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빈/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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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아마추어 경력
3.1. 2018 시즌
3.2. 2019 시즌
3.3. 2020 시즌
5. 연도별 성적


1. 개요[편집]


두산 베어스 소속 선발 투수 곽빈의 선수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


2. 아마추어 경력[편집]



파일:배명고 곽빈.jpg


두산 1순위 지명 배명고 곽빈 찾은 동문 선배 박철순

고등학교 시절에 투수로는 최고 구속 153km/h, 타자로는 주말리그 타점상을 수상하는 등 투타 모두 재능을 보여 고교야구의 오타니 쇼헤이로 불렸었다. 김동주, 이경필의 고교 시절과 유사하다는 평도 있었다.[1]

다만 학동초-자양중 시절부터 투타를 병행했지만, 배명고 진학 후 팔에 통증을 느껴 투수로는 거의 등판하지 않았고, 팀의 주축 타자로서 배명고를 이끌었다. 배명고 김경섭 감독이 "프로에서 꼭 성공해야 하는 선수"라며 필사적으로 관리를 한 선수인데, 작은 통증만 있어도 공을 못 만지게 했다고 한다.[2] 그래서 팔꿈치 수술을 한 뒤 2학년까지 투수로 등판하지 않았고, 투수 생활을 3학년 때부터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고교 통산 이닝이 28⅓이닝으로 적은 편이다. 덧붙여 이 기사에 의하면 자양중 시절에도 추성건 감독이 관리를 해서 좋은 공을 던질 재목으로 보였지만 투수로 기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고3이 되어 주말리그 휘문고와의 개막전에서 투수로 등판했는데, 다소 추웠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최고구속 148km/h를 기록하여 스카우트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김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투수 곽빈의 모습을 2년간 철저히 숨겼다"고 하는데, 이 때 스카우터들이 거의 눈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고 한다. 이후 날이 따뜻해지면서 최고구속 153km/h를 기록하며 서울권 1차 지명 유력후보로 급부상했다. 경험이 부족하고 투구 폼이 거친 점은 있지만, 직구 구위 면에서 베이징 세대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안우진을 1차 지명하면서 다음 순번인 두산 베어스가 곽빈을 1차 지명으로 확정하였다.

1차지명 결정 전까지는 배명고가 1차지명 전 유일한 전국대회인 황금사자기에 못 나가면서 전국대회에서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데다가 에이스 역할을 한 것도 아니어서[3] 다소 모험이 따른다는 지적도 있었다.



허나 1차 지명을 받은 직후인 제72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서울고를 꺾고 배명고등학교 야구부에게 25년 만의 메이저 전국대회 우승이자 팀 역사상 첫 청룡기 우승 기록을 안기며 대회 MVP가 되었고, WBSC U-18 야구 월드컵에서 안우진이 빠진 청소년대표팀의 에이스 노릇을 하며 이 우려는 씻어냈다. 또한, 오히려 지명을 받고 난 뒤 주장이자 에이스로서 더 열심히 소속팀 배명고를 이끄는 아주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멘탈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두산 팬들은 위에 말 한 것들이 아니라 세청 감독의 혹사를 걱정했다.

다만 구위는 확실한데, WBSC U-18 야구 월드컵에서 체인지업에 미국 청소년 대표팀 괴수들이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제구력도 준수해서 선발, 불펜을 가리지 않고 1선발급 혹은 마무리급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된다.


3. 두산 베어스[편집]



파일:곽빈.jpg


2017년 6월 13일에 일찌감치 두산 베어스의 1차지명을 받았다. 정식 공지는 6월 26일.

지명 후 청룡기와 세청을 거치면서 벌써부터 팬들 사이에서 풀 네임이 우리빈으로 확정되었다. 그만큼 팬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2차 1라운더 박신지, 2라운더 정철원과 함께 벌써부터 꽤 많은 언급이 되는 중. 물론 제일 많이 거론되는 건 곽빈이다. 이 셋은 2018년 두산의 신인드래프트 최상위지명 3인방으로, 구단에서 기대를 거는 게 보이기도 하는 등[4] 셋이서 많이 엮이고 있다.

다들 기대가 컸는지 베어스포티비가 올려준 스프링캠프 불펜피칭 영상이 3월 7일 기준 28만 회를 돌파했다(!!) 2018년 스프링캠프 영상들 중 제일 높은 조회수이다. 팬들도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듯. 시즌이 진행 중인 6월 초 현재는 60만 조회수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2021년 10월 31일 129만회를 돌파했다


3.1. 2018 시즌[편집]



파일:image_readtop_2018_213908_15227666863264060.jpg


3월 24일 개막전에서 9회에 구원 등판하여 프로 데뷔무대를 치렀다. 비록 팀은 졌지만, 깔끔한 투구를 보여주었다.

3월 28일 1점 차로 뒤지고 있던 8회 초 1사 2루 상황에 등판해 ⅔이닝을 깔끔하게 막고 내려갔다. 그리고 야수진이 8회 말 3점을 보태 역전했고, 그대로 팀이 승리하면서 프로 데뷔 첫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첫승 기념으로 선수단에 피자 20판을 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피자 갯수가 본인의 등번호와 똑같았는데 우연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고 한다.

4월 3일 잠실 홈 LG전에서 2-2 동점 8회초 1사 만루의 위기에 등판하여 정상호와 대타 김용의를 연속 삼진으로 처리하며 홍상삼을 비롯한 선배들이 질러놓은 불을 끄는 호투를 보여줬다. 이어진 8회말 오재일의 투런포로 승리 조건까지 잠시 갖추었지만 9회초 김현수의 투런포로 다시 동점이 되며 두번째 승리는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팀은 연장에서 터진 최주환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

4월 4일 LG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

이후 등판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4월 11일 삼성전에서 9회말 등판한 김강률이 1사후 홈런과 안타를 내주며 무너지자 구원등판해 강민호를 커브볼로 공략하여 루킹삼진으로 처리했고, 배영섭에 안타를 맞아 분식/패전 위기에 몰렸으나 이날 5타수 1안타로 크게 부진하던 김헌곤을 3루 땅볼로 잡아내며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참고로 이 경기 종료 시점의 김강률의 방어율은 10.38이다.

4월 21일까지 1승 1세이브 3홀드 4.50을 기록 중이나 2연투가 5번이나 있고 팀이 23경기를 치렀는데 14경기에나 등판했다. 필승조에 속해있는 박치국, 함덕주와 더불어 너무 자주 등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다만 4월 24일 경기를 보면 믿었던 김승회김강률이 얻어터지고 나서 함덕주가 분투해서 간신히 이긴 것만 봐도 두산 불펜도 불안한 상황이라 탄력적인 투수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운용 가능한 좌완 불펜은 함덕주 뿐이고 그나마 믿을 만한 투수가 박치국과 곽빈 뿐이라 등판이 잦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5월 들어 김승회김강률의 폼이 살아나면서 어린 투수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게 되었고 곽빈의 등판 수도 줄어들어 적절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5월 중순 들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그 결과 평균자책점이 5점대까지 상승하여 결국 5월 20일 1군 말소 통보를 받았다. 고교 시절에 이렇게 많이 던져본 적이 없었다가 프로에서 급격히 자주 등판하게 되어 후유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군에서 선발 등판을 한 번 한 뒤, 쿨타임 10일을 채우고 바로 1군에 복귀하였다.

5월 31일 SK전과 6월 1일 KIA전 이틀 연속으로 팀의 역전승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15일 한화전에 오랜만에 불펜등판해 ⅔이닝 3피안타(1피홈런) 3실점을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이후로 퓨쳐스리그에서 체인지업을 제대로 연마할 것을 숙제로 받았다고 한다. 이현호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될 때 "불펜으로 나오게 될 것이니 직구 구속을 끌어올려 오라"는 숙제를 받아서 이것을 완료한 뒤에 다시 1군에 올라왔는데, 곽빈 또한 숙제가 완료되면 복귀할 것으로 보였으나...

퓨쳐스리그에서도 7월 7일 이후로 등판 기록이 없다가, 결국 이유가 밝혀졌다. 팔꿈치 통증이 도저히 가시지 않아, 구단 차원에서 수술을 고려 중[5]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향후 두산 투수진의 핵심 코어로 활용될 것을 기대했던 두산 팬들에겐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되었다. 시즌이 끝나면 공식 발표가 될 것으로 전망. 결국, 10월 4일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3.2. 2019 시즌[편집]


시즌을 앞두고, 구단 차원에서 재활이 길어지자 육성선수로 전환하였다. ##

6월까지도 이천에서 재활 중으로 보였고, 결국 1군 등록 없이 재활에만 전념하면서 시즌을 마쳤다.


3.3. 2020 시즌[편집]


재활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인지, 2월 대만 퓨처스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되어 출국했음이 알려졌다. # 재활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7월초~7월말 사이에 퓨처스에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6월 8일 기사로 팔꿈치 통증이 재발했음이 알려졌다. 결국 재활에 1년을 더 투자했다.


3.4. 2021 시즌[편집]



파일:1631363463802100.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곽빈/선수 경력/202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데뷔 첫 선발 풀타임 시즌. 부침도 있었지만 로테이션에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첫 선발승을 올리고 한국시리즈도 경험하는 등 의미있는 시즌이었다.


3.5. 2022 시즌[편집]



파일:2022곽빈스페셜.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곽빈/선수 경력/202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전반기에는 기복이 심하고 승운도 따라주지 않는 쓰로워로 윤석민상 유력 후보였지만, 후반기에는 명실상부 두산의 새로운 토종 에이스로 각성했다. 팀은 포스트시즌 탈락을 맞았지만 선수 본인은 시즌 활약을 토대로 국가대표 발탁까지 이뤄냈으니 데뷔 후 처음으로 맞은 성공적인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3.6. 2023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곽빈/선수 경력/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월 한 달 동안 베어스 역대 최고의 선발 투수의 폼을 보여줬다.[6] 부상으로 인해 잠시 주춤했지만, 복귀 후 팀이 연패에 빠질 때마다 연패를 끊어내는 에이스의 면모를 과시하면서 알칸타라, 양의지와 함께 팀의 핵심 선수로서 자리매김했고, 풀타임 선발 데뷔 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시즌 10승에 성공했다.


4.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곽빈/선수 경력/국가대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8
두산
32
31
3
1
1
4
0.750
7.55
44
6
20
26
26
26
1.97
2019
1군 기록 없음
2020
2021
21
98⅔
4
7
0
0
0.364
4.10
78
7
91
96
50
45
1.59
2022
27
147⅔
8
9
0
0
0.471
3.78
143
13
71
138
69
62
1.38
2023
23
127⅓
12
(5위)
7
0
0
0.632
2.90
96
7
63
106
44
41
1.21
KBO 통산
(4시즌)
103
404⅔
27
24
1
4
0.529
3.87
361
33
245
366
189
174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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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이 둘 모두 배명고등학교 출신으로, 곽빈의 고등학교 대선배다.[2] 김경섭 감독은 투수 혹사를 시키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한 경기에서 여러 명의 투수를 계투시키는 투수진 운영을 자주 보여준다. 선수 보호 목적 및 고3 선수들의 진학에 필요한 성적을 위해 투구이닝을 조절해주고 있다.[3] 1차지명 확정 전까지 곽빈은 2017 시즌 투수로 15⅓이닝을 소화했는데 이게 팀내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이었다. 가장 많이 던진 투수가 20이닝 정도를 던졌고, 배명고는 거의 매 경기 3~4명의 투수가 기본으로 투입될 정도로 확실한 에이스가 없는 실정이다.(곽빈이 졸업한 2018년부터 투구 수 제한이 강화되어 이제 에이스라는 이름은 적어도 선수 층이 두터운 팀에서는 의미가 없게 됐지만.) 대회에서 총 12명이 등판하였다.[4] 셋이서 중앙테이블석에 직관 온 게 찍히기도 했고, 등번호도 잘 받았고, 공식 SNS가 유니폼 착용 백샷을 올려주었다.[5] 만약 토미 존 서저리라면, 곽빈은 고교 시절에 이어 또 다시 팔꿈치에 칼을 대는 것이다.[6] 종전 다니엘 리오스의 기록을 갱신하고 시즌 첫 다섯 경기 평균 자책점 신기록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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