며 단지 일시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2008년에는 모스크바 시장이 세바스토폴은 다시 러시아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게 말뿐만이 아니었던 것이, 합병에 대비해 3천 4백만불이라는 예산을 할당해 놓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모스크바는 세바스토폴로부터 한 2,000km 정도 떨어져 있다.

2010년, 양국은 2042년까지 러시아가 해군 기지를 임차하는 기간을 25년 연장하고 그 뒤 5년마다 갱신하는 조약을 비준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의회는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격렬히 싸웠다. 결론은 총 투표의 52% 찬성표로 아슬아슬하게 조약 비준. 반면 러시아 의회는 98%라는 높은 찬성률로 별 이견 없이 조약을 비준했다.

한편 인구 면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30만 명대 초중반에서 정체 상태였으나, 2010년 34만 명을 기록한 이후 2014년에는 39만 3304명을 기록했다.


2.4. 러시아 연방으로 귀속[편집]


2014년 3월 6일, 우크라이나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의 폭정과 유로마이단으로 혼란한 틈을 타 세바스트폴 의회는 세바스토폴이 러시아의 연방 일원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3월 11일에는 세바스트폴과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여 크림 공화국으로 통일한 후 러시아 연방에 가입하는 절차를 밟는다고 공동 선언했다. 선언에 따르면 주민투표가 가결되는 대로 통일되어 크림 공화국으로 독립한 뒤 러시아에 가입한다. 이 선언을 확정하는 주민 투표는 2014년 3월 16일에 열렸고, 결국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다. 하루 뒤인 3월 17일 크림 의회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러시아로 편입 허락을 요청했고, 3월 18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크림 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을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시키는 조약에 서명했다. 편입조약은 세바스토폴을 다시 크림 공화국에서 분리하여 연방시의 지위를 준다고 규정한다. 러시아측의 지원, 혹은 적어도 공감대가 있었기에 이 모든 합병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017년 세바스토폴을 배경으로 한 200루블 신권이 발행되었다.관련 뉴스(러시아어)

2010년 이후의 인구 성장세가 계속되어 2016년에는 인구 40만을 돌파했고 2021년에는 50만을 돌파했다.[7]


3. 하위 행정구역[편집]




4. 여담[편집]


러시아의 최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바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겨울에 춥지 않다. 바다 덕에 여름 또한 덥지 않아 전체적으로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습윤 아열대 기후에 해당하며,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Cfa에 속한다. 1월의 최고기온 평균은 5.9 °C, 최저기온 평균은 영하 0.2 °C이며, 7월의 최고기온 평균은 26.5 °C, 최저기온 평균은 18.2 °C. 연평균 강수량은 400 mm로서 많지 않은 편. 이는 한국 강수량의 1/3도 안되는 양이다.

주민구성은 우크라이나가 인구조사한 2001년 기준으로 러시아인이 주민의 71.6%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우크라이나인으로 22.4%를 차지한다. 원주민 격인 크림 타타르인은 매우 적어서 0.5% 밖에 안된다. 타타르인도 0.7%로 매우 소수. 그리고 2014년 러시아에서 실시한 간이 인구조사에 따르면 민족별로는 러시아인 81.1%, 우크라이나인 14.2%, 벨라루스인 1%, 크림타타르인 0.75%, 타타르인 0.73% 등이고, 모국어별로는 러시아어 사용자가 96.2%에 달하고 그 외에는 우크라이나어 2.13%, 타타르어 0.59%, 크림 타타르어 0.41% 등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해군 선박에 대한 수리와 정비 관련한 산업이 번창해 있다. 그 외에 제조업 공장이 몇몇 있다. 큰 돈은 아니지만, 해군 기지를 유치한 대가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부로부터 매년 몇백만 달러 정도 용돈보상금을 받고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버스무궤도전차, 기차가 다니며, 해안도시 특성상 페리선과 보트도 운행되고 있다.

이곳을 연고로 하는 축구클럽으로 FC 세바스토폴이 있다. 2002년에 창단되었다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뒤 2014년 재창단되어 현재 크림반도의 자체 리그에서 뛰고 있다. 크림반도 내에서는 나름대로의 강호로 평가받고 있다.


5. 관련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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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 참고로 러시아어에서는 강세 때문에 "씨바스또빨"이라고 읽는다. 정식 명칭은 세바스토폴 연방시 (город федерального значения Севастополь).[2] 크림 타타르어. '아크야르'라고 읽으며 키릴 문자 표기는 Акъяр이다.[3] 우크라이나의 헤르손과는 다르다. 이쪽이 원조고 우크라이나의 헤르손이 나중에 이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4] 인명 세바스티안(Sebastian)과 어원이 같다. 세바스토폴이 건설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리스 문자 β는 v발음으로 바뀐 뒤였는데 로마자 표기는 그리스어 표기를 전사하는 바람에 Sebastopol로 전사했다. 현재는 키릴 문자의 발음을 반영해 Sevastopol이라고 적는다. 세바스토폴이라는 지명은 유럽 도시 이름 갖다붙인 지명이 많은 아메리카 대륙이나 호주 대륙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동네들은 모두 Sebastopol을 사용한다. 그리고 키릴문자가 아닌 라틴문자를 쓰는 유럽에서도 Sebastopol을 쓴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Sabastopol은 유럽 대륙에서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의 마을 이름으로 쓰인다.[5] 위에 적혀있듯 세바스토폴은 원래 헤르손이라 불렸고, 오데사(오데소스)의 원래 위치는 현재의 불가리아 바르나 일대였다.[6] 이탈리아의 '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함이었으나 2차대전 후 소련에 인도[7] 본 문서의 인구 관련 서술은 러시아어 위키피디아를 참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