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야마 시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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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육상자위관
1.1. 개요
1.2. 생애
1.3. 경력
2. 일본의 항공자위관
2.1. 개요
2.2. 생애


1. 일본의 육상자위관[편집]






1.1. 개요[편집]


파일:sugiyama shigeru (杉山茂).jpg

杉山茂(すぎやま しげる)[1]

1902년 4월 28일 ~ 1982년 1월 29일

스기야마 시게루는 일본의 군인, 자위관이다. 2대 육상막료장을 지냈다.


1.2. 생애[편집]


오카야마에서 태어났고 1920년일본육군사관학교 36기로 입학해 1924년 졸업, 임관했다. 1930년육군대학 45기로 입학하였다. 33년에 육대를 졸업한 후 제10사단 참모, 제18군 고등참모 등을 지냈다. 종전 당시 계급은 대좌였다.

전후에 전범재판으로 금고 5년형을 받았으나 공직추방령이 해제됨에 따라 1954년 육상자위대에 입대하여 쓰쓰이 다케오에 이어 2대 육상막료장을 지내고 1960년에 퇴임하였다. 후임자는 스기타 이치지였다. 여담으로 도조 히데키의 사위였다.


1.3. 경력[편집]


  • 1924년 7월(22세): 육군사관학교 졸업(36기) 보병 제54연대 배속
  • 1924년 10월 25일(22세): 육군 소위 임관[2]
  • 1927년 10월 25일(25세): 중위 진급
  • 1928년 8월 10일(26세): 대만보병제2연대 배속
  • 1930년 12월(28세): 육군대학교 입교
  • 1933년 8월 1일(31세): 대위 진급
  • 1933년 11월(31세): 육군대학교 졸업(45기)
  • 1934년 12월 10일(32세): 보병제1연대 참모본부 배속
  • 1936년 12월(34세): 제10사단 참모
  • 1940년 8월(38세): 참모본부 편제동원과 동원반장
  • 1941년 3월(38세): 참모본부 서무과 고급과장
  • 1942년 11월(40세): 제18군 작전주임참모
  • 1943년 7월(41세): 제18군 고급참모
  • 1946년 2월(43세): 예비역
  • 1948년 2월(45세): 전쟁재판 판결이 확정, 금고 5년형[3]
  • 1952년 7월 14일(50세): 일등경찰정(대령) 임명
  • 1952년 8월 23일(50세): 제1막료감부 제3부장
  • 1953년 2월 1일(50세): 보안감보(소장) 진급
  • 1954년 7월 1일(52세): 육장(중장) 진급
  • 1957년 8월 2일(55세): 제3대 육상막료장 취임[4]
  • 1960년 3월 11일(57세): 퇴직, 재단법인 해행사 사장 취임
  • 1972년 11월 3일(70세): 제2등 서보장 수장
  • 1982년 1월 29일(79세): 별세. 정4위에 수여



2. 일본의 항공자위관[편집]







파일:external/www.jidaisassin.jp/lec13-0413w200.jpg
杉山 蕃 (すぎやま しげる)


2.1. 개요[편집]


일본의 항공자위관. 22대 항공막료장과 21대 통합막료회의의장을 지냈다. 위의 인물과는 무관하다.


2.2. 생애[편집]


1938년 1월 16일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1956년방위대학교 4기(공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하였고 1960년에 졸업하여 항공자위대에 입대하였다.

1985년공장보로 승임하였고 제6항공단 사령과 항공총대 사령부 방위부장[5], 항공총대 사령부 막료장(참모장) 등을 거쳤다. 1990년공장으로 승진했고 항공막료부장, 항공총대 사령관을 거쳤다. 1994년이시즈카 이사오에 이어 항공막료장으로 진급했다. 1996년에 항공막료장에서 물러나 무라키 고지에게 이임했고 니시모토 데쓰야에 이어 통합막료회의의장이 되었다. 1997년나쓰카와 가즈야에게 이임하고 자위대를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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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삼산무이다.[2] 일본군은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잠시 견습사관을 거쳐 임관했다. 이러한 형태는 자위대에도 남아서 방위대학교를 졸업한 뒤 각 자위대 간부후보생학교에 들어가 원사 계급으로 훈련을 받는다.[3] 1952년 4월에 샌프란시스코 강화가 이뤄지면서, 공직 추방령도 해제된다.[4] 당시 육상막료장은 대장 계급이 아니라 중장으로 취급됐다. 1962년 이후 대장이 된다.[5] 작전처 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