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지(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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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 없음 |
시호 | 없음 |
연호 | 영흥(永興, 352)[1] 염민의 연호를 그대로 사용함. |
작위 | 해빈후(海賓侯) |
성씨 | 석(石) / 염(冉) |
휘 | 지(智) |
부황 | 평제(平帝) |
모후 | 동씨(董氏) |
생몰 기간 | ? ~ 354 |
재위 기간 | 352년 |
1. 개요[편집]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염위를 세운 염민의 아들이자 태자로 황후 동씨(董氏) 소생이었다.
2. 생애[편집]
아버지 염민은 한족 출신으로 후조의 제3대 태조 무황제 석호의 양손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양증손자가 된 염지도 한때 석(石)씨 성을 사용했다. 염민은 349년 석씨 황제들을 갈아치우다가 제6대 석감 시기 정변을 일으키고 350년 염위의 황제로 즉위했다. 염지도 이때 태자가 되었다. 하지만 염민은 351년 요양(姚襄)이 이끈 강족에게 패배했고, 전연의 명장이자 명재상인 모용각(慕容恪)에게 포로로 붙잡힌 후 용성에서 살해당했다.(352)
아버지가 살해당하자 염지는 도읍인 업성(鄴城)에서 잔존 세력을 모아 아버지 염민의 의지를 이었지만[2]
다만 황제를 칭하지는 않았고, 유명한 전국옥새를 동진에 넘겼다.
염지를 붙잡고, 전연에 투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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