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우루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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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우루스 전투
Battle of the Metaurus
시기
기원전 207년 6월 22일
장소
이탈리아 메타우루스 강[1]
교전국
파일:attachment/mon_256_1.png 카르타고
파일:attachment/mon_256.png 로마 공화정
지휘관
파일:attachment/mon_256_1.png 하스드루발 바르카
파일:attachment/mon_256.png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파일:attachment/mon_256.png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병력
55,000명
코끼리 10마리
40,000명
피해
사망: 30,000명
포로: 5,400명
사망: 8,000명
결과
카르타고군의 전멸과 로마의 대승

1. 개요
2. 배경
3. 전투
4. 결과
5. 평가



1. 개요[편집]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벌어진 로마카르타고의 전투로 한니발 바르카에게 있었던 사실상 마지막 지원을 끝장낸 전투이자,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떠나게 만든 결정적인 전투이다.

2. 배경[편집]


한니발 바르카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충공깽에 빠졌던 로마 공화국은 파비우스전략을 따라 한니발을 고립시키면서 다시 전황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반격으로 한니발의 본거지인 이베리아 식민지가 탈탈 털리면서 전황은 점점 더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한니발에게는 매우 기쁜 소식이, 로마에는 매우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한니발의 동생인 하스드루발 바르카가 이베리아에서 남은 병력을 최대한 모아서 이들을 이끌고 북이탈리아로 넘어온 것이다. 하스드루발이 이끄는 병력은 3만이었으나 중간에 갈리아인을 용병으로 고용하면서 북이탈리아로 넘어올 때는 숫자가 약 5만까지 불어났다.

당시 로마는 큰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도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전략적인 면에서 한니발을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전술적으로는 여전히 한니발을 상태로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승리를 거두지 못 하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가 동원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도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2] 로마군과의 소모전으로 지쳐가는 한니발에게는 다시금 로마를 최대한 괴롭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반면 로마로써는 하스드루발과 한니발이 합류해 한니발이 다시 초기의 전력을 회복한다는 시나리오는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과도 다름없었다.[3] 일설에는 하스드루발이 공성장비를 가지고 갔다는 미확인 정보도 있다.[4] 로마 원로원은 하스드루발과 한니발의 합류를 막기 위해 집정관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에게는 하스드루발의 추격을, 집정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에게는 한니발의 견제를 맡겼다.

여기에서 한니발은 그의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하게 되는데 과거 자신이 알프스 산맥을 넘었던 경험을 토대로 하스드루발의 속도를 계산하는 바람에 하스드루발의 진군속도를 너무 늦게 계산한 것이다. 한니발이 넘어오던 시기에는 갈리아 족이 아직 한니발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카르타고군은 외지인들이었기에 저항이 심했지만 하스드루발이 넘어오던 때에는 갈리아 부족들이 로마에게 시달렸던 것을 복수하기 위해 하스드루발에게 용병으로 합류하고 지름길도 제대로 알려주면서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게다가 한니발은 당시 이탈리아반도의 장화 끝부리에 몰려있는 상태였다. 자신 외에 군대를 맡길만한 장수도 없는 마당에 함부로 군대를 이끌고 동생과 합류하려 나갔다가 점령지가 빈집털이를 당하게 된다면 설령 동생과 합류를 한다고 해도 돌아올 곳이 사라지는 꼴이었다. 실제로 한니발과 대치중이던 로마군은 이를 노리며 한니발을 견제하였고 이에 한니발은 동생과의 합류 시점을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늦춰 잡아 출병 시기를 가늠했다.

어쨌든 하스드루발은 형보다 고생을 덜 하고 기대 이상의 병력증강까지 하면서 더 빠른 속도로 알프스를 넘을 수 있었다. 헌데 하스드루발이 한니발에게 보낸 전령들은 카르타고 입장에서는 재수 없게도 전부 다 집정관 네로에게 붙잡혔다. 페니키아어로 된 서신을 해독하여 읽은 네로는 하스드루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게다가 하스드루발의 병력은 5만인데 리비우스의 로마군은 3만에 기병 전력에서도 열세였다. 이에 네로는 긴급상황이라서 원로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일단 그가 데리고 있는 병력들 중 모두 젊고 건장한 체격의 병사들만 선발하여 가장 정예인 병력 보병 6천과 기병 1천기로 구성된 7천명을 이끌고 한니발이 눈치채지 못하게 빠르게 북상했고 재빨리 리비우스와 합류하였다. 네로는 출전 전에 부관에게 자신이 지원군을 이끌고 가는것을 다른 병사들과 적장 한니발이 절대 알아채지 못하게 하라고 강력히 주의를 주고 한니발과의 전면전을 무조건 피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양군은 메타우루스 강에서 마주쳤다. 하스드루발은 밤사이에 로마군이 늘어난 것을 보고 약간 놀랐으나 여전히 자신의 전력이 5만명으로 앞서는 것을 알고 전투에 들어갔다.

3. 전투[편집]


로마군의 좌측에는 메타우루스 강이, 로마군의 우측에는 험한 언덕이 위치해 있었다. 이 때문에 양군의 대결은 로마군의 좌익과 중앙에 집중되었고 로마군의 우익은 지형에 가로막혀 카르타고군을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우익에 있던 네로는 기지를 발휘해 카르타고군이 전투에 신경쓰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 우익의 병력 일부를 로마군 후방을 통해 이동하여 로마군의 좌익으로 이동시켰다. 로마군의 좌익과 치열하게 전투중이던 카르타고 우익과 중앙은 느닷없는 네로의 병력에게 측면을 기습당해 큰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네로가 기병 1천을 합류시키면서 강화된 로마 기병은 카르타고 기병대를 물리치고 바로 카르타고 보병대를 공격했다. 전투는 사실상 여기에서 결판이 났는데 카르타고군의 좌익은 언덕에 가로막혀서 제대로 반격하거나 후퇴도 못했고 후방도 상당한 험지라 퇴각하기 어려운 지형[5]이었기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전사했다. 하스드루발은 패배를 직감하고는 말을 탄 채로 로마군 군단에 돌격하여 그대로 전사하였다. 로마군은 하스드루발의 목을 베어다가 한니발 진영에 내던졌다.

4. 결과[편집]


네로는 전투가 끝난후 다시 자기 부임지로 신속하게 복귀했는데 리비우스를 지원하기 위해 출발하고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주였을 정도로 엄청난 기동전을 벌였다. 고대판 전격전이었던 셈이다. 네로는 전사한 하스드루발의 목을 한니발의 진영에 던졌다. 이때까지 한니발은 네로의 움직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자신의 경험으로 이제서야 하스드루발이 알프스에서 내려오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동생의 수급을 확인한 한니발의 공식적인 반응은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그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동생이 전사했고 전쟁을 계속할 마지막 희망도 사라졌으니 크게 절망했을 것이라는 건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그 해에 한니발은 군대를 물리고 점령지 안에 틀어박혔다.

전투 후에 네로는 무단으로 군을 이끌고 자기 작전구역을 이탈한 것에 대해 질책당하지는 않았으나 대신 승전의 공로는 해당 작전구역 담당자인 리비우스에게 모두 넘겨야했다. 워낙 긴급상황인 것을 원로원에서도 인정하여 네로를 문책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근무지 이탈을 문제삼는 것은 로마의 최대 적인 한니발을 도와주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로마 시민들이 메타우루스 전투에서 네로의 활약을 전해듣고 개선식 때 네로에게 리비우스보다도 더 많이 환호했다는 말도 있다.

5. 평가[편집]


많은 역사가들은 사실상 메타우루스 전투를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적 전투로 꼽는다.[6] 하스드루발의 병력은 카르타고의 삽질로[7] 보급을 거의 받지 못하던 한니발이 병력과 물자를 충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한니발에 이어 그 다음으로 유능했던 하스드루발이 한니발이 거느린 만큼의 군세를 끌고 내려와 한니발의 군대랑 합세했다면 한니발은 더욱 오랫동안 활약하면서 이탈리아를 초토화시켜 더 많은 '로마 연합' 가맹 도시들을 로마에게서 이탈시켰을 것이고 심지어 로마시가 직접적으로 공격받았을수도 있었을 것이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전개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최소 한니발의 이탈리아에서의 축출은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의 병력이 소멸하면서 한니발은 더 이상 이탈리아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었다.[8] 결국 이러한 이탈리아 원정의 실패에다가 스키피오의 카르타고 본토 공격으로 한니발은 이탈리아에서 철수하여 아프리카로 돌아와 자마 전투를 치르게 되어 패배하고 2차 포에니 전쟁 역시 로마의 승리로 결판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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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이탈리아 마르케주 메타우로 강.[2] 실제로 로마는 징집할 시민이 부족해서 노예와 범죄자까지 군단병으로 징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지원을 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부하는 동맹시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3] 로마사 연구의 대가 프란츠 하이켈하임은 "하스드루발의 원군이 한니발과 합류했다면, 로마는 전쟁에서 졌다."라고 단정적으로 서술하기도 했다.[4] 이는 한니발이 병력 부족과 공성장비의 부재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로마 공성을 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5] 로마가 깔아놓은 가도가 존재해서 진격은 쉬웠으나 이탈리아 지형상 상당한 급경사였고 카르타고군의 진격 방향이 아래로 내려가는 방향이었기에 퇴각할때는 그 경사진 언덕을 다시 올라가야 했다.[6] 그 다음으로는 보통 한니발과 카르타고의 전쟁 수행의지를 꺾은 자마 전투나 히스파니아에서 카르타고 세력을 일망타진한 일리파 전투등이 꼽힌다.[7] 자칫하면 카르타고가 한니발의 전쟁 수행에 훼방만 놓고 방치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실제로 카르타고 본국은 어쨌든 이왕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거 최대한 한니발을 도와 로마를 두들겨 패자는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최대한 보급을 도와주려고 했다. 다만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지중해 서부가 사실상 완전히 로마의 영해가 되어버려 카르타고의 보급은 큰재미를 못보았다.(통념과 다르게 제1차 포에니 전쟁 이래로 해군력은 로마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카르타고에 비해 우세했다)[8] 나중에 마고가 한니발과의 합류를 시도하지만 하스드루발의 병력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나마도 로마군에게 발목이 잡히게 되어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