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빙 크리스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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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 관련 문서 (사회주의 · 현대자유주의(←1934년 이전) · 자유지상주의 · 보수주의(대안 우파))

* 중도우파적 사회관(온건 사회보수주의) 한정. 고전적 자유주의/재정보수주의 요소까지 포함된 일반적인 미국의 보수주의 그 자체라기 보다는 미국의 사회보수주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식민지 시대~미국 독립 전쟁 시기에 대영제국에 충성하던 친영 왕당파 세력. 현대 미국 보수주의에는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분파




Utopian political doctrines are to be deplored, and not only because of their unattainability; in practice they will have worse effects than those more conservative and cautious

유토피아적인 정치 담론들은 개탄받아야 하며, 그게 단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많은 아니다. 그것들은 실제로 보수적이고 신중한 것들보다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빙 크리스톨 (1943년 에세이) #


1. 개요
2. 상세
3. 사상


1. 개요[편집]


어빙 크리스톨(Irving Kristol)은 미국의 우파 지식인이다.


2. 상세[편집]


어빙 크리스톨은 "신보수주의의 대부" (the godfather of neoconservatism) 라고 불린다. 그러나 원래 그는 좌파 운동권이였다. 1940년 뉴욕의 시립대학을 졸업한 이후 트로츠키주의자로서, 사회주의 청년단체에서 활동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상을 온건화하여 냉전 자유주의자(반공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1947년부터 52년까지 자유주의 언론인 코멘터리(Commentary)에 글을 기고했으며[1], CIA의 지원을 받아 서베를린에서 설립된 반소 선전기관인 문화적 자유를 위한 회의(Congress for cultural freedom)에 소속되었다. 1965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라 불리는 일련의 좌파적 복지정책과 당시 청년층에게서 유행하던 반문화, 반체제 운동을 비판하기 위해 퍼블릭 인터레스트(The Public Interest)라는 이름의 잡지를 창간했다. 이 잡지는 70년대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신보수주의 언론이 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는 다른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논객들과 함께 주류 미국 자유주의가 급진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했고[2] 자유주의적 매파였던 크리스톨은 민주당이 반공적이고 강경한 외교정책을 펼 것을 주문했다. 1972년 신보수주의 운동에 호의를 보낸 '미국 기업 연구소'라는 싱크탱크에 위촉되었고, 이 시기에 경제적 자유주의, 외교적 매파, 문화적 자유주의와 보편복지에 대한 제한적인 지지 및 급진주의, 히피 운동에 대한 반대 등 신보수주의 사상을 집대성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선을 지지하던 민주당 내 일부 당원들은 1973년 사회주의자인 마이클 해링턴(Michael Harrington)에 의해 "신보수주의"라고 지칭되었다. 이 명칭은 그를 비롯한 민주당 내 찬전파 자유주의자들을 경멸할 목적으로 만든 멸칭이었지만 역설적으로 크리스톨이 이 명칭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그렇게 신보수주의라는 이름이 정착된다. 1979년에는 에스콰이어 잡지 표지에 '신보수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정치 운동의 대부'라 지칭되기에 이른다.


3. 사상[편집]


68운동 당대 신좌파 영향으로 유행하던 사회주의와 급진적인 문화운동 등에 반대했다. 또한 자유주의자들의 대공산권 외교적 유화책에도 반대했다. 그렇다고 문화적으로 강경한 보수주의자는 아니였지만, 현대 신보수주의자의 철학적 뿌리가 되었다.

그는 이상론적인 사상들을 부정적으로 보았고, 자유민주주의부르주아자본주의(bourgeois capitalism)가 현실에서 그나마 가장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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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이 코멘터리는 70년대에 크리스톨처럼 신보수주의 성향으로 우경화했다.[2]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68운동, 신좌파 운동 등이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즉 온건 리버럴들 눈에는 민주당이 외교적으로 공산권에 너무 유화적이고, 문화적으로도 너무 신좌파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