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자와 히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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冨澤 暉 (とみざわ ひかる)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일본의 육상자위관.

2. 생애[편집]


1938년 3월 도쿄에서 태어났다. 1956년에 도립히비야(日比谷)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는데, 도쿄대학에 진학할 성적이 안 되어서 무료(훈련비 전액 국비 지원)인 방위대학교에 4기(육군사관학교 16기)로 입학하였다. 아버지는 소설가이자 화가인 도미자와 우이오(富沢有為男, 1902-1970)이고 장인은 후지와라 이와이치(藤原岩市, 1908-1986)[1]이다.

1960년에 방대를 졸업한 뒤 육상자위대에서 근무했다. 병과는 보병이었다.

1971년 소령, 1974년 중령, 79년에 대령으로 진급했고 제13보통과연대장, 육상막료감부 인사부 보임과장[2] 등을 지내고 1985년장보로 진급했다. 1990년 중장으로 진급했고 제1사단장과 육상막료부장(육군참모차장), 북부방면대 총감을 지낸 뒤에 니시모토 데쓰야에 이어 1993년 24대 육상막료장(육군참모총장)으로 취임했다.

1995년에 퇴역했다. 후임자는 와타나베 노부토시이다. 전역 후에는 일본방위학회와 동양학원대(東洋学園大) 객원교수 등을 지내고 있다.


3. 기타[편집]


2008년에 전직 항공막료장(공군참모총장)인 타모가미 토시오가 논문 파동[3]을 일으켰을 때 자위대 예비역 단체인 대우회에서 그를 두둔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당시 부회장이었던 그는 이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고 책망하였다.

2014년에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단적 자위권보단 집단안전보장[4]이 더 적합하다고 간접적으로 아베 신조를 비판했다.

2019년에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것으로, 1994년 관열식에서 일본 사회당 출신의 총리인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관열식에 총리 자격으로 참석하여 자위대의 존재를 인정해줬던 일을 꼽았다. 사회당이 오랫동안 일본 좌파 정당으로 자위대에 비판적이었던 걸 감안하면, 그런 무라야마 총리가 자민당과 연립 정권인 점은 감안해도 관열식에 참석한 게 자위대원으로서 인정을 받은 경험이라고 술회했다. #

1994년 북핵 위협 당시, 일본의 동해안 인근 원전들이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바도 있다. # 그러나 2018년에는 북한의 선제 핵공격 가능성은 낮으며, 일본이 테러와 사이버 공격에 준비가 안 되어 그쪽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 북한의 위협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 한국의 입장에선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지향하는 보수의 레토릭으로 느껴지겠지만, 의외로 일본 국내에서 이 발언은 탈원전 파들에게 원전이 안보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인용되기도 했다.[5]

전반적으로 일부러 진보 성향의 언론과도 인터뷰하는 등, 자위대 장성 출신들 특유의 강경 보수 성향과는 거리가 있는 중도 보수 성향의 인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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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육군사관학교 43기로 졸업한 뒤 인도의 친일파들을 중심으로 인도국민군을 편성하는데 참여했다. 일본군 육군 중좌(중령)까지 지냈고 전범으로 잡혔으나 무죄판결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경찰예비대가 생기고 좌관급 장교까지 입대를 허가하자 입대했고 사단장 등을 지낸 뒤 중장으로 1966년에 전역했다. 은퇴한 뒤 인도네시아에 가서 정보원 등으로 일하며 수하르토를 지원했다. 1971년에는 자민당으로 선거에 나갔지만 패했다.[2] 꽤 요직이다. 육상막료장 가운데 이 자리 출신이 많다.[3] 중일전쟁장제스와 코민테른의 음모에 일본군이 넘어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경질되었다.[4] 다수의 국가가 그 상호간에 전쟁, 기타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이에 위반하여 전쟁, 기타의 무력행사를 행하는 국가에 대하여 다수의 모든 국가가 집단적으로 방지 또는 진압하는 것.[5] 대표적인 탈원전파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있는 만큼 일본에서 탈원전은 좌파나 진보의 전유물은 아니란 점은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