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오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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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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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px><width=16.66%><rowbgcolor=#fff,#191919> 사기 ||<width=16.66%> 한서 ||<width=16.66%> 후한서 ||<width=16.66%> 삼국지 ||<width=16.66%> 진서 ||<width=16.66%> 송서 ||
|| 사마천 || 반고 || 범엽 || 진수 || 방현령 || 심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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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px><rowbgcolor=#fff,#191919> 남제서 || 양서 || 진서 || 위서 || 북제서 || 주서 ||
|| 소자현 || 요사렴 || 요사렴 || 위수 || 이백약 || 영호덕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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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징 || 이연수 || 이연수 || 장소원 || 구양수 || 설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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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px><rowbgcolor=#fff,#191919> 신오대사 || 송사 || 요사 || 금사 || 원사 || 명사 ||
|| 구양수 || 토크토아 || 토크토아 || 토크토아 || 송렴 || 장정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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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오대사
舊五代史
Old history of the Five Dynasties

저자
설거정
시기
10세기 북송
언어
한문
권 수
150권
분량
907년 ~ 960년 (53년)
후량 태조 3년 ~ 후주 공제 2년

1. 개요
2. 구성
2.1. 《양서》(梁書)
2.2. 《당서》(唐書)
2.3. 《진서》(晉書)
2.4. 《한서》(漢書)
2.5. 《주서》(周書)
2.6. <열전>
3. 의의와 평가
4. 관련 고사성어



1. 개요[편집]


舊五代史

중국의 24사 중 하나이다. 본래는 《양당진한주서》(梁唐晉漢周書)라고 불렀다. 《오대사》는 일종의 속칭이었다. 설거정(薛居正) 등이 송 태조 조광윤의 조서를 받들어 편수하여 974년에 완성했다. 이후에 구양수에 의해 편찬된 《신오대사》와 구분하기 위해 '구'를 붙였다. 별칭으로 설거정의 성을 따서 《설사》(薛史)라고도 부른다.


2. 구성[편집]



구성은 <본기> 61권, <열전> 77권, <지> 12권 등 총 150권으로 되어 있으며, 이 중 《양서》(梁書)가 24권, 《당서》(唐書)가 50권, 《진서》(晉書)가 24권, 《한서》(漢書)가 11권, 《주서》(周書)가 22권이다.


2.1. 《양서》(梁書)[편집]


《구오대사》 《양서》(梁書) 구성
권1
고조본기
(高祖本紀)
주황(朱晃)
권2
권3
권4
권5
권6
권7
권8
소제본기
(少帝本紀)
주진(朱瑱)
권9
권10
권11
후비열전
(后妃列傳)
문혜황태후(文惠皇太后), 원정황후(元貞皇后), 장덕비(張德妃)
권12
종실열전
(宗室列傳)
주전욱(朱全昱), 주우량(朱友諒), 주우능(朱友能), 주우회(朱友誨), 주우녕(朱友寧), 주우륜(朱友倫), 주우유(朱友裕)
주우문(朱友文), 주우규(朱友珪), 주우장(朱友璋), 주우옹(朱友雍), 주우휘(朱友徽), 주우자(朱友孜)
권13

주선(朱瑄), 주근(朱瑾), 시부(時溥), 왕사범(王師範)
유지준(劉知俊), 양숭본(楊崇本), 장은(蔣殷), 장만진(張萬進)
권14

나소위(羅紹威), 조주(趙犨), 왕가(王珂)
권15

한건(韓建), 이한지(李罕之), 풍행습(馮行襲), 손덕소(孫德昭), 조극유(趙克裕), 장신사(張愼思)
권16

갈종주(葛從周), 사언장(謝彦章), 호진(胡眞), 장귀패(張歸覇), 장귀후(張歸厚), 장귀변(張歸弁)
권17

성예(成汭), 두홍(杜洪), 전군(田頵), 조광응(趙匡凝), 장길(張佶), 뇌만(雷滿)
권18

장문울(張文蔚), 설이구(薛貽矩), 장책(張策), 두효(杜曉), 경상(敬翔), 이진(李振)
권19

씨숙종(氏叔琮), 주우공(朱友恭), 왕중사(王重師), 주진(朱珍), 이사안(李思安), 등계균(鄧季筠)
황문정(黃文靖), 호규(胡規), 이당(李讜), 이중윤(李重胤), 범거실(范居實)
권20

사동(謝瞳), 사마업(司馬鄴), 유한(劉捍), 왕경요(王敬蕘)
고소(高劭), 마사훈(馬嗣勳), 장존경(張存敬), 구언경(寇彥卿)
권21

방사고(龐師古), 곽존(霍存), 부도조(符道詔), 서회옥(徐懷玉), 곽언(郭言)
이당빈(李唐賓), 왕건유(王虔裕), 유강예(劉康乂), 왕언장(王彥章), 하덕륜(賀德倫)
권22

양사후(楊師厚), 우존절(牛存節), 왕단(王檀)
권23

유심(劉鄩), 하괴(賀瑰), 강회영(康懷英), 왕경인(王景仁)
권24

이정(李珽), 노증(盧曾), 손즐(孫騭), 장준(張俊), 장연(張衍)
두순학(杜荀鶴), 나은(羅隱), 구은(仇殷), 은심(段深)


2.2. 《당서》(唐書)[편집]


《구오대사》 《당서》(唐書) 구성
권25
무제본기
(武帝本紀)
이극용(李克用)
권26
권27
장종본기
(莊宗本紀)
이존욱(李存勖)
권28
권29
권30
권31
권32
권33
권34
권35
명종본기
(明宗本紀)
이사원(李嗣源)
권36
권37
권38
권39
권40
권41
권42
권43
권44
권45
민제본기
(閔帝本紀))
이종후(李從厚)
권46
말제본기
(末帝本紀)
이종가(李從珂)
권47
권48
권49
후비열전
(后妃列傳)
정간황후(貞簡皇后), 유태비(劉太妃), 위국부인(魏國夫人), 신민경황후(神閔敬皇后)
권50
종실열전
(宗室列傳)
이극양(李克讓), 이극수(李克修), 이사굉(李嗣肱), 이극공(李克恭), 이극녕(李克寧)
권51
이존패(李存霸), 이존미(李存美), 이존악(李存渥), 이존예(李存乂)
이존확(李存確), 이계급(李繼岌), 이계동(李繼潼), 이계숭(李繼嵩)
이계첨(李繼蟾), 이계요(李繼嶢), 이종경(李從璟), 이종영(李從榮)
이종찬(李從璨), 이종익(李從益), 이중길(李重吉), 이이미(李理美)
권52

이사소(李嗣昭), 배약(裴約), 이사본(李嗣本), 이사사(李嗣恩)
권53

이존신(李存信), 이존효(李存孝), 이존진(李存進), 이존장(李存璋), 이존현(李存賢)
권54

왕용(王鎔), 왕소회(王昭誨), 왕처직(王處直)
권55

강군립(康君立), 설지근(薛志勤), 사건당(史建瑭), 이승사(李承嗣), 사엄(史儼)
개우(蓋寓), 이광(伊廣), 이승훈(李承勳), 사경용(史敬鎔)
권56

주덕위(周德威), 부존심(符存審)
권57

곽숭도(郭崇韜)
권58

조광봉(趙光逢), 정각(鄭玨), 최협(崔協), 이기(李琪), 소경(蕭頃)
권59

정회(丁會), 염보(閻寶), 부습(符習), 오진(烏震), 왕찬(王瓚), 원상선(袁象先), 장온(張溫), 이소문(李紹文)
권60

이습길(李襲吉), 왕함(王緘), 이경의(李敬義), 노여필(盧汝弼), 이덕휴(李德休), 소순(蘇循)
권61

안금전(安金全), 안원신(安元信), 안중패(安重霸), 유훈(劉訓), 장경순(張敬詢)
유언종(劉彥琮), 원건풍(袁建豐), 서방업(西方鄴), 장준회(張遵誨), 손장(孫璋)
권62

맹방립(孟方立), 장문례(張文禮), 동장(董璋)
권63

장전의(張全義), 주우겸(朱友謙)
권64

곽언위(霍彥威), 왕안구(王晏球), 대사원(戴思遠), 주한빈(朱漢賓), 공경(孔勍), 유기(劉玘), 주지유(周知裕)
권65

이건급(李建及), 석군립(石君立), 고행규(高行珪), 장정유(張廷裕), 왕사동(王思同), 삭자통(索自通)
권66

안중회(安重誨), 주홍소(朱弘昭), 주홍실(朱洪實), 강의성(康義誠), 약언조(藥彦稠), 송영순(宋令詢)
권67

두로혁(豆盧革), 위설(韋說), 노정(盧程), 조봉(趙鳳), 이우(李愚), 임환(任圜)
권68

설정규(薛廷珪), 최기(崔沂), 유악(劉岳), 봉순경(封舜卿), 두몽징(竇夢徵), 이보은(李保殷)
귀애(歸藹), 공막(孔邈), 장문보(張文寶), 진예(陳乂), 유찬(劉贊)
권69

장헌(張憲), 왕정언(王正言), 호장(胡裝), 최이손(崔貽孫), 맹곡(孟鵠)
손악(孫岳), 장정랑(張延朗), 유연호(劉延皓), 유연랑(劉延朗)
권70

원행흠(元行欽), 하노기(夏魯奇), 요홍(姚洪), 이엄(李嚴), 이인구(李仁矩), 강사립(康思立), 장경달(張敬達)
권71

마욱(馬郁), 사공정(司空頲), 조정은(曹廷隱), 소희보(蕭希甫), 약종지(藥縱之), 가복(賈馥)
마호(馬縞), 나관(羅貫), 순우안(淳于晏), 장격(張格), 허적(許寂), 주현표(周玄豹)
권72

장승업(張承業), 장거한(張居翰), 마소굉(馬紹宏), 맹한경(孟漢瓊)
권73

모장(毛璋), 섭서(聶嶼), 온도(溫韜), 단응(段凝), 공겸(孔謙), 이업(李鄴)
권74

강연효(康延孝), 주수은(朱守殷), 양립(楊立), 두정완(竇廷琬), 장건쇠(張虔釗), 양언옹(楊彦溫)


2.3. 《진서》(晉書)[편집]


《구오대사》 《진서》(晉書) 구성
권75
고조본기
(高祖本紀)
석경당(石敬瑭)
권76
권77
권78
권79
권80
권81
소제본기
(少帝本紀)
석중귀(石重貴)
권82
권83
권84
권85
권86
후비열전
(后妃列傳)
이황후(李皇后), 안태비(安太妃), 장황후(張皇后), 풍황후(馮皇后)
권87
종실열전
(宗室列傳)
석경위(石敬威), 석휘(石暉), 석중윤(石重胤), 석중영(石重英), 석중신(石重信), 석중예(石重乂)
석중진(石重進), 석중호(石重杲), 석중예(石重睿), 석연후(石延煦), 석연보(石延寶)
권88

경연광(景延廣), 이언도(李彥韜), 장희숭(張希崇), 왕정윤(王庭胤), 사광한(史匡翰), 양한옹(梁漢顒)
양사권(楊思權), 윤휘(尹暉), 이종장(李從璋), 이종온(李從溫), 장만진(張萬進)
권89

상유한(桑維翰), 조형(趙瑩), 유구(劉昫), 풍옥(馮玉), 은붕(殷鵬)
권90

조재례(趙在禮), 마전절(馬全節), 장균(張筠), 화온기(華溫琪), 안숭완(安崇阮), 양언순(楊彦詢), 이승약(李承約)
육사탁(陸思鐸), 안원신(安元信), 장랑(張朗), 이덕충(李德珫), 전무(田武), 이승복(李承福), 상리금(相里金)
권91

방지온(房知溫), 왕건립(王建立), 강복(康福), 안언위(安彦威), 이주(李周), 장종훈(張從訓)
이계충(李繼忠), 이경(李頃), 주광보(周光輔), 부언요(符彥饒), 나주경(羅周敬), 정종(鄭琮)
권92

요의(姚顗), 여기(呂琦), 양문구(梁文矩), 사규(史圭), 배호(裴皥), 오승범(吳承範)
노도(盧導), 정도광(鄭韜光), 왕권(王權), 한운(韓惲), 이역(李懌)
권93

노질(盧質), 이전미(李專美), 노첨(盧詹), 최절(崔梲), 설융(薛融), 조국진(曹國珍)
장인원(張仁願), 조희(趙熙), 이하(李遐), 윤옥우(尹玉羽), 정운수(鄭雲叟)
권94

장종간(萇從簡), 반환(潘環), 방태(方太), 하건(何建), 장정온(張廷蘊), 곽연로(郭延魯), 곽금해(郭金海)
유처양(劉處讓), 이경(李瓊), 고한균(高漢筠), 고언도(孫彥韜), 왕언증(王傅拯), 비경(秘瓊), 이언순(李彥珣)
권95

황보우(皇甫遇), 왕청(王淸), 양한장(梁漢璋), 백봉진(白奉進), 노순밀(盧順密), 주환(周環)
심빈(沈贇), 오만(吳巒), 적장(翟璋), 정복윤(程福贇), 곽린(郭璘)
권96

공숭필(孔崇弼), 진보극(陳保極), 왕유(王瑜), 장계조(張繼祚), 정완(鄭阮), 호요(胡饒), 유수청(劉遂淸), 방고(房暠)
맹승회(孟承誨), 유계훈(劉繼勛), 정수익(鄭受益), 정손(程遜), 이욱(李郁), 정현소(鄭玄素), 마중적(馬重績), 진현(陳玄)
권97

범연광(范延光), 장종빈(張從賓), 장연파(張延播), (張延播), 양광원(楊光遠), 노문진(廬文進), 이금전(李金全)
권98

안중영(安重榮), 안종진(安從進), 장언택(張彦澤), 조덕균(趙德鈞), 장려(張礪), 소한(蕭翰), 유희(劉晞), 최정훈(崔廷勛)


2.4. 《한서》(漢書)[편집]


《구오대사》 《한서》(漢書) 구성
권99
고조본기
(高祖本紀)
유고(劉暠)
권100
권101
은제본기
(隱帝本紀)
유승우(劉承祐)
권102
권103
권104
후비열전
(后妃列傳)
이황후(李皇后)
권105
종실열전
(宗室列傳)
유승훈(劉承訓), 유승훈(劉承勛), 유신(劉信), 유빈(劉贇)
권106
왕주등전
(王周等傳)
왕준(王周), 유심교(劉審交), 무한구(武漢球), 장관(張瓘), 이은(李殷), 유재명(劉在明)
마만(馬萬), 이언종(李彦從), 곽근(郭謹), 황보립(皇甫立), 백재영(白再榮), 장붕(張鵬)
권107
사홍조등전
(史弘肇等傳)
사홍조(史弘肇), 양빈(楊邠), 왕장(王章), 이홍건(李洪建), 염진경(閻晉卿)
섭문진(聶文進), 후찬(後贊), 곽윤명(郭允明), 유수(劉銖)
권108
이숭등전
(李崧等傳)
이숭(李崧), 소봉길(蘇逢吉), 이린(李鏻), 용민(龍敏), 유정(劉鼎), 장윤(張允), 임연호(任延皓)
권109
두중위등전
(杜重威等傳)
두중위(杜重威), 이수정(李守貞), 조사관(趙思綰)


2.5. 《주서》(周書)[편집]


《구오대사》 《주서》(周書) 구성
권110
태조본기
(太祖本紀)
곽위(郭威)
권111
권112
권113
권114
세종본기
(世宗本紀)
시영(柴榮)
권115
권116
권117
권118
권119
권120
공제본기
(恭帝本紀)
시종훈(柴宗訓)
권121
후비열전
(后妃列傳)
성목황후(聖穆皇后), 양숙비(楊淑妃), 장귀비(張貴妃), 동덕비(董德妃), 정혜황후(貞惠皇后), 선의황후(宣懿皇后)
권122
종실열전
(宗室列傳)
곽통(郭侗), 곽신(郭信), 시종의(柴宗誼), 시희회(柴熙誨)
권123

고행주(高行周), 안심기(安審琦), 안심휘(安審暉), 안심신(安審信), 이종민(李從敏)
정인회(鄭仁誨), 장언성(張彥成), 안숙천(安叔千), 송언균(宋彥筠)
권124

왕은(王殷), 하복진(何福進), 유사(劉詞), 왕진(王進), 사언초(史彥超), 사의(史懿)
왕령온(王令溫), 주밀(周密), 이회충(李懷忠), 백문가(白文珂), 백연우(白延遇), 당경사(唐景思)
권125

조휘(趙暉), 왕수은(王守恩), 공지준(孔知濬), 왕계홍(王繼弘), 풍휘(馮暉)
고윤권(高允權), 절종원(折從阮), 왕요(王饒), 손방간(孫方諫)
권126

풍도(馮道)
권127

노문기(盧文紀), 마예손(馬裔孫), 화응(和凝), 소우규(蘇禹珪), 범경(景範)
권128

왕박(王朴), 양응식(楊凝式), 설인겸(薛仁謙), 소원(蕭愿), 노손(盧損)
왕인유(王仁裕), 배우(裴羽), 단희요(段希堯), 사도후(司徒詡), 변울(邊蔚), 왕민(王敏)
권129

사상(常思), 적광업(翟光鄴), 조영(曹英), 이언군(李彥頵), 이휘(李暉)
이건숭(李建崇), 왕중예(王重裔), 손한영(孫漢英), 허천(許遷), 조봉(趙鳳)
제장진(齊藏珍), 왕환(王環), 장언초(張彥超), 장영(張穎), 유인첨(劉仁贍)
권130

왕준(王峻), 모용언초(慕容彥超), 염홍로(閻弘魯), 최주도(崔周度)
권131

유호(劉皞), 장항(張沆), 장가복(張可復), 우덕신(于德辰), 왕연(王延), 신문병(申文炳), 호재(扈載)
유곤(劉袞), 가위(賈緯), 조연의(趙延義), 심구(沈遘), 이지손(李知損), 손성(孫晟)


2.6. <열전>[편집]


《구오대사》의 <열전>은 크게 <세습 열전>, <참위 열전>, <외국 열전>으로 나눈다. 10국의 사정은 대체로 <세습 열전>과 <참위 열전>에 각각 수록되었으며,[1] <열전> 말미에 <외국 열전>을 두었다.
《구오대사》 <열전>(列傳) 구성
권132
세습열전
(世襲列傳)
이무정(李茂貞), 고만흥(高萬興), 한손(韓遜), 이인복(李仁福)
권133
고계흥(高季興), 마은(馬殷), 유언(劉言), 전류(錢鏐)
권134
참위열전
(僭僞列傳)
양행밀(楊行密), 이변(李昪), 왕심지(王審知)
권135
유수광(劉守光), 유척(劉陟), 유숭(劉崇)
권136
왕건(王建), 맹지상(孟知祥)
권137
외국열전
(外國列傳)
거란(契丹)
권138
토번(吐蕃), 회골(回鶻), 고려(高麗), 발해말갈(渤海靺鞨)
흑수말갈(黑水靺鞨), 신라(新羅), 당항(黨項), 곤명부락(昆明部落)
우전(于闐), 점성(占城), 장가만(牂牁蠻)


3. 의의와 평가[편집]


《구오대사》는 완성까지 걸린 시간이 1년 반으로 짧은 편이다.[2] 《구오대사》가 신속하게 편찬된 이유는 당나라 때부터 정비된 사서 편찬 제도가 5대 10국시대에도 이어져 5대 왕조들의 《실록》이 갖추어졌고, 5대 10국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찬 시기가 5대 10국시대와 너무 가까웠고, 편찬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후대 송나라의 사대부들이 5대의 실상에 대해 정확한 인식과 평가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구오대사》가 편찬된 이후, 《구오대사》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오대사궐문》과 같은 사서가 나오기도 했다.

이후 구양수가 《신오대사》를 사찬하면서 《신오대사》가 더 유명해졌다. 급기야 금나라의 제5대 황제인 장종은 1207년에 공식적으로 《신오대사》만 가르치도록 규정하면서, 《구오대사》는 제대로 된 전승이 힘들었다.

이 때문에, 사실 《신오대사》가 편찬된 이후, 《구오대사》는 원•명 시기를 거치면서 원본이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청나라의 학자인 소진함(邵晋涵)이 명대 초기《영락대전》(永樂大典)에 남아있는 《구오대사》를 인용하고, 재정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사료의 가치는 《신오대사》보다 《구오대사》가 더 높고 풍부하다. 또한, 《구오대사》는 역대의 중국 정사를 중심으로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편찬되어 있어서 중립적인 면에서 큰 가치가 있다. 또한 당대의 문체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신오대사》보다 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또한, 후삼국시대와 고려사 연구에 있어서도 당대에 쓰여진 사료이기 때문에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도 가치있는 사료이다.[3]


4. 관련 고사성어[편집]


  • 만사휴의(萬事休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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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습 열전>에는 10국의 창건자 중 을 칭한 인물을, <참위 열전>에는 황제를 칭한 인물을 수록했다.[2] 북송 태조 조광윤이 《오대사》 편찬 칙령을 내린 시기가 973년이고, 완성한 시기가 974년이다.[3] 특히나 당대에 쓰여진 사료이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 마치 초기 삼국시대와 가야, 백제의 역사를 더 잘 알기 위해 《삼국사기》보다 《한서》, 《후한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 《일본서기》를 주로 참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