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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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광진구청장은 서울특별시 광진구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이다. 근무지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로 117번지(자양동)에 있는 광진구청이다. 2급 공무원 상당의 대우를 받고, 4년에 1회마다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3회까지 연임할 수 있다.
2. 상세[편집]
3. 역대 구정 목표[편집]
4. 명단[편집]
4.1. 과거 광진구가 속했던 지역의 장[편집]
4.2. 광진구청장[편집]
1995년까지 현 광진구 지역을 총괄했던 사람에 대한 내용은 성동구청 문서 참고하십시오.
- 국회의원, 시·도지사, 차관급 이상의 직을 역임한 구청장에게는 볼드체 표시함.
5. 역대 선거 결과[편집]
5.1. 1995년[편집]
1995년 6월 27일 선거, 7월 1일 취임. 서울 전반적으로 민주자유당이 패배하고 민주당이 승리했는데, 광진구청장 선거에서도 민주당 정영섭 후보가 민주자유당 전명호 후보를 약 2만 표 차이로 꺾었다.
민주자유당에서는 성동구청장[12] , 서울특별시의회 사무처장 등을 지낸 관료 출신 전명호 후보를, 민주당에서는 강남구청장 등 5개 구의 구청장을 역임한 정영섭 후보를 공천했다.
5.2. 1998년[편집]
1998년 6월 4일 선거, 7월 1일 취임. 전반적으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가 승리한 선거였으나 광진구청장 선거의 경우 정영섭 전 구청장이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정영섭 전 구청장을,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당 지방정책실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경기도 정무부지사를 지내는 신극정 후보를 공천했으며, 국민신당에서도 후보를 공천했다.
5.3. 2002년[편집]
2002년 6월 13일[13] 선거, 7월 1일 취임. 한나라당 정영섭 구청장이 2만 표의 격차로 3선에 성공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정영섭 전 구청장을, 새천년민주당에서는 김태윤 전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을 공천했다.
5.4. 2006년[편집]
2006년 5월 31일 선거, 7월 1일 취임. 1강 3중 3약 형태의 선거로, 광진구청장 선거 중 가장 많은 후보자가 난립한 선거이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지난 지선에 출마했던 김태윤 전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을, 한나라당에서는 후지제록스호남 사장을 지낸 경영인 출신 정송학 후보를, 민주당에서는 이후 광진구청장을 역임하는 김기동 전 광진구 부구청장을 공천했다. 이외에도 국민중심당에서는 1회 지선에 무소속, 2회 지선에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했던 김광해 후보를 공천했으나 0.6%(...)라는 득표율로 낙선했으며, 광진구 부구청장을 지낸 권혁모 후보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5.5. 2010년[편집]
2010년 6월 2일 선거, 7월 1일 취임. 민주당 김기동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민주당은 15년 만에 구청장직을 탈환하였다. 보수 진영 표가 한나라당과 정송학 전 구청장으로 갈라져 보수 진영 득표율은 54%가 나왔지만, 38.99%를 얻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한나라당에서는 서울시자원봉사센터 소장을 지낸 구혜영 후보를, 민주당에서는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김기동 전 광진구 부구청장을 공천했으며, 정송학 전 구청장은 한나라당의 전략공천에 반발해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외에도 국민참여당에서 후보를 공천했다.
5.6. 2014년[편집]
2014년 6월 4일 선거, 7월 1일 취임. 새정치민주연합 김기동 전 구청장이 약 7%의 격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이명박 정부 당시 특임장관실 차관 및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권택기 후보를,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김기동 전 구청장을 공천했다.
5.7. 2018년[편집]
2018년 6월 13일 선거, 7월 1일 취임. 더불어민주당 김선갑 후보가 자유한국당 전지명 후보를 40% 격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출신 김선갑 후보를, 자유한국당에서는 광진구 을 당협위원장이자 바른정당 대변인을 지냈던 전지명 후보를, 바른미래당에서는 자유선진당 출신 김홍준 후보를 공천했다.
5.8. 2022년[편집]
사전투표함이 먼저 개표된 초반엔 김선갑 후보가 3천여 표 앞서나갔으나, 본투표가 개표되기 시작한 중반부터 김경호 후보가 추격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아파트가 많은 광장동, 구의3동, 자양3동에서 김경호 후보의 몰표가 쏟아지며 김경호 후보가 당선되었다.
광진구는 금관구, 노도강에 가려져 그렇지 상당히 진보세가 강한 지역이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오세훈 시장을 꺾고 정치 신인 고민정이 당선될 정도로 개인기로도 뚫기가 어려운 지역이였다. 그러나 이 지역을 정치적 본적을 두고 있는 오세훈 시장의 유례없는 높은 지지율과 여당의 허니문 효과, 결정적으로 지역구 현 의원인 고민정의 실책과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표심을 확 바꿨다는 평가다.
6. 관련 문서[편집]
[1] 관선의 경우 임명 정부명 기재, 민선의 경우 당선 시 기준. 당적 변동 사항은 각주로 기재.[3급] 지방부이사관(3급)[2] A B 지방이사관(2급) 대우[3] 민선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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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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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국민회의|
]]
. 1997.9. 구청장직 박탈.[4] 부구청장[5] 서울특별시청 경영기획실장 겸임[6] 1995.12. 개혁신당과의 합당으로
창당
1997.11. 신한국당과의 합당으로
창당.[7] 2010.5. 공천 불복으로 인한 탈당,
[[무소속|
.[8] 2011.12. 시민통합당과의 합당으로
[[민주통합당|
]]
창당
2013.5.
[[민주당(2013년)|
]]
으로 당명 변경
2014.3. 새정치연합과의 합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
]]
창당.[9] 2015.12.
으로 당명 변경.[10] 민선 5~6기, 운영위원회 위원장 역임. → → → → [11] 임기는 `26.6. 까지. 연임 시 `34.6. 까지 가능.[12] 광진구가 성동구로부터 분리되기 이전인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역임.[13] 2002 한일 월드컵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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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무소속
]]→
[[새정치국민회의|
. 1997.9. 구청장직 박탈.[4] 부구청장[5] 서울특별시청 경영기획실장 겸임[6] 1995.12. 개혁신당과의 합당으로
창당
1997.11. 신한국당과의 합당으로
창당.[7] 2010.5. 공천 불복으로 인한 탈당,
[[무소속|
무소속
]].[8] 2011.12. 시민통합당과의 합당으로
[[민주통합당|
창당
2013.5.
[[민주당(2013년)|
으로 당명 변경
2014.3. 새정치연합과의 합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창당.[9] 2015.12.
으로 당명 변경.[10] 민선 5~6기, 운영위원회 위원장 역임. → → → → [11] 임기는 `26.6. 까지. 연임 시 `34.6. 까지 가능.[12] 광진구가 성동구로부터 분리되기 이전인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역임.[13] 2002 한일 월드컵 기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