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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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당시의 상황
2.3. 트레이드 당시 평가
3. 최종평가
3.1. 2009 시즌
3.2. 2010 시즌
3.3. 2011 시즌
3.4. 2012 시즌
3.5. 2013 시즌
3.6. 2015 시즌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2009년 4월 19일에 한국프로야구 소속팀인 KIA 타이거즈LG 트윈스 사이에서 이루어진 맞교환 트레이드.당시 기사


2. 당시의 상황[편집]



2.1. KIA 타이거즈[편집]


시즌 초 유격수 김종국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1] 김선빈은 검증이 덜 된 신인이었다. 용병을 데려다 해결하려 했으나 전 시즌 윌슨 발데스의 부진으로 인해 결국 투수 두 명을 선택한 KIA. 이후 조범현 감독은 프런트에 유격수 자원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달했다.

KIA 프런트는 대학까지 유격수를 맡던 3루수 이현곤을 유격수로 돌리고, 아예 새로운 3루수를 영입하자는 제안을 했다. 사실 누가 봐도 유격수를 트레이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에 고육지책을 선택한 것. 이는 당시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 기사에서도 나온 내용이다. 원문 기사

전년도에도 KIA가 센터 내야수를 보강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때 두산 베어스에서 이대수를 제시하면서 2차 1라운드로 지명한 좌완투수 양현종을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내야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상황이 급했다지만 상위 픽 유망주를 줄 수 없던 KIA는 거부한다.

2.2. LG 트윈스[편집]


FA로 서울 히어로즈에서 정성훈을 영입하면서 기존 3루수였던 김상현에게 새 길을 터 줄 필요가 있었던 LG는 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2009 시즌 5월만 하더라도 2위 자리에 오르며 엄청난 기세로 몰고 나갔고 김재박 감독의 마지막 해였던지라 성적 또한 필요했기 때문.


2.3. 트레이드 당시 평가[편집]


강철민은 입단 이후 통산 117경기에 출장해 25승 35패(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 4.85를 기록했으나, 당시 재활 중이었다.

김상현은 2군에서는 잘 했지만, 1군에서 낸 성적이 영 좋지 않았고 1년 조금 넘게 1군에서 주전 3루수로 뛰면서 선풍기질만 하던 만년 유망주였기에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3. 최종평가[편집]



3.1. 2009 시즌[편집]



완벽한 탈쥐효과. 이로 인해 KIA는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비롯한 통합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박기남도 유틸리티 대수비용 내야수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었다.


3.2. 2010 시즌[편집]


김상현은 지난 해만 못하지만 그래도 일발 장타 능력으로 클린업을 차지했고 박기남은 더 나아진 타격 성적으로 출전 시간을 쟁취했다.

강철민은 이 해 LG에서 첫 등판을 가져가 좋은 구속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활약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3.3. 2011 시즌[편집]


이범호의 합류로 김상현은 코너 외야로 옮겨갔는데 지난 시즌보다 약간 나은 타격 성적으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시즌 종료 후 1군 등판이 없었던 강철민이 방출되었다.


3.4. 2012 시즌[편집]


김상현은 부상에 시달리며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박기남은 준수한 활약으로 김상현과 함께 부상에 시달리던 이범호의 공백을 약간이나마 지워냈다.


3.5. 2013 시즌[편집]


김상현이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리고 난 뒤의 결과는 해당 문서 참고.

박기남은 커리어 하이를 갱신하며 이범호가 시즌 초 부진한 기간 동안 쏠쏠히 활약하여 많이 기용되었다.


3.6. 2015 시즌[편집]


시즌 종료 후 대수비로 커리어를 이어가던 박기남이 은퇴하며 이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선수들 모두가 팀을 떠났다.


4. 여담[편집]



당시 수석코치였던 김종모는 트레이드 찬성, 조범현은 반대였다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영상 참고.

타어강 기사에서 트레이드에 대한 뒷내용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원래 2013년이 아닌 2009년에 SK 와이번스로 갈뻔했다고 한다. 당시 FA 자격을 얻어 LG로 이적한 이진영의 보상선수를 선택해야 하는데, 최동수에 의하면 당시 김성근 감독이 LG 쪽에서 작성한 보호명단을 살펴본 뒤 이승호와 김상현 둘 중에 누가 더 낫냐고 물어보자 최동수가 이승호를 추천하여 SK는 이진영의 보상선수로 이승호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KIA가 우승했는데 우승의 주역이 바로 김상현이었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이 삐진 나머지 최동수한테 전화를 걸어 뭐라했다고 한다. 하지만 SK로 갔으면 김성근이 플래툰으로 돌렸을 것이기 때문에 홈런왕 김상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5.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6 09:04:00에 나무위키 김상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결국 신인 안치홍이 대두되자 이듬해 김종국은 은퇴를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