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 시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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浦 茂 (うら しげる)

1909년 2월 11일 ~ 2001년 11월 18일

1. 개요
2. 생애
3. 계급


1. 개요[편집]


일본군인, 자위관. 5대 항공막료장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09년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서 태어났다. 1928년에 일본육군사관학교 44기[1]로 입학했고 1932년에 졸업하여 육군 소위임관한다. 대본영과 참모본부 등에서 일하던 중에 종전을 맞았고 최종계급은 육군 중좌였다. 임관할 때는 보병이었지만 대위 때 육군 항공병 소속이 되었다.[2]

연합군 최고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중에 1952년 내각조사실 객원요원으로 재무장 계획을 검토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항공전력의 독립을 주장했다. 1954년 항공자위대에 2좌(중령)로 입대했고 공장보 시절에 항공막료감부 장비부장, 방위부장 등을 거쳤다. 공장으로 진급한 후에 항공막료부장 등을 거쳐 1964년에 마쓰다 다케시에 이어 항공막료장에 올랐다. 1966년에 퇴임했고 후임자는 무타 히로쿠니였다.

퇴임 후에 록히드 마틴의 일본 대행사였던 마루베니의 기술기획실장을 지냈다. 이후 해양컨설턴트 회사의 부사장을 지냈다.

1979년에 훈2등 서보장을 받았다. 2001년에 향년 92세로 사망했다.

3. 계급[편집]


  • 1932년 소위
  • 1934년 중위
  • 1937년 대위
  • 1941년 소령
  • 1945년 중령 / 퇴역
  • 1954년 중령 재임용
  • 1955년 대령
  • 1958년 소장[3]
  • 1962년 중장
  • 1964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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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기 중에 세지마 류조가 있다.[2] 항공병과가 처음 생겨날 때는 보병 장교들을 많이 갖다 쓰기도 했다. 애초에 보병 장교가 제일 많기도 하니까. 한국의 해병대 항공단도 재창설을 준비하면서 보병 장교를 조종 장교로 교육시켰다.[3] 준장이 없는 일본의 특성상 소장이라 적었으나 1958년 승진 후에 맡은 직책들은 항공자위대의 주요 특기학교장이었다. 이들은 한국으로 치면 대령이나 준장급의 부대라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소장급 직위라 볼 수 있는 건 공군본부에 해당하는 항공막료감부의 장비부장(한국의 군수참모부장), 방위부장(한국의 작전참모부장) 정도이다. 즉 1958년 진급은 직책으로 보면 준장, 60년부터 소장급 직책을 맡았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