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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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그리스도교에서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이 모여 교리, 의식, 규범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교회 회의. 불교에서는 결집이 공의회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2. 사도회의[편집]
사도행전 15장에서 공의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안티오키아 지방에서 일어난 할례, 율법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성 바르나바와 성 바오로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자신들이 하던 일에 대해 보고하고 할례와 율법 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여기서 베드로와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주장으로 인해 할례를 하지 않고 다만 우상과 피를 멀리하자고 결의한다.
다만 이 사도회의는 엄밀한 의미의 보편공의회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현대의 보편공의회 넘버링에서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1대로 헤아리며, (사도행전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사도조차 아닌[1] )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등 후대의 보편공의회와는 이질적이다.
아돌프 폰 하르낙, 베르너 큄멜, 레온하르트 고펠트, 귄터 보른캄, 한스 콘첼만, 위르겐 롤로프, 라이너 리스너는 사도회의가 기원후 48년에 일어났다고 보았다 (Harnack, Die Mission und Ausbreitung des Christentums in den ersten drei Jahrhunderten 2; Kümmel, 신약정경개론; Goppelt, Die Apostolische Und Nachapostolische Zeit; Bornkamm, 바울; Conzelmann, 초대기독교역사; Roloff, Neues Testament). 반면에 페르디난트 한, 알프레드 줄, 필리프 필하우어, 빌리 마르크센, 빌헬름 슈네멜허는 사도회의가 기원후 43-44년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Hahn, Das Verständnis der Mission im Neuen Testament; Suhl, Paulus und seine Briefe; Vielhauer, Geschichte der urchristlichen Literatur; Marxen,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Schneemelcher, Das Urchristentum). 43-44년 지지자들의 근거로는 마르코 10:38-39과 행전 12:2가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예, 할 수 있읍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가 마실 잔을 마시고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기는 할 것이다.
마르코 10:38-39 (공동번역)
마르코 10:38-39는 대 야고보와 사도 요한의 죽음을 암시하며, 행전 12:2는 야고보의 처형만을 밝힌다. 따라서 행전 12:2 전통이 야고보와 동시에 거행된 요한의 처형을 몰랐다는 근거로 "요한의 형"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음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야고보와 요한을 죽인 헤로데 아그립바는 44년에 사망했다. 사도회의와 바울로의 여행 시작 간의 기간이 4년 이상일 수는 없으므로, 이 경우에 사도회의는 기원후 43-44년에 일어났다. 그러나 48년 지지자들의 근거로는 행전 12:2와 갈라디아 2:9가 존재한다:우선 요한의 형 야고보를 잘라 죽였다.
행전 12:2 (공동번역)
행전 12:2와 갈라디아 2:9의 사도회의 장면은 사도 요한이 죽지 않았음을 부각한다. 다만 갈라디아 2:9에서 언급된 요한의 경우, 편지 전체에서 사실상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요한 학파의 영향에 따른 후대의 삽입으로 볼 여지가 있다.그뿐만 아니라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던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은총을 인정하고,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친교의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은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갈라디아 2:9 (공동번역 개정)
3. 지역 공의회[편집]
4. 보편 공의회[편집]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다음의 조건을 만족하는 한 그리스도에 대해 잘못된 가르침이 있을 수 없다.[2] 이를 무류성(無謬性)이라 한다.
각각의 주교들이 무류성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상호간에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의 유대를 보전하면서 신앙과 도덕의 사항들을 유권적으로 가르치는 주교들이 하나의 의견을 확정적으로 고수하여야 할 것으로 합의하는 때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류 없이 선포하는 것이다.[40]
그것은 이제 주교들이 세계 공의회에 모여서 보편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도덕의 스승들이 되고 재판관들이 될 때에는 더욱 명백해지므로, 그들의 결정에 신앙의 순종으로 따라야 한다.[4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25항 참조.
다만 교회법에서는 무류성을 넘겨짚는 것도 경계하고 있으므로 주의.
③ 어떤 교리도 무류적으로 확정된 것임이 명백히 확증되지 아니하는 한 그러한 것으로 이해되지 아니한다.
교회법 제749조 3항.
또한 초대 교황인 베드로의 후계자, 즉 베드로의 뒤를 이은 교황이 보편 공의회로 확인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보편 공의회는 결코 인정되지 않는다고 가톨릭에서는 해석한다.
주교단과 그 단장
22. 주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거룩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의 사도단을 이루듯이, 비슷한 이치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 전 세계에 세워진 주교들이 일치와 사랑과 평화의 유대로 서로 교류하고 교황과 친교를 이루던 매우 오랜 옛 규율과[23]
공의회 모임 자체가[24] 주교단의 단체적 본질과 특성을 드러내 준다. 공의회를 통하여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든 공동으로 결정하고[25] 많은 이의 의견을 숙고하여 판단한다.[26] 여러 세기의 흐름 속에서 개최된 세계 공의회들이 그 단체성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 뽑힌 이를 대사제 직무로 올리는 데에 참여하도록 여러 주교들을 초대하는 오랜 권고와 관습 자체가 이미 그 단체성을 가리키고 있다. 주교는 누구나 성사적 축성의 힘으로 또 주교단의 단장과 그 단원들과 이루는 교계적 친교로 주교단의 구성원이 된다.그러나 주교들의 단체인 주교단은 동시에 그 단장으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더불어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목자들이든 신자들이든 모든 이에 대한 교황의 수위권은 온전히 유지된다. 교황은 자기 임무의 힘으로 곧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온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완전한 최고의 보편 권력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 주교단은 교도권과 사목 통치에서 사도단을 계승할 뿐 아니라 그 안에 사도단이 계속하여 존속하며, 그 단장인 교황과 더불어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의 주체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단장 없이는 결코 그러하지 아니하며,[27]
또한 그 권력은 오로지 교황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행사될 수 있다. 주님께서 한 사람 시몬을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열쇠를 맡기셨으며(마태 16,18-19 참조), 그를 당신의 온 양 떼의 목자로 세우셨다(요한 21,15 이하 참조). 그러나 베드로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저 임무는(마태 16,19 참조) 그 단장과 결합되어 있는 사도단에게도 부여되었음이 분명하다(마태 18,18; 28,16-20 참조).[28] 이 사도단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드러내며, 또한 한 단장 아래 모여 있으므로 그리스도 양 떼의 단일성을 드러낸다. 주교단 안에서 주교들은 그 단장의 수위권과 최고 권위를 충실히 존중하면서, 교회의 유기적 조직과 화합을 끊임없이 북돋아 주시는 성령에 따라, 자기 신자들은 물론 온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고유한 권력을 행사한다. 이 주교단이 지닌, 보편 교회에 대한 최고 권력은 세계 공의회에서 장엄한 양식으로 행사된다. 그러나 베드로의 후계자가 세계 공의회로 확인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계 공의회는 결코 인정되지 아니한다.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재하며 확인하는 것은 교황의 특권이다.[29]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주교들은 교황과 함께 그 동일한 합의체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나, 그것이 진정한 합의체적 행동이 되려면, 주교단의 단장이 주교들에게 합의체적 행동을 요청하거나 적어도 흩어져 있는 주교들의 일치된 행동을 승인하거나 자유로이 수락하여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22항.
4.1. 첫 일곱 보편 공의회[편집]
가톨릭과 정교회가 모두 인정하는 7차례의 보편 공의회. 콘스탄티누스 1세가 처음 보편 공의회를 소집한 이후로,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소집하였다.
7개 공의회는 그리스도교의 교파나 그리스도교 계열의 종교마다 인정 여부가 각기 다르다.
- 아시리아 동방교회: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인정한다.
- 오리엔트 정교회: 에페소 공의회까지를 인정한다.
- 루터교회, 감리회, 성공회: 대체적으로 7개의 공의회를 모두 인정하나, 엄밀히 말하면 그 공의회에서 채택된 교리들을 인정한다.
- 기타 개신교 계열: 대개 칼케돈 공의회까지를 인정한다.
-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유니테리언 등의 비삼위일체파: 인정하지 않는다. 몰몬교에서는 공의회의 교리가 신약의 교리와 크게 차이가 나며, 그리스 철학에 물든 신학이라고 단죄한다.
4.2.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보편 공의회[편집]
동서 대분열 이전에 최후로 개최된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제외하면 모두 가톨릭 세계에 국한된 공의회들이며 교황이 소집하였다.
5. 정교회의 주요 공의회[편집]
정교회에서는 동서 대분열 이전 일곱 차례의 공의회만을 '세계' 공의회로서 인정한다. 이는 가톨릭 세계에서 개최된 공의회들뿐 아니라 동방 정교회 세계에서 개최된 공의회들 역시 동일하며, 한국정교회대교구의 설명에 따르면[3] 정교회는 각 교파 간의 화합과 통합을 강조하는 에큐메니컬적인 존중의 차원에서 동방 정교회 세계에 국한된 아래 공의회들을 '보편 공의회'로 부르지 않는다. 또한 이들 공의회에서 채택된 문서들은 정교회의 교리가 맞지만, 보편 공의회의 권위에 종속된다고 설명한다.
6. 창작물[편집]
-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인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에도 공의회가 언급된다. 이단심문관 코레도 아브레아가 필을 찾아온 이유가 공의회 참석을 위해서라고 짤막하게 언급.
『예전의 그 사기꾼 말이다. 도시에서 열리는 교회의 공회의 참석차 온 김에 들린 거 같았는데, 무슨 낯짝으로 찾아온 것인지! 글을 읽을 줄 똑똑한 아이를 보내면 교황청에서 키워준다는 헛소리를 믿으시고, 교황청과 관계를 만들고 싶어서 널 보낸 대(大) 지델님도 문제였지만!』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 1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