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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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캄보디아 국왕은 캄보디아의 국가원수 칭호이며, 현재 노로돔 시아모니 국왕이 재위하고 있다. 왕통 자체는 크메르 제국 이래 쭉 이어오고 있다.
2. 권한[편집]
전성기인 크메르 제국 시절에는 신왕(데바라자)[1] 라고 칭할 정도로 높은 권위와 절대권력을 동시에 가진 존재였고,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입헌군주제를 실시한 이후에도 캄보디아 제1왕국(1953-70) 시절에는 옆나라 태국 국왕 이상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지금도 헌법상으로는 상당한 권한이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실질적으로 훈 센 총리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체제라서 헌법에 명시된 국왕의 권한은 명목에 불과하다. 노로돔 시아모니 국왕은 왕궁에 유폐된 채 감시를 받으며 죄수처럼 살고, 왕궁 밖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거나 해외순방을 할 때도 항상 감시자들이 따라붙는 등 삶이 부자유하다.
3. 국왕 선거[편집]
대부분의 군주국에서 왕위가 세습인 것과 달리 캄보디아는 선거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국왕이더라도 스스로 후계자를 지명할 수 없고 국왕 사후 차기 국왕을 선출한다. 임기는 종신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제처럼 일정 연령 이상의 국민이면 누구나 선출될 수 있는 건 아니고, 노로돔 왕조와 시소와스 왕조라는 두 왕가의 30세 이상 남성 구성원들만이 피선거권을 가진다.[2]
선거권은 총리와 상하원 의장 및 부의장, 승왕[3] 등 9명으로 구성된 국왕 선출 위원회에 있는데, 현직 총리 훈 센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독재자라서 사실상 총리가 왕을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
아직까지는 노로돔 왕조 출신만이 국왕 선거에서 당선
4. 역대 국왕[편집]
4.1. 프놈 (부남)[편집]
- 소마 여왕 등
4.2. 첸라 (진랍)[편집]
4.3. 크메르 제국[편집]
자세한 내용은 크메르 제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4. 후기 크메르 왕국[편집]
이 당시에도 크메르 제국의 왕통 자체는 계속 이어졌으며 아래의 시대 구분은 왕조 교체가 아니라, 일본의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처럼 수도 이전에 따른 시대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 짝또묵 시대 (1431년~1525년)
- 롱 벡 시대 (1525년~1594년)
- 스레이 산토르 시대 (1594년~1620년)
- 우동 시대 (1620년~1863년)
4.5. 프랑스령 캄보디아[편집]
이 당시의 왕들은 프랑스의 허수아비로 전락한 상태였으며, 크메르 제국 시절부터 단일 혈통으로 이어지던 캄보디아 왕실은 노로돔 왕조와 시소와스 왕조라는 두 계통으로 분열되었다.
4.6. 캄보디아 왕국(괴뢰국)[편집]
일본 제국이 시아누크 국왕에게 독립을 선언하게 하여 수립한 괴뢰국이다.
- 초대: 노로돔 시아누크 (1945년)
4.7. 프랑스령 캄보디아[편집]
전후 일본이 철수한 뒤 프랑스가 귀환하여 다시 캄보디아를 식민지화했다.
- 4대: 노로돔 시아누크 (1945년~1953년)
4.8. 캄보디아 제1왕국[편집]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캄보디아 역사상 최초로 입헌군주제가 실시되었는데, 시아누크는 헌법 제정 이후에도 계속 실권을 장악했다.
4.9. 캄보디아 왕실연합정부[편집]
론 놀의 쿠데타로 인해 크메르 공화국이 수립되자, 시아누크 전 국왕이 국외로 도피하여 수립한 망명정부다.
- 초대: 노로돔 시아누크 (1970년~1976년)
4.10. 캄보디아 제2왕국 (현재)[편집]
1993년 왕정복고가 실현되면서 시아누크가 복위했는데, 이전과는 달리 실권은 전혀 행사할 수 없게 되었고, 캄보디아 역사상 최초로 선거군주제가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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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바(신)+라자(왕)[2] 두 가문은 본래 한 가문이었지만, 프랑스의 식민지배 시절 두 계통으로 갈라져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3] 캄보디아 불교의 수장[4] 훈 센이 노로돔 시아모니 국왕보다 1살 많아서 시아모니 이후의 국왕은 훈 센 사후에 결정될 가능성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누가 먼저 죽을지 알 수 없다.[5] 노로돔의 이복동생인데, 프랑스에 의해 노로돔의 자식들을 제치고 왕으로 추대되었다.[6] 노로돔 왕의 증손자이자 시소와스 모니봉 왕의 외손자로서 왕위를 계승했다.[7] 노로돔 왕의 손자이자 시아누크의 아버지인데, 아들에게 양위받아 왕으로 즉위했다.[8] 공식 왕은 아니라서 왕위는 공석이었다. 시소와스 코사막은 시소와스 모니봉 왕의 딸이자 수라마리트 왕의 아내, 시아누크 왕의 어머니라서 아버지, 남편, 아들이 모두 왕이었던 인물이다. 수라마리트 사후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아누크 전 국왕은 자신이 복위하거나 다른 왕족을 왕으로 추대하는 대신, 왕위를 공석으로 두고 어머니에게 의례적인 군주 역할을 맡겼다. 그리고 시아누크는 국가원수라는 직함으로 취임하여 사실상 다시 왕이 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