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무라 마사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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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하라 마사유키
上村 雅之 | Masayuki Ue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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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3년 6월 20일
일본 제국 도쿄도 스기나미구
사망
2021년 12월 6일 (향년 78세)
국적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직업
공학자, 게임 디자이너, 교수
학력
치바공업대학 (전자공학과 / 졸업)
소속
샤프[1] (1967년~1971년)
닌텐도 (1971년~2004년)
리츠메이칸대학 (2004년~2021년)

1. 개요
2.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일본게임 개발자이자, 닌텐도의 R&D2 본부장으로서 패밀리 컴퓨터슈퍼 패미컴을 만든 장본인.

1943년 도쿄도에서 태어나 1967년에 하야카와 전기공업[2]에 입사했으며, 태양전지 및 반도체와 같은 제품 개발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닌텐도에서 만든 장난감 광선총의 전자회로를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당시 그와 같이 일하고 있던 요코이 군페이야마우치 히로시에게 스카웃을 제의하게 되어 1971년 닌텐도로 입사하게 된다.[3]

닌텐도에서는 컬러 TV 게임을 시작으로 패밀리 컴퓨터, 재퍼, 슈퍼 패미컴,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사테라뷰의 개발을 주도했으며, 아이스 클라이머골프(1984년 게임)를 비롯한 각종 패미컴 게임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참고로, 소니의 슈퍼 패미컴 음원칩 계약 공급과 관련해 쿠타라기 켄(久夛良木健)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해당 계약 건을 계기로 CD-ROM 기반의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다 일이 틀어져 소니가 게임기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지금의 3대 콘솔 구도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2004년에 닌텐도를 퇴사한 이후에는 리츠메이칸대학의 초빙을 받아 교수직을 역임하게 되었고, 2011년 같은 대학에서 만든 게임 연구센터의 초대 센터장을 맡아 연구를 계속했다. 2021년, 리츠메이칸대학 측에서 우에무라 마사유키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사인은 불명이라고 한다.


2.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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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사 당시에는 ‘하야카와 전기공업’이었다.[2] 1970년에 샤프로 사명을 변경했다.[3] 당시에는 굉장한 대기업이었던 샤프에 사표를 내고 (각종 플레잉 카드나 장난감을 만드는 중소기업이었던) 닌텐도로 들어가게 된 내막에는, 요코이 군페이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결국 항복했다(...)라는 설과, 어린 시절부터 꾸준하게 장난감을 만들어 노는 등의 경험으로 장난감 만드는 일에 흥미가 있었던 차에 요코이 군페이가 입사를 권유했기 때문이란 설이 혼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