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선수 경력/프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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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SK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
2.1. 포수가 필요했던 SK
2.2. 동산고 출신에 대한 불안감
2.3. 팔꿈치 수술 경력과 아버지에 대한 악성 루머
2.4. 김광현의 존재
3. 롯데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
4. 결론
5. 지명 이후, 여담



1. 개요[편집]


류현진의 프로 지명 당시 에피소드를 모은 문서. 더 정확히는 불세출의 투수 류현진을 뽑지 않았던 팀들의 이유와 정황에 대한 설명변명이다.

당시 동산고 좌완투수 류현진은 고교 최대어인 광주동성고 한기주의 다음 티어로 평가되던 유망주 중 한명이었고[1]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권을 가진 고향팀 SK 와이번스와 2차지명 1라운드 1번 지명권을 가진 롯데 자이언츠에서 먼저 지명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두 팀이 각각 이재원나승현을 지명함으로써 류현진은 결국 1라운드 2번의 한화 이글스에서 지명을 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류현진이 활약할 때마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SK/롯데는 왜 류현진을 안뽑았나요?" 라는 질문어그로 글이 올라오고는 하는데, 이 문서가 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이 문서는 류거이(류현진 거르고 이재원), 류거나(류현진 거르고 나승현)로도 들어올 수 있다.


2. SK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편집]



2.1. 포수가 필요했던 SK[편집]


SK가 류현진을 거른 첫 번째 이유로는 SK의 지명 당시 팀 내 상황이 꼽힌다. 2003년 준우승 이후 우승 트로피가 필요했던 SK는 2005년 여름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연고지역 고교인 인천고동산고가 나란히 2004년 대통령배와 2005년 3월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최우수고교 야구대회, 6월 청룡기를 제패하고 좋은 선수들이 두 학교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누구를 골라야 할 것인지 고민이 생겼다.

당초 2005년 초까지만 해도 SK의 유력한 1차지명 대상자는 인천고 투수 김성훈이었다. 1학년 때부터 인천고의 에이스 노릇을 했고 2학년 때는 한기주와 함께 초고교급 투수로 이름을 날리며 팀을 창단 후 처음으로 대통령배 우승으로 이끌었기에 김성훈이 단연 유력한 1픽 후보였다. 이 시기만 해도 류현진은 SK의 계산에 없었다. 류현진은 1학년 때도 사실상의 에이스 역할을 했으나 2학년 때였던 2004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고 2005년 초까지만 해도 재활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3학년으로 진급한 2005년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김성훈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김성훈이 정신적 충격에 빠져 부진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초고속으로 재활을 마친 류현진은 다시 팀의 에이스로 돌아와 좋은 구위를 보여주면서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다. 이 시기 류현진 외에 주목을 받은 선수가 1명 더 있었는데 당시 초고교급 포수로 꼽히던 이재원이었다.

SK는 이 시기부터 류현진과 이재원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타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선발진을 강화하기 위해[2] 류현진을 선택해야 하는지, 아니면 주전 포수 박경완의 대를 이을 후계자로 이재원을 택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류현진을 뽑기에는 2004년의 토미 존 서저리 사례가 걸렸고 이재원을 뽑기에는 포수로서의 기본적 역량 부족이[3] 걸림돌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SK 스카우터는 이재원으로 급히 선회하게 된다. 포수가 부족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2001년 메이저리그 팀들과의 경쟁을 물리치고 입단시킨 초대형 포수 유망주 정상호가 좀처럼 성장하지 못했고 주전 포수 박경완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기에 박경완의 뒤를 대비할 포수 자원이 필요했다.

여기에 후일 밝혀진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하면 당시 SK 감독이던 조범현이 이재원을 지명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4] 그래서 최초 류현진을 1차지명에 염두에 뒀지만 아래 후술할 이유와 함께 이재원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프로에서 이재원이 분명히 좋은 타격 퍼포먼스를 보여준 시즌이 종종 있었다. 전성기 시절엔 공격형 포수로 떠오를 정도로 타격능력만 따지면 주전포수값 이상을 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주전 포수를 꿰찬 2014시즌 이후부터는 부상으로 거의 한 시즌을 날려먹은 2020시즌을 제외하고는 100경기 이상씩 꾸준히 출장하고 있었고 2018시즌 기적적인 SK의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성적만 놓고보면 절대 실패한 1픽이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실패한 1픽들이 훨씬 많다는걸 감안하면 이재원 또한 성공한 픽이다.

하지만 하필 이재원 말고 뽑을 수 있었던 카드가 데뷔 시즌부터 신인왕+MVP를 휩쓴 괴물투수 류현진이었다는 게 문제.[5] 이재원은 데뷔 초기에는 별 활약을 못했고 군 제대 후 27살이 되어서 포텐이 터졌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류현진과 더더욱 대비되어 욕 먹었다. 그리고 수비력이 주전포수라고 보기는 힘들 정도라서 약점이 뚜렷한데다가, FA 계약 후 2할도 힘겨운 한심한 타격과 고질적으로 나빴던 수비로 먹튀의 정점으로 등극하여 2019년 말부터 시작된 SK의 몰락의 정점을 찍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2.2. 동산고 출신에 대한 불안감[편집]


두 번째로 SK가 동산고 출신을 뽑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스포츠동아 SK 담당 기자였던 이재국 기자가 2016년 6월 27일 라디오볼에서 밝힌 바로는 SK는 동산고 위주로 픽을 했는데, 생각보다 성장세가 더디는 경우가 많자, 당시 SK 구단 고위 간부가 동산고 지명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었다고 한다.

사실은, SK가 류현진 선수를 그때 지명하지 않았던 이유중에 하나도 그 이전에 SK가 동산고 출신들 계속 뽑았잖아요. 정상호 선수라던지 송은범 선수라던지. 그때만 해도 그 선수들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윗선에서.. 그때 사장님이 좀 약간 다혈질이셨는데 "앞으로 동산고 뽑지마!" 이런식으로 나와가지고 동산고와 인연이 조금 안 좋았어요. 류현진 선수가 물론 수술도 한 전력도 있고 이러겠지만, 동산고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스카우트들이) 또 잘못 뽑았다가 (구단 고위직에게) 또 혼날수도 있으니까 그랬던 부분이 사실 있었거든요.

2016년 6월 27일 라디오볼.

여기에 류현진의 동산고 3년 선배이자 2003년 1차 지명으로 SK에 입단한 송은범의 사례도 한몫을 했는데, 송은범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성적 문제보다 야구 이외의 부분에서 문제가 됐다. 사실 송은범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으로 지적을 받았는데 프로 입단 이후에는 밤마다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흥청망청 풍류에 빠져 산다는 증언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오죽 하면 구단에서조차도 송은범의 풍류를 제대로 통제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류현진 역시 고교 시절부터 골초로 소문이 났고 송은범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노는 것에 있어서는 뒤지지 않는 성격으로 스카우트 사이에 소문이 났다. 더구나 후술하게 될 아버지에 대한 악성 루머까지 겹치면서 SK롯데가 그를 포기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2.3. 팔꿈치 수술 경력과 아버지에 대한 악성 루머[편집]


마지막으로 투수에게 치명적인 팔꿈치 수술 경력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만 해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선수는 재활이 어렵고 부상의 재발 위험이 높다는 인식이 있던 시기라서 류현진의 이름을 언급하기가 선뜻 쉽지 않았다. 더구나 2004년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김성훈이 전국을 호령하고 있었으니 SK 입장에서는 류현진을 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팔꿈치 통증과 수술 과정에서 불거진 아버지 류재천 씨에 대한 루머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이 당시 야구계 안팎에서는 "류재천 씨가 인천에서 소문난 조직폭력배의 두목이다"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이는 류현진의 팔꿈치 수술 당시 벌어진 해프닝이 와전된 것이다. 류현진이 2012년 12월 미국 진출을 앞두고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는데 당시 류현진의 팔을 최초 진단했던 인하대학교병원에서는 "그냥 쉬면 된다"며 사실상 류현진을 방치했고 다른 병원에서 재검진한 결과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날 정도로 격분한 류재천 씨가 병원을 다시 찾아가 진료실 내 물건의 위치를 재배치했다고[6] 한다. 해당 기사

이 과정에서 "야구선수를 아들로 둔 아버지가 병원에서 무섭게 난동을 피운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이것이 와전돼 "류현진의 아버지가 인천에서 주먹으로 소문난 사람이라더라"라는 소문으로 둔갑했다. 아울러 작지 않은 체구에 다소 험상궂게 생긴 류 씨의 외모 역시 이런 루머에 힘을 더했다. 결론적으로 류재천 씨는 조폭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시민이자 아들 류현진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였다.[7]

이 소문은 아래 롯데가 류현진을 거르는데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2.4. 김광현의 존재[편집]


SK의 바로 다음 해 2007년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 풀에는 안산공고 좌완 투수 김광현이라는 특급 유망주가 있었다. 물론 당해에도 최초 1차지명을 염두에 두었던 김성훈이 성장세가 더디자 지명 순위를 뒤로 미뤘던 것처럼[8] 다음해 김광현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이재원을 뽑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으나, 당시의 김광현은 김성훈과는 차원이 다른 유망주였다. 2학년 선수가 혼자 청소년 대표팀에 뽑혀 3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한기주와 원투펀치로 중용이 될만큼 특급 유망주였다.

결국 좌완투수 두명을 뽑는 것 보다는 포수+투수로 포지션 배분을 하여 팀을 보강하려는 SK 측의 심산도 있었으리라는 추측은 무리가 아니다.


3. 롯데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편집]


2005년 청룡기에서 동산고가 기적의 대역전 우승을 거두면서 류현진은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해졌고, 2차 지명 1순위 지명권을 가진 롯데는 류현진 지명으로 기울고 있었다. 당시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강력한 2차 1번으로 거론되었고 류현진을 찍지 않은 SK를 조롱할 정도였다. 롯데팬들도 류현진의 미니홈피에 미리 환영인사로 도배를 하는 등 류현진이 롯데에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2차 지명 직전에 열린 봉황대기에서 류현진이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대신 광주일고나승현이 좋은 성적을 보이자 롯데는 2차 지명 며칠 전 류현진과 나승현 50대 50이라는 의견을 표했고, 지명 당일 새벽까지 회의를 한 끝에 윤동배 스카우터 팀장의 강력한 요청으로 나승현으로 선회하게 된다.

당시 고교 4대 메이저 대회의 결과를 보면, 대통령배한기주광주동성고가, 청룡기류현진인천동산고가, 황금사자기강정호나승현광주제일고가 차지했고, 마지막 대회인 봉황대기배장호의 갑툭튀 활약으로 수원유신고가 우승을 했지만, 나승현은 광주일고를 결승전까지 이끌었다. 나승현의 고교 무대 퍼포먼스가 대단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롯데는 그 이전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으로 고교 최대어 투수 김수화를 뽑았었는데 고교 시절의 혹사와 부상 여파로 실패하는 중이었고, 이에 고교 시절 토미존 수술 경력이 있던 류현진을 거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앞서 SK 문단에 언급되었던 '아버지 조폭설'이 롯데의 귀에도 들어갔고 그를 지명하지 않은 원인으로 작용을 했다고 한다.


4. 결론[편집]


이상의 SK와 롯데가 류현진을 거른 이유와 정황들은 결국 핑계일 뿐이다. 두 팀이 명백한 삽질을 했다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종종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결과론이다.', '이재원/나승현을 뽑을만 했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나, 당치않는 소리다. 만약 류현진이 프로 초반에 문제를 겪고 조정 기간을 거치면서 포텐이 터졌다면 쉴드의 여지라도 있겠지만, 류현진은 아예 입단 첫 해, 첫 경기부터 프로 무대를 씹어먹은 타고난 재능러였다.

첫 경기 7.1이닝 무실점 10탈삼진

첫 달 4경기 ERA 1.57

첫 시즌 30경기 201⅔이닝 ERA 2.23 204탈삼진

이런 속된 말로 '정신나간 재능'을 못알아보고서 거른 스카우트들에게 변명의 여지가 있을까? 그야말로 직업 자격 미달 수준이며 역대급 눈깔의 핑계일 뿐이다.[9]

또한 류현진이 체인지업을 구대성에게 배웠기에 한화가 아닌 다른 팀에 갔다면 지금같은 투수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류현진은 그 체인지업은 물론 MLB에서 배운 커터도 슬라이더도 배우자마자 금방 써먹은 미친 재능의 투수다. 그냥 어느 팀에 가도 성공했을 재능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10]


5. 지명 이후, 여담[편집]


류현진은 데뷔하자마자 '괴물'로 불리우며 프로 무대를 씹어먹었고, SK와 롯데의 스카우트진은 모두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심지어는 조범현이 2006시즌 직후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유가 부진한 성적과 더불어 류현진 대신 이재원을 선택한 1차 지명 때문이었다.[11] 후임인 김성근 감독도 SK가 류현진을 1차 지명했다면 자기가 아니라 조범현이 아직도 감독이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재원나승현 선수 본인들 역시 류현진과 비교당하며 주구장창 까이고 있다. 그나마 이재원은 2014시즌 타격에서 각성하고 주전 포수로 활약한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또한 팀이 류현진이 없어도 강팀으로 군림을 했기 때문에 류거이에 대한 비난은 다소 사그라들었지만, 나승현은 데뷔시즌 잠시 마무리로 활약한 것을 끝으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일찍 은퇴를 하고 만다.

이후 류현진은 한국 선수 역대 최고 포스팅 금액을 받으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였다. LA 다저스에서 2019시즌 평균자책점 1위와 사이영상 2위를 따냈으며, 이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000만 달러 대박 계약을 체결한 뒤 2020시즌 사이영상 3위와 워렌 스판상을 따내며 한국 투수 역사상 최고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SK와 롯데는 더더욱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SK는 대한민국 올타임 넘버원 투수바로 그 다음가는 투수를 함께 보유할 기회를 날려버렸다. 전성기의 SK는 2007년부터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1-1-2-1-2-2위를 차지했는데, 만약 해당시기에 류현진까지 보유했다면 4년 연속 우승의 1986~1989 해태, 2011~2014 삼성을 뛰어넘는 왕조를 만들었으리라는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

롯데는 전통적인 약팀 이미지를 벗을 기회를 날려버렸다. 롯데는 2008년부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부임 이후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나름의 부흥기를 맞았는데 한국시리즈에는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만약 류현진을 보유했다면...

2020년 나승현이 류거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영상

2021년 류현진과 동산고 동기이자 배터리를 이뤘던 최승준스톡킹에 나와 이와 관련된 썰을 풀었는데, 드래프트 날 같이 PC방에 가서 새로고침 누르며 결과를 지켜보다가 2차 1번에 나승현이 뜨자 류현진이 빡쳐서(...) 그대로 컴퓨터 끄고 PC방을 나갔다고 한다.

후일담으로, 현재까지도 동산고SK와 그 후신 SSG 팬들의 드립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이원준을 뽑느라 걸러 버린 김혜성의 별명이 졸지에 동산고 홀대의 희생양의 줄임말인 '동홀희'가 되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동산고에서 1차지명으로 데려온 이건욱오타니 쇼헤이와 비교당하기도 한다 (...) 이후 김혜성은 키움의 주전 내야수로 당당히 발돋움한 반면 이원준은 안 터지는 유망주로만 남다가 SSG 랜더스 2군 구타 및 가혹행위 사건의 주모자로 찍히면서 방출됨에 따라 이 지명도 류거이 못지 않은 희대의 실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후 2024년, 이재원이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고, 류현진이 2024년 2월 22일 한화에 복귀하면서 류거이의 당사자들이 모두 한 팀에서 뛰게 될 예정이다.

[1] 한기주 원탑에 류현진과 나승현이 다음 티어로 평가되었다. [2] 이 당시 SK의 토종 원투펀치는 김원형신승현이었는데 타 팀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외국인 투수의 역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3] 이재원은 프로 입단 당시만 해도 주자 견제를 위한 송구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4] 프런트들이 류현진 지명의 당위성을 강조하자 분노한 조범현 감독이 고성을 지르며 험악한 협박조로 이재원을 뽑으라고 했다는 증언이 있다.[5] 이 때 드래프트에서 SK가 걸렀고, 훗날 FA에서 놓친 선수로는 심지어 양의지도 있었다.[6] 류현진은 방송 당시 "아버지가 돌으셔서(...) 병원에 쳐들어가 깽판(...)을"이라고 말했다. 류현진의 거침없는 단어 선택에 당시 진행자였던 강호동, 유세윤, 황광희가 나란히 놀란 것은 덤.[7] 후에 99쇼에 출연한 부친 류재천 씨가 밝힌 일화도 비슷하다. "전에 처조카가 결혼을 하는데 같은 예식장 2층에서 조폭의 결혼식이 있었다. 처조카 결혼식이 1층이었고, 결혼식 양쪽 입구에서 조폭들이 죽 서 있어서 들어갔는데 그분들이 내가 손님인 줄 알고 인사를 해 인천의 주먹이라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게 마침 프로팀 스카우트들 귀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송은범처럼 노는 걸 즐겨하는 선수인데 조폭들과도 인연이 있다하면 어느 팀이라도 그 선수를 영입하는데 주저했을 것이다.[8] 아마추어에서는 전년도에 동기들 중 최상위였으나 갑자기 성장세가 더디어 드래프트 순위가 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안인산오원석. 그리고, 드래프티들 사이에서도 두산 베어스의 사례를 보면 프로 1년차부터 기량 차이가 역전되더니 급격히 벌어지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9] 나승현의 뛰어난 고교 기록을 거론하며 류현진을 거를만 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드래프트는 고교 기록 순으로 뽑는게 아니다. 고교야구는 프로보다 약한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하기 때문에 고교 성적순으로 프로에서 활약하지 않는다. 팬들은 고교 기록에 집착할 수 있다 해도 스카우트가 그래서는 안된다.[10] 하지만 그와 별개로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도 꾸준히 한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면 본인은 한화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11] 애초 SK는 류현진을 1차지명을 생각했으나 이 과정에서 같은 포수 출신 이재원을 1차지명으로 원하는 조범현 감독과 트러블이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 구단은 조범현의 손을 들어줬고, 그 결과는 아주 참담하였다. 이 일로 분노한 SK는 06시즌 종료 후 감독을 해임하였고, 이 일로 인해 업계 소문은 바닥을 찍었으며 결국 야인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도자로서 커리어가 끊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당시 KIA 구단주인 조남홍 사장이 같은 인하대 출신인 조범현 감독을 낙하산으로 꽂는 바람에 다시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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