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치즈키 토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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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모치즈키토모미.png

1. 개요
2. 경력
3. 특징
4. 작품
4.1. 감독
4.2. 참여작
5. 연출 샘플


1. 개요[편집]


望月智充[1]
일본의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각본가. 1958년 12월 31일 생. (65세) 홋카이도 출신. [2] 와세다대학 중퇴.
트위터, 블로그


2. 경력[편집]


와세다 대학 애니메이션 동아리에서 자주제작 애니메이션이나 애니메이션 분석 동인지를 제작하는 것으로 업계 활동을 시작했다. [3] 그때 마침 기동전사 건담의 인기가 높았을 때였고 애니메이션이 재밌어서 동아리 활동에 몰두 하다가 유급하게 되었다. 취업할 수 있는 곳이 줄어들자 대학을 그만두고 애니메이션이나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4] #

그리고 아세아당에 입사해 동화로 데뷔. 시바야마 츠토무에게 "원화말고 연출을 해라." 라는 제의를 받고 [5] 1982년에 두근두근 투나잇에서부터 연출 쪽으로 전환해 주로 아세아당에서 연출가로 활동했다. 마법의 천사 크리미마미에서 연출로 참여한 에피소드마다 독특한 매력을 선보여 업계 내에서 이름을 알렸다. 평론가 오구로 유이치로는 모치즈키 토모미의 크리미 마미 담당 에피소드는 모두 명작이라고 평했다. # 모치즈키 토모미 연출에 고토 마사코 작화의 46화가 특히 유명.

그 후로 수많은 작품을 감독하고 연출하여 명성을 얻고 활발히 활동하다가 2000년대에는 잠시 감독보다는 각본가 활동에 전념했다. 특히 야마구치 유지와 호흡을 맞춰 다양한 시도들을 했는데, 대표적으로 도화월탄의 2쿨 역순 구성과 성우들에게 각본을 맡기는 등이 있다. 2016년 감독작 배터리가 실패한 뒤 3년 동안 일을 쉬었고 2019년부터 콘티 연출가로 복귀해서 활동한다. 2022년 밝히기를 암에 걸려서 쉰 것이었다고 한다. 식도암, 식이지장암이 있으며 5년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여러 번 재발했는데 일단 5년 넘게 살아있다고 한다. 암에 걸렸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고 평소처럼 살고 있다고 한다. 2023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콘티는 죽기 전까지 하겠다고 하는데 살 날이 얼마 남진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일단 요양하면서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었는지 2024년 괴이와 소녀와 행방불명으로 감독 활동도 복귀했다.

기혼자이며 아내는 작화감독 전문 애니메이터 고토 마사코. 아내에게 청혼할 때 한 말은 "내가 연출하는 인생에 작화감독을 해주세요." 였다고 한다. # 야마모토 유스케(山本裕介)는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런 오그라지는 청혼을 했냐며 모치즈키를 놀린다고 한다.


3. 특징[편집]


캐릭터의 연기력에 중심을 두는 미소녀, 미소년 전문 연출가로 표정과 행동 묘사가 풍부하고 리얼하다. 모치즈키가 연출로 참여하면 캐릭터가 귀엽고 예쁘거나, 잘생겨 보이는 효과가 있다. [6] 기본적으로 청춘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고 섬세한 감성을 표현해 내는 연출력과 카메라로 찍은 실사 영화를 연상케 하는 화면 구도가 특징. 특히 감독으로 참여한 작품들에서 이런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오렌지 로드 극장판, 바다가 들린다, 카페 알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실사 영화식 연출은 코바야시 오사무(1945)의 영향이 크다. 액션도 못 하는 건 아니고 매우 잘 하는데 액션보다는 감정 묘사와 드라마에 강점을 보이고 본인도 그쪽으로 작품 활동을 하려고 하는 연출가이다.

자기색이 꽤나 확고해서 여러 차질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렌지 로드 극장판은 완성도는 높아 평은 좋았으나 원작자 마츠모토 이즈미가 보고 분노해서 흑역사가 되었다가 작가가 죽고 나서야 봉인이 풀렸다. '바다가 들린다'를 감독했을 때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생각하는 청춘 연애물과 '바다가 들린다'가 꽤 달라서 시사회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상영 내내 까인 적도 있다. 다만 이건 미야자키 취향과 달라서 그런 것이지 작품에는 문제가 없다. 지브리의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는 모치즈키가 소녀, 소년 묘사를 리얼하게 해서 미야자키가 질투심을 느낀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선라이즈 쪽에서 감독한 작품은 모치즈키 토모미의 특징과는 좀 다른 묘한 성향을 보인다. 용자지령 다그온. 더티페어 FLASH, 세라핌 콜등이 그런 예. 오락성이 강하고 장난기가 많은 작품들이다. 선라이즈에서 제작한 작품은 아니지만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도 작품 성향이 묘한 편. 여러 실험적인 연출을 많이 해서 청춘을 다룬다는 것 외에는 딱히 작품에 공통점이 없는 감독이다.

오렌지 로드 극장판 때문인지 오렌지 로드 TV판도 모치즈키 토모미가 감독한 걸로 오해하는 예가 자주 보이기도 한다. TV판 감독은 코바야시 오사무(1945)이다. 오렌지 로드 TV판은 모치즈키 토모미가 연출한 에피소드가 단 1개 밖에 없다. 주로 오프닝과 엔딩을 연출했다. 하지만 TV판 이전에 나온 파일럿 OVA와 애니판의 결말을 낸 극장판은 모지츠키 토모미가 냈기 때문에 평론가 오구로 유이치로는 모치즈키 토모미는 오렌지 로드를 시작하고 끝낸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특히 1쿨 분량은 모치즈키 토모미가 만든 1기 오프닝 영상을 재활용하면서 이어나가는 작법이었으므로 모치즈키가 연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Orbit에로게 애니화 작품에서는 시리즈 구성으로 참여했는데, 이 때 야마구치 유지 감독과 함께 독특한 시도를 많이 했다.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는 원작 에로게의 설정을 상당수 바꾸고 오리지널 내용을 많이 추가했으며, 도화월탄은 아예 26화 역순 구성이라는 파격적인 전개를 택했다.

한때 같이 작업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으로는 야마모토 유스케(山本裕介), 야마구치 유지가 있으며,[7] 배경을 코바야시 시치로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야마모토 유스케하곤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로 모치즈키는 "내가 야마모토 유스케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야마모토는 "나는 토미노 요시유키의 제자지 님의 제자가 아닌데요?" 라고 한다.

미즈시마 츠토무가 우익 스태프와 키배를 벌여 우익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공격을 받고 걸즈 앤 판처가 반일 좌익 애니라고 까이자 나도 좌익이니 내 작품도 까달라고 하기도 했다. #

신카이 마코토, 쿠로야나기 토시마사가 모치즈키를 존경한다고 한다.

4. 작품[편집]



4.1. 감독[편집]




4.2. 참여작[편집]




5. 연출 샘플[편집]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OP1 (0:00 ~ 1:40)
연출 모치즈키 토모미[9] / 작화 히라노 토시키, 카키노우치 나루미 부부
미술 감독 코바야시 시치로
245 컷 사용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OP3 (3:18 ~ 5:06)
연출 모치즈키 토모미 / 작화감독 고토 마사코, 고토 타카유키
단 1컷[10]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극장판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
감독, 콘티 모치즈키 토모미 / 작화감독 고토 마사코


불타라! 오라버니 OP / 연출 모치즈키 토모미 / 작화감독 마사유키

#링크
란마 1/2 1화 中
콘티, 연출 모치즈키 토모미 / 작화감독 나카지마 아츠코


바다가 들린다
감독, 콘티, 연출 모치즈키 토모미 / 작화감독 콘도 카츠야


더티페어 FLASH 2 OP / 연출 모치즈키 토모미 / 작화 그룹 젠 (애니 제작사)

더티페어 FLASH 3 OP / 연출 모치즈키 토모미 / 작화 아오시마 카츠미


신만이 아는 세계 1 ED
연출 타카야나기 시게히토 / 콘티 모치즈키 토모미 / 총작화감독 와타나베 아키오 / 이펙트 아비코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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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때로 사카모토 고(坂本 郷)라는 필명도 사용한다.[2] 트위터 바이오에 따르면 2020년 시점에서는 사이타마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 와세다 대학 애니메이션 동아리는 역사가 깊어서 와세다 대학 출신 애니메이션 업계인이 꽤 있다.[4] 일본은 아무리 명문대 출신이라도 유급하면 취업이 제한된다. 하물며 모치즈키가 갓 취업전선에 나선 1980년대 당시 일본은 경제에 거품이 상당히 끼어있는 상황이라 풍토가 더했다.[5] 자신의 생각으론 그림을 못 그려서 그랬던 것 같다고 한다.[6] 캐릭터가 예쁘거나 잘생기게 보이는 건 작화도 중요하지만 연출도 꽤 중요하다. 현실에서 무뚝뚝한 사람이나 표정 연기를 잘 못 하는 배우에게 매력이 잘 안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유.[7] 그의 부고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사람이다.[8] 하토코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유명한 국면을 연출했다.[9] # [10] 롱테이크로 장면이 중간에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아 1컷이다. 또한 고난이도의 회전 작화가 많아 당시 애니메이션 팬에게 인기를 끌었다. 저걸 3D도 아니고 2D 손작화로 하려면 굉장히 그리기 어렵다. 모치즈키 토모미와 애니메이터 고토 타카유키의 실력을 볼 수 있는 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