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니코스 1세 기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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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안드로니코스 1세 기도스.jpg
이름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 기도스
(Ανδρόνικος Κομνηνός Γίδος)
출생
미상
사망
1235년
직위
트라페준타 제국 황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트라페준타 제국 제2대 황제. 이리니 팔레올로기나와 함께 트라페준타 역대 황제 중 유이한 비(非) 메가스 콤니노스 가문 출신 황제.


2. 생애[편집]


황제가 되기 전의 전반적인 생애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니케아 제국 초대 황제 테오도로스 1세의 핵심 장성이었던 안드로니코스 기도스와 동일인이라는 설이 있으나 불확실하다. 트라페준타 제국 초대 황제 알렉시오스 1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딸과 결혼하였고, 1222년 알렉시오스가 사망한 뒤 알렉시오스의 두 아들을 제치고 황제가 되었다.

1223년 시노크의 룸 술탄국 총독은 트라페준타 제국의 크림 반도 해안을 공략하여 무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함대를 집결했다. 이때 연례 공물을 실은 트라페준타 제국 소속 배가 폭풍우에 휩쓸려 시노페 항구로 들어오자, 총독은 화물, 승객, 선원들을 압류하고 함대를 파견하여 크림반도의 중요한 항구인 솔다이아를 점령하고 1224년 요새를 건설했다. 안드로니코스는 즉각 함대를 소집하여 시노페로 돌아온 룸 술탄국의 함대를 기습하여 크림 반도에서 약탈한 재물을 모두 되찾았다. 술탄 알라엣틴 케이쿠바트 1세는 즉시 군대를 소집하여 트라페준타로 진격했다. 안드로니코스는 모든 군대를 소집하여 도시로 통하는 통로에서 룸 술탄국의 선봉대를 격파한 뒤 성벽 안으로 철수했다.

술탄은 성 에우제니오스 수도원 인근에 숙영지를 세운 뒤 성벽 밖 교외에 불을 질렀다. 이후 요새를 살펴본 뒤 바다쪽에서 공격하기로 했다. 그러나 투르크군의 일련의 공세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마지막 공격에서는 우박을 동반한 갑작스런 뇌우가 쏟아지면서 병사들이 겁에 질러 달아났으며, 많은 투르크군이 산에서 밀려온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기도 했다. 결국 술탄은 철수한 뒤 협상을 제의했다. 안드로니코스는 그를 패장이 아닌 일국의 제왕으로서 명예롭게 대했고, 술탄은 감명을 받아 트라페준타 제국이 앞으로 룸 술탄국에 병력을 지원하거나 조공이나 선물을 보낼 의무가 없다는 협정을 체결했다. 또한 성 에우제니오스 수도원에 지원금을 보냈고, 아랍 종마를 트라페준타에 매년 보내기로 했다.

1230년, 잘랄 웃 딘 밍부르누조지아 왕국을 신종시킨 뒤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출을 꾀하면서 트라페준타 제국에 자신과 룸 술탄국 중 한쪽을 고르라고 요구했다. 안드로니코스는 고심 끝에 잘랄 웃 딘과 동맹을 체결했다. 그러나 1230년 잘랄 웃 딘은 아클라트 전투에서 룸 술탄국에게 패배했고, 그의 많은 부대는 트라페준타로 피신했다. 그 후 잘랄 웃 딘은 술탄국에 고용된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다. 술탄 알라엣틴 케이쿠바트 1세는 자신을 배신한 트라페준타를 무력으로 응징하지는 않았지만, 6년 전 맺었던 협약을 취소하고 조공과 병력을 반드시 바치도록 하였다.

1235년경 사망하였고, 알렉시오스 1세의 장남 요안니스 1세가 뒤를 이어 트라페준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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