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할트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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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할트 공국
Herzogtum Anhalt

파일:안할트 공국 국기.svg
파일:안할트 공국 국장.png
국기
국장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erman_Empire_-_Anhalt_%281871%29.svg.png
1806 ~ 1918
역사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작센 공국
바이마르 공화국
지리
위치
독일 작센안할트
수도
데사우
인문환경
언어
독일어
종교
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민족
독일인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원수
공작

1. 개요
2. 약사
3. 공작 승계
3.1. 공위요구자
4. 이모저모



1. 개요[편집]


신성 로마 제국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국. 수도데사우였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2,300 km², 인구 32만 8천 가량.


2. 약사[편집]


아스카니아 가문(Haus Askania)[1]이 다스리던 안할트는 13세기 이후 분할상속되어 여러 영지로 나누어졌다. 종교 개혁 시기에 루터파로 개종하였고, 지리적으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주변에 있는 소국이었기 때문에 호엔촐레른 가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18세기 초반 "Der Alte Dessauer"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안할트데사우 공작 레오폴트 1세는 영지 다스리는 건 때려치고 아예 프로이센군 원수로 복무했는데[2], 군인왕으로 불린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베프를 먹었고 유럽에서 최초로 꼬질대(ramrod) 즉, 총에 대검을 꽂는 장치를 최초로 고안[3]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18세기 들어서 안할트체르프스트(Anhalt-Zerbst)에서 러시아 제국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4]를 배출하기도 했지만, 안할트체르프스트 계통은 1793년에 단절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 때까지 남아 있던 안할트베른부르크(Anhalt-Bernburg), 안할트데사우(Anhalt-Dessau), 안할트쾨텐(Anhalt-Köthen) 3국을 공국으로 승격시켰다. 1847년 안할트쾨텐이, 1863년 안할트베른부르크가 각기 대가 끊김에 따라 안할트데사우 공국으로 통합되었다.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하였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 여파로 요아힘 에른스트 공작이 퇴위[5]하였고, 이듬해 바이마르 공화국의 주가 되어 안할트 자유주 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독에 편입되었다. 독일 재통일 이후 부활한 작센안할트에 흡수되었다.


3. 공작 승계[편집]




1863년 통합 이후

  • 레오폴트 4세 (1863-1871)
  • 프리드리히 1세 (1871-1904)
  • 프리드리히 2세 (1904-1918.4.21.)
  • 에두아르트 (1918.4.21.-1918.9.13.)
  • 요아힘 에른스트 (1918.9.13.-1918.11.12.)


3.1. 공위요구자[편집]


  • 요아힘 에른스트 (1918-1947) : 소련군에 체포되어 부헨발트에 설치된 제2NKVD 특수캠프에서 사망.
  • 프리드리히 (1947-1963) : 1938~1963. 요아힘 에른스트의 장남. 교통사고로 사망.
  • 에두아르트 (1963-) : 1941~. 요아힘 에른스트의 차남. 아스카니아 가문의 마지막 남자 자손.
    • 율리아카타리나(1980~) 포함 3녀

1036년 창립되어 천년 가까이 이어온 아스카니아 가문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현 수장인 에두아르트가 마지막 남자 자손이며 세 딸만 두었다. 2010년 에두아르트는 살리카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그의 맏딸과 그 후손이 가문의 수장이 될 수 있도록 가법을 바꾸었다.#


4. 이모저모[편집]


  • 에두아르트 공의 딸 마리 아우구스테(1898~1980)[6]는 말년에 생계유지 수단으로 35명의 어른들(!)을 입양하였다. 입양해서 공가의 성씨를 달게 해주는 조건으로 돈을 받은 것. 미국에서 이른바 '안할트의 왕자'를 자칭하는 부류들은 이런 식으로 성씨를 얻은 경우지만, 당연히 진짜 아스카니아 가문의 피는 한 방울도 안 섞였다. 애초에 독일에서는 군주로부터 윤허를 받지 않는 한 여자는 친자녀들에게도 작위를 물려줄 수 없는데 하물며 양자는 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당연히 아스카니아 가문의 후손들은 이 사람들을 가문 구성원으로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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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작센브란덴부르크까지 통치하던 유서 깊은 가문이었으나 브란덴부르크 가계는 금인칙서로 황제 선출권을 완전히 확보하기 전인 1320년에 단절되었고, 황제 선출권을 지녔던 작센-비텐베르크 가계는 1422년 단절되어 작센 선제후직은 베틴 가문에게 넘어갔다. 작센-라우엔부르크계는 1689년 단절되었고 라우엔부르크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으로 넘어갔다.[2] 아스카니아 가문처럼 유럽 소국 군주나 통치가문은 주변 대국의 궁정이나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프랑스만 해도 로렌가문이나 로렌가문의 분가인 기즈가문이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군대에서 복무하기도 했고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 소국들도 마찬가지였다.[3] 단, 이 시기 개발한 꼬질대는 나무 꼬질대라 쉽게 부러졌고 수십년 후에 금속꼬질대가 개량되어서 도끼나 장창을 든 병과가 완전이 사라졌다.[4] 부친인 안할트체르프스트 공작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는 프로이센군 소장이기도 했다.[5] 안할트 뿐만 아니라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를 포함한 독일 제국의 모든 군주들이 전원 퇴위하였다.[6] 빌헬름 2세의 막내아들 요아힘 폰 프로이센의 아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