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겸(신라)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통일신라의 왕족. 제38대 열조 원성왕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각간(角干) 김신술(金神述)의 딸 숙정부인(叔貞夫人)이다. 동생으로 의영태자(義英太子)와 예영(禮英)이 있고, 아들은 소성왕, 헌덕왕, 흥덕왕, 선강태자가 있으며, 딸로는 선의태후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이라면 김충공과 남매혼을 한 것이 된다... 본관은 경주 김씨. 《삼국사기》 등 기록에서는 성씨를 빼고, 이름만 기록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냥 간단하게 인겸이라고 불리운다.
2. 생애[편집]
785년(원성왕 원년)에 태자로 봉해졌으나, 791년에 왕위를 잇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혜충태자'(惠忠太子)라는 시호를 받았다.
795년, 당시 병부령이던 그의 아들 준옹(俊邕)이 태자가 되었다. 798년에 원성왕이 죽고, 손자인 김준옹이 왕위에 올라 소성왕이 되자, 부친인 김인겸을 '혜충대왕'(惠忠大王)으로 추존했다. 그리고 애장왕 때에는 유교식 종묘의 일종인 5묘(五廟)에 배향되었다.
3. 가계[편집]
- 왕비 : 성목태후 김씨
- ?[2]
보면 알다시피 신라 하대의 꼬이고 꼬이는 왕위 계승의 거의 모든 부분에 김인겸의 자손들이 관여한다. 당장에 그의 아들 셋이 왕위에 올랐고, 손자 둘도 왕위에 올랐다. 거기다 손녀들은 왕비 혹은 추존 왕의 왕비가 되어서 후대의 왕들의 조상이 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신라 하대의 피를 부르는 난투극은 재미있게도 김인겸 계통의 가까운 친인척들이 치고 박고 싸운 셈이 된다 봐도 무방하겠다. 거기에 동생 김예영 계통의 자손이 끼어든 정도?
[1] 셋째 아들 흥덕왕이 777년생, 장손자인 애장왕이 788년생임을 감안하면 최소 750년대 중반 생일 가능성이 높다. 즉. 30대에 요절한 셈이다.[2] 《삼국유사》에서 딸이라고 불리는 선의태후가 《삼국사기》에서는 박씨로 기록된데다가 김인겸의 아들인 김충공과 혼인하는 점, 제43대 희강왕의 또다른 이름 중 하나가 김제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성목과 동일인일 가능성은 낮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6 18:17:45에 나무위키 김인겸(신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