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테 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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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 빌헬름 2세의 황후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Auguste Viktoria von Schleswig-Hol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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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프리데리케 루이제 페오도라 예니
(Auguste Viktoria Friederike Luise Feodora Jenny)
출생
1858년 10월 22일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 돌치크 궁전
사망
1921년 4월 11일 (향년 62세)
네덜란드 도른 하우스
배우자
빌헬름 2세 (1881년 결혼)
자녀
빌헬름, 아이텔 프리드리히, 아달베르트, 아우구스트 빌헬름, 오스카, 요아힘, 빅토리아 루이제
아버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프리드리히 8세
어머니
호엔로에랑엔부르크의 아델하이트 공녀
형제
카롤리네 마틸데, 에른스트 귄터 2세, 루이제, 페오도라
1. 개요
2. 작위
3. 생애
3.1. 결혼
3.2. 황후
3.3. 사망
4.1. 자녀



1. 개요[편집]


파일: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황후.jpg
빌헬름 2세의 황후이자 독일 역사상 마지막 황후이다.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그리스의 왕비 프리데리키의 할머니이다. 애칭은 도나.


2. 작위[편집]


파일:Coat_of_Arms_of_Empress_Augusta_Victoria.svg.png
문장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아우스텐부르크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공녀 전하 Her Serene Highness Princess Augusta Victoria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Augustburg (1858년 10월 22일 ~ 1881년 2월 27일)
  • 프로이센의 빌헬름 왕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William of Prussia (1881년 2월 27일 ~ 1888년 3월 9일)
  • 독일의 황태자비, 프로이센의 황태자비 전하 Her Imperial and Royal Highness The German Crown Princess, Crown Princess of Prussia (1888년 3월 9일 ~ 1888년 7월 15일)
  • 독일의 황후, 프로이센의 왕비 폐하 Her Imperial and Royal Highness The German Empress, Queen of Prussia (1888년 7월 15일 ~ 1921년 4월 21일)


3. 생애[편집]


1858년에 태어났다. 남편 빌헬름 2세보다 1살 연상이다.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의 외할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이부언니인 라이닝겐의 페오도라 공녀다. 빌헬름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이므로, 두 사람은 육촌이다.


3.1. 결혼[편집]


파일:아우구스테 빅토리아 젊은 시절.jpg
원래 빌헬름 2세는 아우구스테 빅토리아가 아니라 이종사촌동생인 헤센의 엘리자베트 공녀와 결혼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거절당하고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와 결혼했다.[1]

원래 프로이센 왕실은 아우구스테 빅토리아가 일국의 공주가 아닌 일개 공녀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지만 빌헬름 황태손이 결혼하겠다고 밀어붙혔고, 오토 폰 비스마르크 역시 이 결혼으로 프로이센 왕실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가문과의 분쟁이 종식될 수 있을 것이라며 둘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기에 두 사람은 결혼할 수 있었다.

파일:빌헬름 2세 부부.jpg
빌헬름 2세 부부.

남편 빌헬름 2세와의 부부관계는 좋았고, 슬하에 6남 1녀를 두었다. 가부장적인 독일 제국프로이센 왕국에서 아우구스테 빅토리아는 보수적이고 남편에게 순종적이었고 결혼 이후 아들만 줄줄 낳는 등, 전통적인 가치관에 잘 들어맞는 배우자감이여서 시할아버지시할머니도 아우구스테를 마음에 들어했다.

반면 시어머니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우구스테는 종종 뒤에서 시어머니를 까댔으며 자녀들이 할머니의 자유주의 사상에 물들까봐 멀리하게 했다. 한편 빅토리아 또한 적십자사의 수장이라는 칭호가 간호사나 자선 경험이나 관심이 없는 아우구스테에게 돌아간 것에 대해 분노하기도 했다.

이후 1888년 시할아버지 빌헬름 1세가 사망하고 시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빌헬름 2세 부부는 황태자, 황태자비가 되었고, 불과 99일만에 프리드리히 3세가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황태자였던 남편 빌헬름 2세는 황제로 즉위하였고 황태자비였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도 황후가 되었다.


3.2. 황후[편집]


아우구스테 황후는 남편 빌헬름 2세가 황제가 된 이후 군사 훈련을 위해 자리를 비운 동안 시어머니 빅토리아 황태후와 관계가 어느정도 개선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마차를 타고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황후는 시어머니 빅토리아 황태후가 1901년 유방암으로 사망했을 때 빅토리아 황태후의 곁에 있었다.

아우구스테는 셋째 시누이인 그리스의 왕비 소피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1890년 소피아가 그리스 정교회개종할 의사를 밝히자 아우구스테는 소피아를 불러 남편 빌헬름 2세는 프로이센의 옛 지방 복음주의 교회의 수장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피아는 독일에서 추방되고 소피아의 영혼은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피아는 올케에게 참견하지 말라며 강하게 나갔다. 이에 히스테리를 일으킨 아우구스테는 막내아들 요아힘 왕자를 조산했고, 그 결과 요아힘 왕자가 섬세하다고 믿으며 평생 그를 과잉 보호했다. 남편 빌헬름 2세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어머니인 빅토리아 황태후에게 만약 아기인 요아힘이 죽었다면 소피아가 죽인 것이라는 편지를 썼다.[2]

파일:빌헬름 2세 부부와 손자들.jpg
남편 빌헬름 2세와 손자들.

파일:s-l1600-01.jpg
며느리 체칠리에 황태자비와 손자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있는 아이가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왕자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 패전하고 독일 11월 혁명으로 제정이 폐지 되면서 독일 황후와 프로이센 왕후 자리에서 내려왔다.


3.3. 사망[편집]


제정 폐지 이후 남편과 함께 네덜란드 도른으로 이주했다. 1920년 막내아들 요아힘 폰 프로이센 왕자가 이혼 후 권총으로 자살했고,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우구스테 빅토리아는 안 그래도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막내 아들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고 건강이 악화되어 1921년에 사망했다. 향년 62세.

남편 빌헬름 2세는 아내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시신은 독일 포츠담의 새 궁전에서 멀지 않은 골동품 사원으로 이송돼서 그곳에 묻혔다. 빌헬름은 독일에 입국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 여행에 아내와 함께 독일 국경까지만 갈 수 있었다. 이후 빌헬름 2세는 1922년 로이스그라이츠의 헤르미네 로이스와 재혼했고, 아우구스테 빅토리아가 사망하고 20년 뒤인 1941년에 사망했다.[3]


4. 가족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호엔촐레른 가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 자녀[편집]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독일 제국의 빌헬름 황태자
(Wilhelm, German Crown Prince)
1882년 5월 6일
1951년 7월 20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여공작 체칠리에[4]
슬하 4남 2녀[5]
2남
아이텔 프리드리히 왕자
(Prince Eitel Friedrich)
1883년 7월 7일
1942년 12월 8일
올덴부르크의 여공작 조피 샤를로테
3남
아달베르트 왕자
(Prince Adalbert)
1884년 7월 14일
1948년 9월 22일
작센마이닝겐의 공녀 아델하이트[6]
슬하 1남 1녀
4남
아우구스트 빌헬름 왕자
(Prince August Wilhelm)
1887년 1월 29일
1949년 3월 25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공녀
알렉산드라 빅토리아[7]
슬하 1남
5남
오스카 왕자
(Prince Oskar)
1888년 7월 27일
1958년 1월 27일
이나 마리 폰 바스비츠 여백작
슬하 3남 1녀
6남
요아힘 왕자
(Prince Joachim)
1890년 12월 17일
1920년 7월 18일
안할트의 공녀 마리 아우구스테
슬하 1남[8]
1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부인 빅토리아 루이제
(Viktoria Luise, Duchess of Brunswick)
1892년 9월 13일
1980년 12월 11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스[9]
슬하 4남 1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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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엘리자베트의 여동생인 헤센의 이레네 공녀는 빌헬름 2세의 첫째 남동생인 하인리히 왕자와 결혼했다. 만약 둘이 결혼했다면 겹사돈이 될 수도 있었다.[2] 소피아도 이것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많이했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도 소피아를 독일의 스파이라고 오해했다고.[3] 참고로 헤르미네 로이스의 딸 헨리에테는 빌헬름 2세와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의 막내 손자인 카를 프란츠와 결혼해서 세 아들을 낳고 이혼하게 된다.[4]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의 차녀로 덴마크의 알렉산드리네 왕비의 여동생이기도 하다.[5]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등.[6]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아내인 작센마이닝겐의 공녀 레기나의 둘째 고모이다.[7] 빌헬름 2세의 외사촌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카를 에두아르트의 처제로, 아우구스트 빌헬름 본인의 이종사촌(아우구스테 빅토리아의 여동생 카롤리네 마틸데의 딸)이기도 하다.[8] 카를 프란츠. 카를의 큰아들이자 요아힘 왕자의 손자인 프란츠 빌헬름은 로마노프 왕조의 현 수장(논란 있음) 마리야 여대공과 결혼했다가 아들 게오르기 공(1981년생)을 두고 이혼했다.[9] 하노버 왕조 참고. 게오르크 5세의 손자이자 크리스티안 9세의 외손자이다.[10]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그리스 왕국의 왕비 프레데리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