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마이닝겐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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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마이닝겐 공국
Herzogtum Sachsen-Meiningen

파일:작센마이닝겐 공국 국기.svg
파일:작센마이닝겐 공국 국장.png
국기
국장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erman_Empire_-_Saxe_Meiningen_%281871%29.svg.png
1680년 ~ 1918년
역사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작센고타 공국
바이마르 공화국
지리
위치
독일 튀링겐
수도
마이닝겐
인문환경
언어
독일어
종교
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민족
독일인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원수
공작
1. 개요
2. 역사
3. 왕사(王史)
3.1. 공위요구자



1. 개요[편집]


신성 로마 제국, 북독일 연방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국이었으며 수도는 마이닝겐이었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2,468 km², 인구 26만 9천가량이었다.


2. 역사[편집]


오늘날 튀링겐 지역에 위치한다. 베틴 가문 에른스트 계통의 영지 중 하나로 1680년에 탄생했다. 1826년 에른스트 계통의 영지가 재편성될 때는 힐드부르크하우젠[1]과 잘펠트[2]를 얻었다. 베른하르트 2세는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을 드는 바람에 프로이센으로부터 양위를 강요당했다. 이후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잠시 작센마이닝엔 자유주가 되었다가 1920년에 튀링겐으로 편입되었다.


3. 왕사(王史)[편집]




  • 베른하르트 1세 (1680-1706) -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마이닝엔 궁정 오케스트라(Meininger Hofkapelle)를 창설했다.
  • 에른스트 루트비히 1세 (1706-1724)
  • 에른스트 루트비히 2세 (1724-1729)
  • 카를 프리드리히 (1729-1743)
  • 프리드리히 빌헬름 (1743-1746)
  • 안톤 울리히 (1746-1763)
  • 카를 빌헬름 (1763-1782)
  • 게오르크 1세 (1782-1803) - 영국 하노버 왕조의 국왕 윌리엄 4세의 장인이다. 윌리엄 4세의 왕비 작센마이닝겐의 아델라이드가 게오르크 1세의 딸이다.
  • 베른하르트 2세 (1803-1866)
  • 게오르크 2세 (1866-1914) - 연극 애호가로 세 번째 아내인 여배우 엘렌 프란츠와 함께 마이닝엔 극단(Meiningen Ensemble)을 창설했다.
  • 베른하르트 3세 (1914-1918) - 프리드리히 3세빅토리아 황후[3]의 장녀 샤를로테 공주와 결혼했다. 그러나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수장직은 동생인 에른스트에게 넘어갔다.

3.1. 공위요구자[편집]


  • 베른하르트 3세 (1918-1928)
  • 에른스트 (1928-1941) : 1859~1941. 게오르크 2세의 차남. 형에게 아들이 없었던 관계로 수장직을 계승했지만 카타리나 옌센(Katharina Jensen)이라는 평민과 귀천상혼하여, 에른스트의 자녀들은 잘펠트 남작(Baron von Saalfeld)이라는 귀족 칭호만 사용할 수 있었다.
  • 게오르크 (1941-1946) : 1892~1946. 게오르크 2세의 삼남 프리드리히 요한의 장남. 나치당원이었다. 소련에 끌려가 굴라그에서 사망. 일반 백작가문의 딸과 결혼해 2남 2녀를 뒀지만 장남 안톤-울리히는 프랑스 침공에서 전사한데다, 차남 프리드리히 알프레트는 승계권을 포기하고 카르투시오회의 신부가 됐다. 차녀 레기나는 오토 폰 합스부르크와 결혼.[4]
  • 베른하르트 (1946-1984) : 1901~1984. 게오르크 2세의 삼남 프리드리히 요한의 삼남.[5] 초혼은 평민 딸과 하여 귀천상혼으로 1남 1녀를 두었고, 남작가문의 딸과 재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 콘라트(1984-) : 1952~. 베른하르트 4세의 후처 소생 아들. 전직 은행원. 어머니가 귀족이라 이복형 프리드리히 에른스트(1935~2004)를 제치고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미혼.
    • 후계자(?) 프리드리히 콘스탄틴 : 1980~. 프리드리히 에른스트의 아들. 어머니가 작센코부르크고타카를 에두아르트의 손녀[6]지만 할머니가 평민이라는 이유로 후계자 지위에 논란이 있다. 일단 콘라트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 조카 프리드리히 콘스탄틴의 승계에 호의적이다. 2015년 여름에 아들 미하엘을 보았으나, 혼인 중에 태어났는지가 알려지지 않아서(...) 프리드리히 콘스탄틴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지는 미상. 이외에 다른 승계권자는 없다.
작센마이닝겐 공가의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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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스바흐 전투의 신성로마제국군 지휘관이 이 가문 사람이다. 참고로 프랑스 측 지휘관은 수비즈 공 샤를 드 로앙으로 희대의 졸장이다.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가는 이 영지조정 과정에서 후사가 끊긴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가의 영지 중 알텐부르크를 새롭게 얻어 작센알텐부르크 공가가 된다.[2] 원래 코부르크와 더불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의 영지였다. 이 영지조정 때 잘펠트를 넘기고 단절된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가가 다스리던 고타를 새로 얻는다.[3] 빅토리아 여왕앨버트 공의 장녀[4] 장녀 마리 엘리자베트는 생후 103일에 요절[5] 프리드리히 요한의 차남은 1차대전 때 전사.[6] 3남(이지만 가문 수장을 이어받은) 프리드리히 요시아스의 딸 베아트리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