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의 이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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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춘향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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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하야카와 고슈, 1923)
춘향전
(이명우, 1935)
그 후의 이도령
(이규환, 1936)
춘향전
(이규환, 1955)
대춘향전
(김향, 1957)
춘향전
(안종화,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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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춘, 1960)
춘향전
(홍성기, 1961)
성춘향
(신상옥, 1961)
한양에 온 성춘향
(이동훈, 1963)
춘향
(김수용, 1968)
춘향전
(이성구, 1971)
방자와 향단이
(이형표, 1972)
성춘향전
(박태원, 1976)
성춘향
(한상훈, 1987)
성춘향뎐
(앤디 김, 1999)
춘향뎐
(임권택, 2000)
방자전
(김대우, 2010)






그 후의 이도령 (1936)
그 後의 李道令
감독
이규환
각본
제작
기획
제작사
오양영화사
촬영
선우학
장치
곽기[?]
의상
김이진
진행
이삼수
자막
곽광파
출연
장한, 이원, 독은기, 추명림, 양백희, 고추원, 신현주, 변종근
개봉일
1936년 1월 27일[1]
개봉관
조선극장

파일:그 후의 이도령 한 장면.jpg
왼쪽 이원(이도령 역), 오른쪽 독은기(방자 역)[2]

1. 개요
2. 시놉시스
3. 줄거리
4. 여담



1. 개요[편집]


이규환 감독이 각본을 쓰고 기획·제작·연출한 1936년 개봉 영화. 대구의 상설영화관인 만경관을 중심으로 조직된 오양영화사(五洋映畵社)의 제1회 작품이다.

춘향전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 격 스핀오프로,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2. 시놉시스[편집]


무도한 변학도의 손에서 춘향을 구출하여 서울로 올려 보내고 난 이몽룡은 다시 민정을 살피러 암행길을 떠난다. 어느날 이몽룡은 산중 외딴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집 내외는 고개를 넘는 손님들의 물건을 약탈하고 생명까지 앗아가는 흉악범들이 아닌가. 이몽룡은 그 흉악범 내외를 잡아 관가에 넘기고 또 다시 암행길을 떠난다.


3. 줄거리[편집]


일세가인 춘향과 화조월석을 노래하던 풍류재자 이도령은 위기에 빠진 애인 춘향을 구한 후 권선징악의 어사마패를 차고 방자 돌식과 같이 길을 나섰다. 돌식이의 모(母)는 성칠이란 인물과 부부가 되어 가난한 생활을 하던 중 성칠이는 돌연 행상인의 물품을 도둑질하였으나 그 자리에서 주인에게 발각되었다. 무지한 성칠은 소문이 날까 염려하여 상인을 살해하고 주방에 매장했다. 그 후 어떤 여행객 노인이 손녀를 데리고 숙박을 청하여 들어왔는데 처는 노인의 물품과 손녀를 유인하여 마을 불량자에게 팔아넘길 계획을 했다. 노인은 그 집 주방으로 물을 마시러 들어갔다가 시체를 발견했고 성칠은 노인의 입으로 폭로될까 하여 살해를 도모했으나 노인은 손녀와 간신히 피하여 도망쳤다. 성칠은 불을 지르고 도망가던 중 돌식은 노인의 급보를 듣고 이도령의 명령을 받아 불량자를 체포하고 성칠도 체포 중 살해했다. 아무리 범죄자의 체포 중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살인죄에 걸리자 공명정대한 이어사는 눈물을 흘리며 지방관청으로 돌식을 자백하러 들여보낸다.

4. 여담[편집]


경상북도 현풍에서 촬영되었다.

노인 역의 분장에 수염이 필요한데 구할 수 없자 흰 개 털을 잘라 대용했다. 장롱방에서 아교를 사다 개털을 턱에 붙였는데 수염이 뻣뻣이 굳어버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촬영이 끝나 수염을 떼려했으나 떨어지지 않아 밤새 알콜로 씻어내는 등 실랑이를 해야만 했다고.

우여곡절 끝에 막상 현상을 해보니 영화도 아니고 활동사진도 아닌 엉망인 수준이라 이규환 감독은 테이블을 치면서 통곡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후 필름을 찢어버려서 지금은 사진으로나마 해당 영화의 흔적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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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 상태 불명확[1] 출처: 조선일보 1936년 1월 29일[2] 출처: 매일신보 1935년 11월 18일 제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