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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철종의 후궁 귀인 박씨에 대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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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1 [[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 환조 ~ 연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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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의
후궁. 아버지는 안변 대도호부사를 지낸 박강생(朴剛生)
[1] 그의 아버지는 태조 이성계의 원종공신이자 호조 전서를 지낸 박침(朴忱)이다.
으로 찬성에 추증되었고, 어머니는 윤승경(尹承慶)의 딸이다.
동복오빠로 교서관 정자를 지낸 박절문(朴切問)과 종사관을 역임하고 단종의 복위를 도모한 박심문(朴審問)
[2] 1456년(세조 2) 성삼문 등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음독자살하였다.
, 종부 판관을 지낸 박의문(朴疑問)이 있다.
1424년(세종 6) 세종의 후궁으로 뽑혀 장의궁주(莊懿宮主)로 봉작되었다.
[3] 세종실록 26권, 세종 6년 10월 27일 무진 1번째기사. #
이때
최사의의 딸도 같이 후궁으로 뽑혔는데, 1428년(세종 10)
내명부의 체제를 정리하면서 두 사람이 같이 종1품 귀인으로 봉작되었다.
[4] 세종실록 40권, 세종 10년 6월 16일 정유 3번째기사. #
[5] 세종조에 장의궁주와 명의궁주를 마지막으로 후궁이 궁주(宮主)로 봉작되는 경우는 없다.
슬하에 자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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