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타렌툼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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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전투 경과




1. 개요[편집]


기원전 209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로마군이 한니발 바르카에게 가담한 타렌툼을 공략한 전투.


2. 배경[편집]


기원전 212년, 한니발 바르카는 로마로부터 이탈할 조짐을 보이던 타렌툼을 기습 공략하고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1차 타렌툼 공방전) 타렌툼에 주둔했던 로마 수비대가 타렌툼 인근의 해안 요새로 피신하자, 한니발은 시민들에게 요새를 봉쇄하여 적을 굶겨죽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가 로마군이 카푸아를 포위 공격하는 걸(카푸아 공방전) 격퇴하러 간 동안 타렌툼 시민들이 봉쇄를 게을리 하는 바람에 요새에 갇힌 로마 수비대가 식량을 계속 보급받을 수 있었다.

기원전 209년, 현 집정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는 전직 집정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와 함께 한니발을 봉쇄하고 그에게 가담한 타렌툼을 정벌하기 위한 일련의 공세를 개시했다. 파비우스는 타렌툼으로 진격했고, 플라쿠스는 루카니아로 진군했으며, 마르켈루스는 한니발이 타렌툼을 구원하지 못하도록 붙잡는 임무를 맡았다. 한편, 파비우스는 8,000 명 가량의 분견대를 한니발의 근거지인 브루티움으로 보내 그 일대를 약탈하게 했으며, 본인이 직접 만두리아 시를 공략하여 타렌툼과 브루티움 사이의 연락로를 개설했다.


3. 전투 경과[편집]


파비우스가 이끄는 로마군 2개 군단이 타렌툼을 포위하자, 카르타고의 해군 제독 보밀카르는 시민들을 돕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군에게 완전 포위된 도시를 구할 방도를 찾지 못하다가, 로마 함대가 접근해오자 싸우지도 않고 도주했다. 포위가 개시된 지 6일 후, 로마군은 총공격을 가했다. 도시 북서부 지역에 2차례의 간혈적인 공격이 벌어졌지만, 대부분의 로마군은 성벽의 동쪽 구역에 집중되었다.

당시 타렌툼 성벽 동쪽 구역 수비대장을 맡았던 브루트족 출신 카르탈로의 여동생은 파비우스의 군대에 종사하던 군인과 애인 관계였다. 파비우스는 이 점을 활용해 카르탈로를 포섭했고, 그는 기회를 틈타 성문을 열기로 했다. 다들 로마군의 공세를 막느라 정신없는 사이, 그는 성문을 열어서 로마군이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곧바로 성안으로 진입하여 수비대와 시민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사흘간 약탈을 자행했다.

한편, 한니발은 카누시움 전투에서 마르켈루스에게 큰 타격을 입혀서 자신을 쫓지 못하게 한 뒤, 이탈리아 남부를 횡단하여 브루티움을 약탈하던 8,000명의 로마군 분견대를 카울로니아 인근에서 섬멸하여 레기움 일대를 장악했다. 그러나 타렌툼에서 5마일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타렌툼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쩔 수 없이 메타폰툼으로 철수했다.

로마는 대부분의 타란토 시민들을 노예로 팔았고, 수많은 전리품을 몰수했다. 시라쿠사, 카푸아에 이어 타렌툼 마저 로마에게 귀속되자,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이제 대세는 로마에게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고,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 끝자락인 브루티움으로 점차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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