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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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자는 현명(賢明).
중국의 인물로 오대십국시대 후량의 최고의 용장.
2. 생애[편집]
군졸로 군 경력을 시작했지만 전투마다 군공을 세우면서 승진을 거듭해 결국 후량의 개국후에 봉해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철창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항상 선봉에 서서 활약했기에 왕철창(王鐵槍)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 까닭에 왕언장을 모시는 사당 또한 철창묘라 부른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하루 해가 지기전에 후당의 장수 서른 여섯명을 혼자서 모조리 쓰러뜨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격이 강직하고 곧은 탓에 후량의 황제인 주우정에게 미움을 받았으며 그를 시기한 간신들에게 모함을 당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후당의 공격으로부터 조국인 후량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이미 내부가 썩을대로 썩은 후량은 오래 버티지 못했고 결국에는 나라가 멸망하는 비운을 겪는다.
모함을 당한 왕언장은 결국 923년에 부당하게 파면되면서 지위를 잃었다. 하지만 후당의 장종 이존욱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후량은 형세가 몹시 위급해졌고, 결국 같은 해 10월 왕언장을 다시 등용해 10만 군사를 이끌게 하였다. 하지만 왕언장을 믿지 못한 후량의 조정에서는 단응을 보내 주력군은 단응이 이끌게 하고 왕언장에게는 소수의 별동대만 주어졌다. 역대급 명장으로 꼽히는 왕언장이었지만 적은 병력으로는 뭘 해볼 수가 없없으며 결국 왕언장은 이존욱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존욱은 왕언장의 명성과 무예 실력을 높이 사서 '그대같은 명장이 후량같은 형편없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휘하에 들어올 것을 권유하였지만 정중하게 거절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 왕언장의 죽음으로 후량은 망한 것이나 다름 없었으며 결국 주우정이 자살하면서 후량은 멸망하고 만다.
본래 군졸 출신이었기 때문에 왕평이나 석륵처럼 글을 읽을 줄 몰랐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읽도록 시키고 곁에서 이를 듣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글을 읽어주자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죽는 순간까지 이 말을 외울 정도로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 말처럼 후량 최고의 용장이자 충신으로서 그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
왕언장의 혼백을 모신 가흥 철창묘는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무대로, 강남칠괴가 어린 시절에 어울려 놀았던 곳이다.
왕언장도 무력으로 유명하지만 민담, 소설 등에서는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이존효에 가려져서 콩라인 신세를 면치 못한다.
수호전에서 동창부로 쳐들어간 노준의 군의 두령들을 돌팔매만으로 잇달아 쓰러뜨린 몰우전 장청을 보고 크게 놀란 송강이 장청을 왕언장에 비유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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