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오스 2세(트라페준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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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알렉시오스 2세(트라페준타 제국).jpg
이름
알렉시오스 메가스 콤니노스
(영어: Alexios Megas Komnenos, 그리스어: Αλέξιος Μέγας Κομνηνός)
출생
1282년
사망
1330년 5월 3일
직위
트라페준타 제국 황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트라페준타 제국 제9대 황제.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명군이다.


2. 생애[편집]


트라페준타 제국 제 7대 황제 요안니스 2세미하일 8세의 셋째 딸인 에우도키아 팔레올로기나의 아들이다. 1297년 8월 16일 부친이 사망한 후 황위에 올랐지만, 14살의 어린 나이었기에 삼촌인 안드로니코스 2세 황제가 후견인이 되어줬다. 그는 알렉시오스를 고등 관료인 니키포로스 초우노스의 딸과 결혼시키려 했지만, 그는 1300년 안드로니코스 2세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이베리아 공주 치차크 자켈리와 결혼했다. 안드로니코스 2세는 총대주교에게 결혼을 무효화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총대주교는 이베리아 공주가 이미 임신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안드로니코스는 결혼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안드로니코스 2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황제가 된 그는 트라페준타 제국 역사상 가장 유능한 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1301년 또는 1302년, 칼라비아 지방을 정복하였다. 또한 트라페준타 제국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인 케라수스를 약탈하려고 침입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침략을 격파하고 지휘관을 사로잡았다. 그는 또다른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도시 인근 해안가에 요새를 건설했다. 한편, 그는 흑해의 상권을 장악한 제노바 인들과도 대립하였다. 당시 제노바 인들은 1261년의 님파이움 조약 이래 베네치아의 개입을 뿌리치고 흑해에 식민지를 구축하는 등 빼어난 활약을 벌였다. 그들은 이에 기세등등해져 알렉시오스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했다.

1306년 알렉시오스가 그들의 상품에 관세를 부가하려 하자, 그들은 트라페준타를 완전히 떠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황제는 용병들을 이끌고 제노바인들을 공격했고, 제노바인들은 트라페준타 교외에 불을 지른 뒤 달아났다. 이후 제국과 제노바는 전쟁에 들어갔지만, 1314년 양자가 통상 조약을 갱신하기로 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양자 사이의 갈등을 완전히 종식시키지 못했다. 알렉시오스는 1319년 제노바의 라이벌인 베네치아와 통상계약을 체결하여 제노바와 똑같은 대우를 해줌으로써 제노바를 견제했다.

알렉시오스는 시노페의 에미르가 부리는 해적들을 막는 일에도 힘을 기울었다. 해적들은 시노페 에미르의 보호를 받으며 기독교 상인들을 습격하였고, 트라페준타를 종종 습격해 교외를 약탈했다. 그는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1324년 도시 항구에 해벽을 쌓았으며, 야간 경호를 위해 경찰대를 조직했다. 한편 1329년경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알렉시오스 2세 치하에서, 트라페준타는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영토는 비록 작았지만 부는 웬만한 왕공들을 상회할 정도였다고 한다. 33년의 긴 치세 후 1330년 5월 3일 림프절 페스트로 인해 사망하였고, 황위는 장자 안드로니코스 3세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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