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대 똥통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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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고바우영감 링크[1]

1. 개요
2. 상세
3. 유사 사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958년에 동아일보에서 연재 중이던 김성환의 시사 풍자 만화 '고바우 영감' 때문에 일어난 필화 사건.


2. 상세[편집]


고바우 영감의 1958년 1월 23일 연재분에서 주인공 고바우가 "경무대[2] 치우는 사람도 권력이 있다"면서 당시 이승만 독재 정권을 풍자했는데 이게 그만 자유당 높으신 분들의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김성환은 연행되었고 그는 경범죄처벌법 제1조 9항 위반(출판물의 부당게재)[3]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아 벌금 450[4]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고바우 영감은 꾸준히 연재되었고 2000년 1만 회가 넘는 장기 연재 끝에 완결했다.

이 사건 이전에 김성환은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선거 없이 대통령직을 해먹은 자유당과 이승만을 비꼬는 시사만화로 이미 걸렸는데 당시 이걸 결사반대하다가 경찰들에게 끌려가 억지로 경무대 바깥으로 쫓겨난 야당 의원을 그리면서 고바우 영감이 아파하는 야당 의원에게 "아니? 어쩌다가 그리 다쳤습니까?"라고 질문하자, "퍼런 제복을 입은 개(경찰관)에게 물렸다오"라고 답변하는 내용이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시사만화계에 표현의 자유가 무한히 보장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독재 정권은 거듭해서 시사만화에 지속적인 탄압을 가하였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긴 했으나 현재도 '게이트키핑'이란 이름으로 신문사주와 데스크 주도의 검열이 횡행하고 있다.

하지만 김성환 화백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번 높으신 분들을 비꼬는 시사만화를 그리면서 명성을 날린다. 오죽하면 중앙정보부에서 '이 색히 안되겠다' 라며 아주 반죽여야 한다고 하던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헌데 6.25 전쟁에 같이 참전하여 어찌 알게 된 미군 장병이 미국에서 유명 신문사 간부가 되었기에 그를 함부로 처벌하면 혹시 미국 언론을 통해서 한국 정부에 대해 안 좋게 보도할 수도 있다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고 한다. 이는 김성환 본인이 은퇴한 중앙정보부 인사에게 세월이 지난 후 직접 들었던 말이다.

3. 유사 사례[편집]


  • 1909~1910년 대한민보 만평 삭제사태




  • 1986년 <깡순이> 작가 이은홍 구속 사건


  • 1987년 <반쪽이 만화집(최정현 작)> 압수 사건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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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무대 필화로 검색하면 나온다.[2] 청와대의 전신.[3] 타인의 사업 또는 사사에 관하여 신문지, 잡지 기타 출판물에 허위사실을 게재하거나 또는 부정의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사실의 진위를 막론하고 게재 또는 게재 아니할 것을 약속하여 금품을 받은 자. 2013년 법률 제11401호로 개정된 후 제3조 2항 1로 변경.[4] 1958년 기준으로 미화 1달러 환율이 500환을 약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