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빈 폰 만토이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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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에트빈 폰 만토이펠은 독일 제국군의 원수이다. 독일 국방군의 기갑대장, 핫소 폰 만토이펠의 작은아버지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만토이펠은 작센 왕국에서 1809년 태어났다. 작센 왕국에서 태어났지만 1821년 프로이센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1827년 기병 근위대에 들어가, 1828년 장교가 되었다. 이후 프로이센 전쟁 대학에 들어가, 2년동안 공부한 후 카를 폰 뮈플링과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알브레히트의 보좌관이 되었다. 이후 1843년 대위, 1848년 소령이 되었다. 나중에 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보좌관이 되었다. 이후 중령을 거쳐 대령으로 승진후, 만토이펠은 외교적인 임무로 빈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다. 이후 소장으로 승진하였고, 카를 트웨스텐과 결투를 하였다. 중장으로 승진 이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는 슐레스비히 공국의 총독이 되었다. 1857년, 만토이펠은 육군 내각의 수장이 되었다. 보오전쟁에서 랑엔잘차 전투의 패배에 어느정도 책임과 참모부와의 갈등이 있었던 에두아르트 보겔 폰 팔켄슈타인을 대신하여 서독일에 배치된 프로이센군을 지휘하였다. 만토이펠은 뷔르츠부르크를 점령하였고, 그 일로 1866년 8월 7일, 푸르 르 메리트를 받았다.
만토이펠은 이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도 참전하였다. 그는 제1군 휘하의 제1군단을 지휘하였다. 만토이펠은 아미앵 전투에서 승리하고 루앙을 점령하였다. 하지만, 바파우메 전투에서는 운이 좋지 않았다. 1870년 12월 24일, 그는 푸르 르 메리트에 백엽을 추가하였다. 이후 만토이펠은 남부군의 사령관이 되어 부바키 장군의 동부군을 섬멸하였다. 이후 만토이펠은 대십자 철십자상을 받았다.
전후 만토이펠은 검은 독수리 훈장을 받았으며, 1873년 9월 19일 원수가 되었다. 이후 그는 여러 외교 사절에 기용되었고 한동안 베를린 총독이 되었으며 1879년에는 알자스의 총독이 되었다. 알자스에서는 그를 교양있고 인간적이었다고 평가했다. 1885년 만토이펠은 전역하지 않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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