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마르겔로프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소련의 군인.
2. 생애[편집]
예카테리노슬라프으로 이민 온 벨라루스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목재 가공소, 가죽 공방에서 일하다 집배원으로 근무했다. 1928년 노농적군에 징집돼 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연합사관학교에서 저격수 양성과정에 투입됐다. 1931년 4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모길료프의 제33벨로루시소총사단 제99보병연대 사관학교 직할 기관총소대장을 역임했다. 1938년부터 민스크의 제8소총사단 제23소총연대 제2대대장으로 임명돼 1939년 소련-폴란드 전역에서 정찰부대를 지휘했다.
2.1. 제2차 세계 대전[편집]
2.1.1. 겨울전쟁[편집]
제122소총사단 제596보병연대 독립스키정찰대대장을 역임하며 스웨덴 왕국 육군 참모장을 생포했다. 전후 제596보병연대 부연대장을 역임하다 레닌그라드 전선 제3보병연대장으로 임명됐다.
2.1.2. 독소전쟁[편집]
1942년 7월부터 제3근위소총사단 부사단장을 역임하다 칸테미르 찰리코프 사단장의 부상 때문에 마르겔로프가 지휘권을 가지게 됐다. 마르겔로프의 명령 하에 제3근위소총사단은 독일 육군의 방어선 2개를 돌파한 뒤 반격을 개시했다. 1944년부터 제3우크라이나전선군 제28군 제49근위소총사단장으로서 드네프르 강을 건너 헤르손을 탈환해 1944년 3월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법령에 따라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다. 전투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 최고사령관의 공로감사문에서 마르겔로프의 이름은 10번 언급됐다.
2.2. 소련 공수군 복무 당시 사건[편집]
1948년 보로실로프 고등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제76근위체르니고프적기공수사단장으로 임명됐다. 1959년 3월 총사령관 재직 당시, 제76공수사단 포병연대에서 초병들이 동기들을 향해 총기난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일로 마르겔로프는 제1부사령관으로 강등된 뒤, 다시 총사령관으로 복직했다.
2.3. 프라하의 봄[편집]
다뉴브 작전 당시 공수군을 지휘했다.
2.4. 말년[편집]
1979년 1월부터 소련 국방부 감찰단에서 복무했다. 마르겔로프는 60회 이상 낙하산 강하를 실시했으며, 최후의 강하는 65세 때였다. 1990년 3월 4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한 뒤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됐다.
3. 기타[편집]
마르겔로프의 지휘에 따라 소련 공수군은 확실히 향상된 기동력을 보유하게 됐다. 총사령관 시절에도 꾸준히 선제 핵무기 공격을 위해선 공수군의 역할이 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보다 가볍고 효율적인 공수 장비 생산을 지시하며 병사들의 컨디션에도 신경을 썼다. 이에 따라 러시아 지휘참모대학교에선 매년 정기적으로 공수부대 훈련과 신규 전술 개발 회의가 열린다. ASU-57, 2S9 노나-S 같은 공수자주포도 마르겔로프에 의해 개발됐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4-05 19:05:23에 나무위키 바실리 마르겔로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