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요시히데

덤프버전 :

파일:일본 국기.svg 자위대의 현역 막료장

[ 펼치기 · 접기 ]

||<-3><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통합막료장 ||
||<-3><bgcolor=#ffffff,#191919><height=43> 파일:육상자위대기.svg 요시다 요시히데 ||
||<width=33%> 육상막료장 ||<width=33%> 해상막료장 ||<width=33%> 항공막료장 ||
||<bgcolor=#ffffff,#191919><height=43> 파일:육상자위대기.svg 모리시타 야스노리 ||<bgcolor=#ffffff,#191919> 파일:해상자위대기.svg 사카이 료 ||<bgcolor=#ffffff,#191919> 파일:항공자위대 마크.svg 우치쿠라 히로아키 ||





역임한 직위
[ 펼치기 · 접기 ]



일본국 제7대 통합막료장
吉田 圭秀
요시다 요시히데 | Yoshihide Yoshida


파일:yoshida(1).jpg

출생
1962년 10월 30일(61세)
도쿄도
학력
도쿄대학 공학부 (도시공학 / 학사)
재임기간
제37대 육상막료장
2021년 3월 26일 ~ 2023년 3월 29일
제7대 통합막료장
2023년 3월 30일 ~ 현직
군사 경력
임관
간부후보생학교 (8기)
복무
육상자위대
1986년 ~ 현재
병과
보통과
현재 계급
통합막료장 (육상자위대)
현재 보직
통합막료장
주요 보직
육상막료장
육상총대사령관
북부방면총감
제8사단장
내각관방 내각심의관
서부방면총감부 막료부장
통합막료감부 보도관
육상막료감부 방위과장
제39보통과연대장
육상막료감부 업무계획반장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논란 및 사건사고



1. 개요[편집]


일본의 자위관.


2. 생애[편집]


1962년 도쿄도 출신이다. 1982년 도쿄대학 공학부 도시공학과로 입학했다. 1986년 육상자위대간부후보생으로 졸업과 동시에 임관하여 육상자위대에 입대했고 3등육위로 임관했다.[1] 1등육좌(대령) 복무 당시 육상자위대간부학교(방위연구소 일반과정 입소)에서 지냈다. 즉 병과는 보통과이다.

2011년 8월에 육장보로 진급했는데 이는 임관 후에 진급에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수준.[2]이다.

2012년 3월에는 통합막료감부 보도관(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으로 임명된 뒤 2013년 8월 서부방면총감부 막료부장으로 재직한뒤 2015년 8월 4일 육상막료감부(육군본부) 방위부장으로 재직한 뒤 내각관방으로 전보되어, 내각사무관 겸 육장보(소장), 내각관방 내각심의관(국가안전보장국) 겸 내각관방부장관보로 근무했다. 2017년 8월 8일에 육장에 진급했다. 육장 진급 후 제8사단장을 지내고 2019년 8월 23일에 북부방면총감으로 이동했으며 2020년 4월 15일에 육상총대사령관으로 전보됐다.

2021년 3월 26일유아사 고로의 뒤를 이어 육상막료장(육군참모총장)의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육상총대사령관으론 처음으로 육상막료장에 오른 케이스이다.

2023년 3월 30일모리시타 야스노리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나서 야마자키 코우지의 뒤를 이어 통합막료장(합참의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3. 여담[편집]


방위대학교 출신이 처음으로 육상자위대하고 항공자위대의 수뇌부에 오른 게 1990년이고 해상자위대에서는 1989년이었다. 1989년 이래로 자위대의 4성 장성은 전원이 방위대학교 출신이었다.[3]

요시다 대장은 33년만에 나온 비 방위대 출신 4성 장성이다. 각군 참모총장급만 대장을 맡는 자위대의 특성을 고려하면 한국의 남영신 대장하고 비슷한 업적을 세운 셈이다. 실제로 월간조선에서도 이를 비교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4]

도쿄대학 출신의 자위대 4성 장성으로는 하야시 게이조(林敬三), 쓰쓰이 다케오(井武夫), 오모리 간(大森寛), 구리스 히로오미(栗栖宏臣) (이상 육자) 야마자키 고고로(山崎五郎)(해자), 우에무라 겐타로(植村元)(공자)가 있다.

이들은 방위대의 장성이 수뇌부를 차지하기 전에 재임했던 인물들이었다. 하야시, 쓰쓰이, 우에무라는 이른바 내무군벌이자 야마자키는 운수성[5] 관료 출신이며 자위대의 초기를 지배했던 관료 출신의 인력이었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방위대학교 출신들의 장성들이 방위상 말을 무시하거나 처신에 문제가 있어서 올릴 사람이 없어서 올린 것으로 보인다. 현직 육상막료장이었던 유아사 고로는 예산안 문제로 방위상과 갈등이 있었고, 그가 밀었던 다케모토 류지 중장은 부대 내 성희롱 문제 등의 이슈가 있었다. 공학 계통의 장성이란 점에서 조직을 장악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있기도 했다. 근데 그건 다케모토 장군도 마찬가지긴 했다. 다케모토는 일본 장교단에서 보기 드문 박사 학위자였다.

원래 육상막료장은 중부방면대, 서부방면대, 북부방면대, 동부방면대 지휘관에서 보통 번갈아 올렸다.[6] 이들은 군단장급 지휘관이다. 그러던 것이 이들의 상위 부대인 육상총대가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3대 총대 사령관들은 육상막료장으로 진출하지 못 했지만, 요시다가 처음으로 육상막료장에 올라가게 된 것이다.

요시다 장군이 입대한 시기는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였다. 당시 자위대의 인기는 점점 떨어져 사병 입대자도 줄고 있었고, 민간에 더 높은 연봉의 기회가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대학교 때부터 현장에서 뛰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한다.

일부 한국 언론에선 그의 이름 圭秀을 음독하여 요시다 게이슈라고 번역하기도 하였다. #


4.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트위터에 따르면 2004년 당시 자위대 소속 간부가 개헌안 문서 초안을 작성하여 자위대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는데 당시 초안을 작성한 인물이 요시다라고 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22:14:55에 나무위키 요시다 요시히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월간조선의 기사에 따르면 바로 간부후보생학교로 간 게 아니라 병사로 복무 중에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시다의 프로필 PDF에 따르면 도쿄대학 졸업 후 바로 육조장(원사) 계급으로 간부후보생학교에 입교한 것으로 나온다. 프로필에 병사 시절이 누락되었거나, 사병 계급으로 훈련을 받는 과정을 사병 복무로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2] 자위대의 경우 위관급 장교에서 약 9.5년(졸업 직후 바로 임관이 아니라 간부후보생학교에서 반 년 이상 교육을 받고 소위가 된다. 그래서 기간이 애매.), 영관급 장교에서 약 15년을 지내야 장성급 장교로 진출이 가능하다.[3] 마지막 비 방위대 4성 진급자는 1987년 12월 11일에 같이 진급한 요네카와 다다요시(米川忠義)하고 데라시마 다이조(寺島大三)이다.[4] 다만 월간조선의 기사는 둘의 커리어를 비교하면서, 남 참모총장을 두고 국내용 인사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5] 지금의 국토교통성.[6] 상대적으로 예하 부대가 작은 동북방면대는 기회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