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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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 존슨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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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66
1970

월드 시리즈 우승 감독
1986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1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올해의 감독 상
커크 깁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데이비 존슨
(워싱턴 내셔널스)


클린트 허들
(피츠버그 파이리츠)


데이비 존슨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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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a.espncdn.com/mlb_g_johnsonrizzo_600.jpg

오른쪽 인물이 데이비 존슨, 왼쪽에 있는 인물는 前 워싱턴 내셔널스 단장 마이크 리조이다.
데이비드 알렌 존슨
David Allen Johnson

생년월일
1943년 1월 30일 (81세)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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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신지
플로리다 주 올랜도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62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자유계약
소속팀
볼티모어 오리올스(1965~197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73~1975)
요미우리 자이언츠(1975~1976)
필라델피아 필리스(1977~1978)
시카고 컵스(1978)
지도자
뉴욕 메츠(1984~1990)
신시내티 레즈(1993~1995)
볼티모어 오리올스(1996~199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99~2000)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 (2003~2004)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2005~2009)
워싱턴 내셔널스(2011~2013)

1. 소개
2. 선수 경력
3. 감독 경력
4. 감독 성적
5. 기타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소개[편집]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일본프로야구에서 활동했던 전직 선수, 감독. MLB에서 보기 드물게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대성공한 인물이다.


2. 선수 경력[편집]


텍사스 A&M 대학교에 다니다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아마추어 자유계약을 맺은 그는 마이너리그를 거쳐 1965년에 데뷔하나 스무경기에서 타율 2할 미만의 타격을 선보이는데 그친다. 그래도 1966년에는 신인왕 투표 3위에 오르는 활약을 펼치며 O's의 우승에 기여한다. 여담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샌디 코팩스를 상대로 안타를 쳤는데, 이는 코팩스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 되었기에 코팩스를 상대로 마지막으로 안타를 친 선수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세 차례 월드시리즈에 더 나가 1970년을 우승하는 등 우승 복은 커리어 초반에 많았다. 개인 성적도 꾸준히 2할 8푼 내외의 성적을 기록하고 3회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이후 1972년 부진을 겪으며 시즌 종료 후 트레이드되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향했는데, 브레이브스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시즌을 보낸다. 로저스 혼스비의 2루수 단일시즌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인 42홈런(대타 홈런까지 추가하여 총 43홈런)을 찍었다.[1] 커리어 내내 볼넷을 많이 얻는 타자는 아니었으나 그해만큼은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볼넷도 적잖이 얻어냈다. 행크 애런(40홈런)이나 대럴 에반스(41홈런)의 우산효과였냐 물으면 그것도 아닌게 4번을 쳤던 애런과 달리 주로 하위타순에 들어서며 친 홈런들이었기에 더욱 충공깽. 덕분에 NL 재기선수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운을 그해 다 써버린 탓일까. 이듬해 다시 OPS가 7할대로 떨어졌고, 1975년 딱 한번 타석에 들어서 2루타를 친 후 방출되었다.

이후 그는 1975년 시즌 도중 태평양을 건너 일본프로야구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였는데, 이는 교진군 사상 최초의 MLB 출신 외국인 선수 영입이었다. 일본에서도 1976년 .275/.365/.539 OPS .904 26홈런 74타점의 성적을 거두어 2루수 베스트나인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 취임 이후 요미우리의 첫 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2] 하지만 잔부상에 시달리며 많이 출전하진 못했던 것과, 외국인 선수에 대한 팀과 세간의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로 인해 마음고생이 있었다고. 때문에 교진군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에게 약간 홀대도 당했고, 1976년 이후 방출되는 과정에서 교진군과 약간의 트러블을 일으켰다. 교진군에서는 그가 돈을 많이 요구했다고 밝혔으나 데이비 존슨 본인은 연봉 삭감을 감수할 의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결별하면서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홀대를 한 것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고.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시카고 컵스에서 뛰며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3. 감독 경력[편집]


1979년부터 5년 간 마이너리그 감독으로 감독수업을 받은 뒤 1984년 뉴욕 메츠의 감독을 맡은 데이비 존슨은 첫 시즌부터 90승 시즌을 만들어내며 차기 명감독으로서의 자질을 보인다. 그리고 1985년에는 98승을 기록하더니 이듬해엔 108승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 보스턴 레드삭스를 꺾는 과정에서 빌 버크너의 역사적인 알까기에 힘입어(...) 1986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오른다. 이는 개인으로서는 세번째 우승반지였다.

감독으로서 굉장히 느긋한(나쁘게 말하자면 게으른) 스타일의 이른바 "무위의 치" 같은 매니징 철학[3]을 갖고 있던 데이비 존슨이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잘하는 선수들에 한한 것이었다. 잘하는 선수들은 뭘 하든 상관 안했지만, 못하는 선수들에게는 지옥을 선사했다. 이 점에서는 해태 타이거즈에서 철권통치를 하던 김응용 감독과도 유사하다. 그렇게 매년 90승 내외의 성적을 내며 제대로 성과를 보여줬다. 문제는, 이런 그가 1990년 시즌 초 느긋하게 팀을 이끌면서 성적이 겨우 5할을 넘나들자 메츠 프런트는 그를 잘라버렸다.(...) 뭐, 훗날인 2010년에 어메이징 메츠의 리즈시절을 이끈 명장으로서 드와이트 구든, 대럴 스트로베리와 함께 메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해주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경질되어 2년간 백수로 지낸 그는 1993년 시즌 중반 신시내티 레즈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1994년 매우 좋은 성적을 내며 지구 1위를 질주하나 선수노조 파업으로 디비젼 우승은 날아갔다. 그래도 이듬해 더 좋은 성적으로 디비젼 1위를 달성하지만, 마지 쇼트 구단주는 그런 공로를 무시하고 시즌 중에부터 1996년 재계약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데이비 존슨 감독은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옮기지만 화력덕후 피터 안젤로스 구단주와 트러블을 일으키며 매우 좋은 성적과 1997년 디비젼 우승의 공로로 탄 AL 올해의 감독상에도 불구하고 잘린다. 이 과정에서 로베르토 알로마를 제대로 휘어잡지 못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고,[4] 이후 팻 길릭 단장까지 떠난 O's는 명감독을 내친 죄로 제대로 저주를 받았는지 14년간 5할 승률을 달성하지 못했다.(...)

1999년부터 그는 2년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을 맡게 된다. 다저스의 새 구단주가 된 루퍼트 머독이 오말리 색깔을 지우면서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 차기 감독이 유력하던 마이크 소시아를 내치고 영입한 귀한 몸이었고, 취임 선물로 우승청부사 케빈 브라운을 얻었지만, 결과는 대권은 커녕 2년 연속 비밀번호(...) 여담으로 1999년 어느 날 심판 판정에 불복하고 항의하다 퇴장당하고, 그날 다저스의 선발 투수만루홈런을 맞고 그 이닝에 또 만루를 채웠다가 만루홈런 때렸던 타자에게 또 만루홈런을 얻어맞는 역사적인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저스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뒤 존슨은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다 2003년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 네덜란드 대표의 2004 아테네 올림픽 지역예선 겸 유럽선수권 우승을 이끈다.

올림픽 이후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단, 2006 WBC는 벤치 코치) 아마추어/마이너리그를 총괄해야 하는, 연봉은 적으면서 매우 까다로운 직책.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을 4강에 올렸다. 이후 대학리그 코치를 하며 커리어를 마감하는가 했는데...

2011년 짐 리글먼 감독이 재계약에 난항을 겪다 사임한 워싱턴 내셔널스[5]가 그를 땜빵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스티븐 스트라스버그토미 존 서저리 재활을 하고 제이슨 워스는 먹튀짓을 하던 답이 없는 팀을 꾸려나가며 시즌 최종 80승 81패로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찍자 마이크 리조 단장은 2012년에도 그를 감독으로 임명하였는데... 브라이스 하퍼의 역사적인 데뷔 시즌에 걸맞는 성적을 낸다. 프랜차이즈 역사로는 31년만이자 워싱턴 D.C. 야구사에서 79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끈 것. 그것도 내셔널리그 최고 승률로 모 만패팀의 독재가 이어지던 NL 동부지구 타이틀을 쟁취하면서. 비록 플레이오프는 드류 스토렌의 방화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패하는 비극으로 마무리되었으나,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떠나있으면서도 감각을 잃지 않고 팀을 내셔널리그 정상급 팀으로 만든 데이비 존슨 감독의 공로는 NL 올해의 감독상으로 돌아왔다. 이는 바비 콕스, 토니 라 루사, 짐 릴랜드, 루 피넬라에 이은 역대 5번째 양대리그 감독상 수상이라는 진기록이다.

9월 30일 2013시즌 애리조나 원정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함으로써 30년간의 감독생활을 마감하였다. 통산 승수는 1372승 1071패 승률 0.562

4. 감독 성적[편집]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84
NYM
162
90
72
.556
지구 2위
-
1985
162
98
64
.605
지구 2위
-
1986
162
108
54
.667
지구 1위
WS 우승
1987
162
92
70
.568
지구 5위
-
1988
162
100
62
.617
지구 1위
CS 탈락
1989
162
87
75
.537
지구 5위
-
1990
42
20
22
.556
지구 2위
중도 해임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93
CIN
118
53
65
.449
지구 5위
중도 취임
1994
114
66
48
.579
지구 1위
-
1995
144
85
59
.590
지구 1위
CS 탈락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96
BAL
162
88
74
.543
지구 2위
CS 탈락
1997
162
98
64
.605
지구 1위
CS 탈락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99
LAD
162
77
85
.475
지구 3위
-
2000
162
86
76
.531
지구 2위
-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11
WSH
83
40
43
.482
지구 2위
-
2012
162
98
64
.605
지구 1위
DS 탈락
2013
162
86
76
.531
지구 2위
-
총계
2443
1372
1071
.562
WS 1승 4CS 1DS

5. 기타[편집]


  • 나이만 보면 고리타분할 것 같은 인상이지만 의외로 현대야구의 흐름에 정통한데, 현역 감독들 중에서도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에 속하는 감독이다. 현역 시절이던 1970년대부터 본인이 스스로 IBM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주전 라인업을 짜 감독에게 제안하기도 했고, 1984년 메츠 감독이 된 뒤 팀 직원에게 상대 분석을 위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의 선수 출신 감독으로서는 정밀한 데이터에 대해 선구자적인 관심을 지녀왔다. 단순한 데이터 야구의 수준을 넘어 선수 기용이라든지 단장과 로스터 무브를 논할 때에도 세이버메트릭스적인 분석을 참고한다고. 샘플 사이즈가 너무 작은 단기전에서 약하나 큰 샘플 사이즈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하는 감독이다. 물론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리그 감독의 숙명상 작전을 구사할 때엔 데이터고 뭐고 심사숙고하여 결단을 내리지만, 그런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세이버메트릭스적인 분석은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2012년 그가 이끈 내셔널스는 투수가 아닌 포지션 플레이어들의 희생타가 (가장 적진 않아도) 꽤 적은 편에 속하는 팀이었다.



6. 관련 문서[편집]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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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이 기록은 2021년 토론토 블루제이스마커스 시미언에 의해 경신(更新)되었다.[2] 이때 요미우리의 클린업 트리오가 죄다 비일본인이었다(...) 장훈(대한민국)-왕전즈(중화민국)-데이비 존슨.[3] 재미있게도 그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86년의 메츠는 호사가들 사이에서 프로스포츠 사상 최악의 악동 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팀이다.기사 투타의 에이스인 대럴 스트로베리, 드와이트 구든과 팀리더격이던 1루수 키스 에르난데스가 모두 코카인 상습범이었고 레니 다익스트라, 케빈 미첼, 제시 오로스코 등 주색잡기와 인성문제에 있어서는 어디서도 안 꿀리는 선수들이 모여있었으며 온갖 파티와 술자리의 피로를 씻기 위해 암페타민은 거의 상비약처럼 달고 살았다고 한다.[4] 로비 알로마 항목 사진에 나오는 존 허시벡 심판에게 침 뱉은 사건이 대표적이다.[5] 사실 2006년부터 짐 보든 전 단장과 마이크 리조 단장의 자문역을 맡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