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오 부트라게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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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오 부트라게뇨의 역임 직책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호세 A. 카마초
(1984~1988)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1988~1992)


호세 마리 바케로
(1992~1993)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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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실버슈.png

1986 FIFA 월드컵 실버슈
[1]
파일:라리가 심볼(2016~2023).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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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91 라리가 득점왕



1986 Ballond'or
수상
이고리 벨라노프
2위
게리 리네커
3위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1987 Ballond'or
수상
루드 굴리트
2위
파울로 푸트레
3위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파일:Guerinsportivologo.png
Player of the Year 1986
수상
디에고 마라도나

2위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3위
게리 리네커
호르헤 부루차가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이언 러시


레알 마드리드 CF 홍보 단장
Real Madrid Club de Fútbol

파일:Emilio-Butragueño.png

이름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Emilio Butragueño
본명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산토스
Emilio Butragueño Santos
출생
1963년 7월 22일 (60세) /
스페인국 마드리드
국적
[[스페인|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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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0cm[1]체중 72kg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경영인
소속
선수
레알 마드리드 CF (1981~1982 / 유스)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1982~1984)
레알 마드리드 CF (1984~1995)
클루브 셀라야 (1995~1998)
기타
레알 마드리드 CF (2004~2006 / 부회장)
레알 마드리드 CF (2013~ / 홍보단장)
국가대표
69경기 26골[2] (스페인 / 1984~1992)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기타



1. 개요[편집]


스페인 국적의 前 축구 선수. 현재 레알 마드리드 CF 홍보 단장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마드리드 태생으로, 레알 마드리드 유스부터 성인 팀까지 직행한 순혈 선수이다. 또한 라울 곤살레스페르난도 토레스의 우상으로, 우고 산체스와 함께 1980년대 레알 마드리드를 이끈 팀의 에이스였다. 또한 라울 곤살레스 이전의 7번으로서 레알 마드리드의 7번 계보에 한 획을 그었다. 별명은 '독수리'.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파일:Emilio Butragueño(Real Madrid Club de Fútbol).jpg}}}

1981년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에서 후보 선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84년 성인 팀으로 승격, 2월 5일 카디스전에서 후반에 투입되어 성인 팀 데뷔를 가졌다. 당시 레알은 2:0으로 지고 있었는데, 부트라게뇨가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 활약 이후 부트라게뇨는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마놀로 산치스, 마르틴 바스케스, 미첼, 미겔 파르데사라는 선수들과 함께 'La Quinta del Buitre(독수리 오 형제)'라 불린 유스 출신 5인방을 결성했다. 또한 우고 산체스라는 걸출한 파트너 공격수까지 더하여 1980년대 레알 마드리드의 부흥을 이끌고 간판 스타로 군림했다.

부트라게뇨는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유망주에게 주어지는 브라보 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이후 우고 산체스 등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5년 연속 라리가 우승, UEFA컵 2년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그 과정에서 부트라게뇨 본인도 두 자릿수 득점을 계속 기록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86년, 1987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 올랐으며 1991년에는 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부트라게뇨는 노쇠했고, 1995년 6월 8경기 1골이라는 부진한 성적과 17살 신예 라울 곤살레스의 데뷔로 입지를 잃은 부트라게뇨는 멕시코의 클루브 셀라야로 이적하였고, 1998년 4월에 그곳에서 은퇴했다. 클럽 통산 497경기 189골을 기록했다.


2.2. 국가대표[편집]



파일:에밀리오 부트라게뇨(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jpg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했는데, 부트라게뇨는 UEFA 유로 1984에서 스페인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스페인 대표팀에 승선해, 16강전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혼자서 4골을 넣으며 스페인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이 승리 이후 스페인은 호기롭게 8강에서 벨기에와 붙었으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고 말았다.[3] 그러나 부트라게뇨는 16강전을 비롯한 활약으로 총 5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4] 실버슈를 수상했고 최고 선수의 모습을 보였다.

UEFA 유로 1988에서는 덴마크를 상대로 골을 넣어 3:2 승리를 이끌었으나 이탈리아서독에게 패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고 스페인은 16강에서 연장 끝에 유고슬라비아에게 패배해 탈락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침투 후 마무리'에서 말 그대로 최고였던 선수. 기술적으로 뛰어나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득점'을 누구보다도 잘 했던 선수였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이 패스축구를 통해 본격적인 강팀의 길에 들어서기 이전, 스페인 최고의 스타는 부트라게뇨일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자랑했다.

부트라게뇨는 독수리라는 별명처럼 빠른 침투 스피드를 자랑하는 공격수였지만, 그 무엇보다도 득점 상황에서 놓치지 않는 발군의 골 결정력이 유명했다. 바로 부트라게뇨의 이 득점에 대한 천부적 재능 때문에 그의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플레이가 가능했다.파이널 서드에서의 득점 능력도 탁월했지만, 레알 마드리드 커리어 통산 120골에서 대부분의 득점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이루어진 것일만큼 박스에서 마무리하는 능력이 최상급이었다. 전체적으로 빠른 속력과 천부적인 본인의 득점감각을 제대로 융합하여 활용할 줄 알았던 선수로, 한순간 침투에 이어 마무리 패스나 슛으로 결정을 짓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후배인 페르난도 토레스와 여러모로 유사한 타입.

다만 포쳐로서 뛰어났던 선수인 만큼 기술적으로 완벽한 선수는 아니었고, 작은 신장 때문에 몸싸움에 강점을 보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뛰어난 일관성과 위치선정, 전술 이해도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20세기 말 레알 마드리드와 세계 축구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수상[편집]




5. 기타[편집]


  • 선수 시절 사진을 보면 엄청난 꽃미남이다.

2013년 6월 17일에는 레알 마드리드 축구 학교 홍보 차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한국은 경기에서 특유의 혼을 발휘하는 것 같다."라며 경쟁력 있는 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 선수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레드 카드를 받은 적이 없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eibuk.png}}} ||
세이부 컵 축구 외수판에만 등장하는 스페인 대표팀의 주장이자 모델이다.

  • 딸인 나탈리아는 매우 우수한 발레리나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골닷컴 선정 시대별 공격수 5인.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80년대 공격수들 중 4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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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파 온라인 시리즈로 부트라게뇨를 알게된 사람들의 경우, 피파 온라인 2에서 부트라게뇨의 키가 178cm로 표기되어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는 EA의 실수로 후속작인 피파 온라인 3부터는 정상적으로 환원되었다.[2] 대표팀 역대 득점 8위.[3] 멕시코 사람들은 이를 ‘몬테수마의 복수’라 일컬으며 통쾌해 했다. 몬테수마의 복수란 멕시코 여행에서 겪는 설사(물갈이)를 일컫는 관용어로, 스페인 제국에 정복당한 아즈텍 제국틀라토아니 몬테수마 2세가 멕시코 방문자들에게 저주를 내린다는 의미이다.[4] 득점왕은 게리 리네커가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