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숙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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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소현세자의 딸
경숙군주 | 慶淑郡主


파일:경숙군주묘.jpg

경숙군주·박갱 합장묘 전경
출생
1637년(인조 15년)
사망
1655년(숙종 6년)
(향년 19세)
능묘
경숙군주·박갱 합장묘
경기도 군포시 도마교동 1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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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부모
부친 - 소현세자
모친 - 민회빈 강씨
부군
능산부위 구봉장(綾山副尉 具鳳章)[1]
자녀
슬하 1남
아들 - 구정상(具鼎相, 1653 ~ ?)
시호
경숙군주(慶淑郡主)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손녀이자 소현세자민회빈 강씨 부부의 3남 5녀 중 셋째 딸.[1]


2. 생애[편집]


1637년 출생했다.

왕의 손녀임에도 동궁일기심양일기에 출생에 관한 기록이 없는 탓에 몇월 몇일 어디서 태어났는지 불분명하다. 다만 1637년생이라는 기록이 틀리지 않았다면, 부모인 소현세자강빈이 상당히 극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때 만들어져서 태어났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바로 위 오빠인 원손 경선군이 태어난 게 1636년 3월 28일(양력 5월 3일)이었고, 이후 12월 14일(양력 1637년 01월 09일)엔 병자호란이 발발해, 부모가 헤어진다. 강빈은 강화도로 피난가고, 소현세자는 남한산성으로 가 항전한 것이다. 경숙군주가 태어난 1637년 1월 30일(양력 2월 24일)에 부모가 재회했고. 이후 볼모로 끌려 심양에 도착한 날짜가 4월 10(양력 5월 4일 )일이었다. 이후 강빈은 한달 넘게 아파 본국에서 어의를 부를 정도였다.

경숙군주는 이렇게 소현세자와 민회빈 부부의 삶이 급변하는 과정에 1637년에 태어났다. 오빠와의 달수 차로 보면 경숙군주는 궁에서 태어나지 못한 건 확실하다, 강화도 피난 중 태어났거나 심양으로 끌려가는 길에 태어났거나 심양에서 태어났다. 또 어느 쪽이건 만들어진 시기도 무난하진 않다. 병자호란 전이었다면 소현세자가 모후 인열왕후의 상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 잉태되었거나, 그게 아니면 심양으로 끌려오는 중에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경숙군주의 출생 기록이 없는 건 전란과 볼모생활 중 기록 시스템이 무너진 탓이 크지만 성리학적 가치관에 어긋나는 출생이어서일 가능성도 있다.[2]

언제 어디서 태어났건, 경숙군주는 어린 시절부터 심양에서 볼모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낳고 얼마 안되어 고국으로 돌려보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원손 경선군의 경우, 고국에서 컸고, 봉림대군의 군주가 낳은지 수개월 만에 고국으로 돌려보내지다 사망했단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여덟살 되던 해인 1645년 부모를 따라 조선에 귀국했거나, 혹은 조선에 돌아온 부모와 재회하게 되었는데, 그해 4월, 부친인 소현세자의 사망, 이듬해 4월 30일 모친인 민회빈이 사사되면서 동생 경순군주, 경녕군주와 함께 향교동에 머물게 되었다.

부친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왕실예법에 따라 귀국한지 얼마 안되어 정식으로 봉주가호[3] 후에 혼인을 했을 것이나 숙부 효종이 즉위한지 일년 후인 1650년 9월 8일 능성 구씨 봉장과 혼인을 한다. 이는 효종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다. 당시 청나라의 실권자인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은 조선의 왕녀와 혼인하겠다고 요구하고 있었는데, 효종은 '지금 조선의 왕녀들은 너무 어리거나 이미 혼인을 해서 곤란하다'라고 거짓말을 하던 상태였다. 그래서 서둘러서 혼인을 치룬 것. 경숙군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사촌인 효종의 딸 숙안공주 역시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슬하에 외아들을 두었고 군주는 1655년 11월에 19세의 나이로 요절, 능성부위도 그 다음해에 사망하여 생전에 부부가 작위를 받은 것이 아니므로 앞에 ‘증贈’을 붙여 표기한다.


3. 여담[편집]


경기도 군포시 대야동에 경숙군주와 관련된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소현세자의 딸인 경숙군주는 어려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여의고, 15세 되는 해에 능성 구씨 집안의 구봉장과 혼인하게 되었다.

그녀는 시집을 오면서 자신이 궁에서 기르던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데려 오지 않으려 했지만, 그 고양이가 먼저 군주의 가마에 타서 내리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시댁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살았다.

그러나 경숙군주는 아들 하나를 낳고 19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날부터 고양이도 먹이를 전혀 먹지 않다가 결국 9일 만에 굶어 죽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주인을 따라 굶어 죽은 고양이를 가엽게 여겨 경숙군주의 묘 밑에 고양이를 묻어 주었고 해마다 시제를 올릴 때에 고양이 무덤에도 헌주를 했다고 한다.

이 풍습은 1960년대까지도 이어졌다고 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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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의 언니들은 각각 12세, 2세에 요절했기 때문에 경숙군주가 장녀 취급을 받는다.[2] 영조도 장남 효장세자를 친모 숙빈 최씨의 상중에 후궁 정빈 이씨를 잉태시켜 낳았기 때문에 부왕 숙종에게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먹고 사가들이 출생을 기록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3] 왕녀를 정식으로 책봉하는 절차[4] 군포시사편찬위원회, 2008, 『대야동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