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쓰이 다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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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筒井竹雄 (つつい たけお)[1]

1902년 5월 20일 ~ 1968년 9월 15일

쓰쓰이 다케오는 일본의 관료, 군인이다. 초대 육상막료장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02년 와카야마 현에서 태어났다. 원적지는 히가시나가미치(東長町)이다. 와카야마중학교, 구마모토제5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25년에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고위 공무원이 되었다. 1927년에 조선총독부에 배치되어 특허국, 함경남도 지방과장, 경기도 학무과장, 함경북도 경찰부장 등을 거쳐 황해도지사로 근무하던 중에 종전을 맞았다.

1945년 8월에 소련군에 의해 억류되었다. 이후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1950년 4월에 일본으로 귀국했고, 같은 해 12월에 경찰예비대에 입대했다. 내무성 관료 출신들이 대거 고위직에 등용되었는데, 쓰쓰이 역시 중장 계급에 상당하는 경찰감 계급을 받았다. 시베리아에 4년 이상 억류되었음에도 빠르게 공직에 복귀한 걸 보면 유능했거나 뒷배가 있었던 모양.

1951년 10월에 태풍 루스가 일본에 왔을 때 자위대의 재해파견을 최초로 실시했다. 1954년에 하야시 게이조통합막료회의의장으로 영전하자 육상막료장이 되었다. 1957년 퇴임했고 후임자는 스기야마 시게루이다.

1968년 9월 15일에 별세했다. 훈2등 서보장을 추서받았다.

3. 여담[편집]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인물자료

해당 사이트에서 가족 관계도 확인할 수 있다.

  • 장남 이치로(一郞, 1928년 2월생)
  • 차남 마코토(誠,1929년 6월생)
  • 장녀 기코(紀子, 1931년생)
  • 3남 히로시(宏, 1933년생)


정진석 공저의 <극비 조선 총독부의 언론 검열과 탄압: 일본의 침략과 열강세력의 언론통제>에 따르면, 1940년에 쓰쓰이는 경성에서 총독부의 도서과장으로 근무했다. 해당 책자에서는 쓰쓰이를 조선일보동아일보의 폐간을 주도했던 실무자로 보고 있다. 해당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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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한자음으로는 통정죽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