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쉬
덤프버전 :
다리우스 (아파다나) 궁전과 성채
대표 유물인 옛 궁전 기둥의 머리 장식 (머리 둘 달린 소)[1]
현대 슈쉬 시가지와 다니엘 영묘
다리우스 궁전의 벽돌 장식
엘람어: 𒈹𒂞𒆠, 𒀸𒋗𒊺𒂗[6] , 𒋢𒋢𒌦[7]
고대 페르시아어: 𐏂𐎢𐏁𐎠
페르시아어: شوش
그리스어: Σοῦσα
히브리어: שׁוּשָׁן (Shushán)[8]
시리아어: ܫܘܫ
영어: Susa
1. 개요[편집]
이란의 고대 도시.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Çūšā (수샤)라고 하며, 영어로 수사와 그 주변 지역을 수시아나(Susiana)라고도 한다. 이란 서남부에 위치한 도시로서 고대 엘람 왕국의 수도로 시작하여 오랜 세월 번영을 누렸다. 다만 중세를 거치며 쇠퇴하여 현재는 인구 8만의 소도시에 불과하며, 대신하여 일대의 주요 도시로 성장한 동북쪽의 데즈풀과는 데즈 강을 사이에 두고 약 20km 떨어져 있다.
2. 역사[편집]
고대 엘람 왕국의 수도로 본격적인 역사를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 국가들과 경쟁하며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하였는데 가끔은 엘람이 우위를 점하여 바빌로니아를 일시적으로 통치하는 등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9]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엘람이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에 비해 열세인 경우가 많은 편이었고 기원전 7세기 바빌론의 반란에 도움을 준 이유로 신아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이 침략하여 주민들이 대규모로 학살되고 크게 파괴당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가 재건되었고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에 의해 정복되어 엑바타나, 페르세폴리스, 바빌론과 함께 제국의 4대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다.
파르티아 시대에도 번영을 이어가서 겨울철 수도가 되었다. 이후 사산 왕조 시대까지 번영하였으나 이슬람 세력이 흥기하여 사산 왕조를 정복할 때 또다시 파괴되었다. 곧 재건되어 고만고만한 지방 도시로 명맥을 유지했으나 몽골 제국의 침공 때 철저히 파괴당해 완전히 깡촌이 되고 말았다. 이곳의 주민들은 지금 이란의 중소도시이자 수사의 근처에 위치한 데즈풀(Dezful)로 이주해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누가 이란 아니랄까봐 데즈풀도 역사가 2천년이 넘고 데즈 강의 다리(기원후 300년에 지워진 다리로 현존한다)를 보호하기 위한 요새가 기원인데, 수사가 바로 데즈 강 위에 세워진 도시이고, 엘람 시대 수사의 수도권(아완)은 현대의 데즈풀에 위치해 있었다. 즉 수사의 명맥 자체는 이어지는 셈이다.
엘람 ~ 사산 제국기 유적 외에도 시내에는 구약의 인물인 다니엘의 영묘가 있다. 무덤의 존재는 이슬람 정복 직후 아부 무사 알 아슈아리 때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1160년경 유대인 여행가 투델라의 벤자민이 방문했을 때에 이미 성지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카자르 왕조 시대에 후제스탄의 쉬아 성직자 셰이크 자파르 슈슈타리가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한편 유적지 남쪽의 슈쉬 성채는 페르시아 유적은 아니고, 1890년 수사를 발굴하던 프랑스 고고학자가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다만 이 역시 130여년이 흐르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사의 유구한 역사가 느껴지는 부분. 당시 발굴한 유물의 대부분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와 최근 발굴한 유물들은 현지 슈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현대 이란에서는 1980년 가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군이 슈쉬의 서쪽에 흐르는 카크헤 강까지 진격하여 한때 전장이 되었으나 1982년 봄 이란군이 반격에 성공하여 최전선에서 후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 갤러리[편집]
1870년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된 다니엘 영묘
팔레비 왕조 시절 궁전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4 13:43:35에 나무위키 슈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페르시아 뿐만 아니라 서아시아권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확인되는 유물로, 이 도시의 원래 주인이던 엘람과 아시리아 등에서도 머리 둘 달린 소를 만들어 세웠다.[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6] 중기 엘람어[7] 중기 말~신 엘람어[8] שׁ(š, sh)[ʃ\]를 'ㅅ'으로 표기하는 개역판 성경에서는 '수산'으로 표기된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느헤미야 1:1),
"당시에 아하수에로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에스더 1:2)[9] 이때 바빌론에서 함무라비 법전 석비를 약탈해 와서 함무라비 법전 유물은 수사에서 발굴되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느헤미야 1:1),
"당시에 아하수에로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에스더 1:2)[9] 이때 바빌론에서 함무라비 법전 석비를 약탈해 와서 함무라비 법전 유물은 수사에서 발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