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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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 기록이 확인된 인물
김춘추, 김순정, 김옹, 김주원




1. 소개
2. 각종 매체에서의 을제


乙祭
생몰년도 미상.


1. 소개[편집]


신라 선덕여왕 때의 대신. 삼국사기에서는 선덕여왕 원년인 632년 2월에 선덕여왕으로부터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는 기록만 남아있는 인물이다. 기록은 적지만 국정을 총괄했다는 기록 때문에 을제가 역임한 대신이라는 관직은 상대등으로 보고 있다.

또한 그가 상대등을 역임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636년에 수품이 상대등이 취임하기 전까지 4년 동안 상대등을 맡은 셈이다. 그리고 다른 사례를 봐선 보통 상대등이 죽을 때까지 맡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등을 그만둔 636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위서 논란의 화랑세기 필사본에서는 김용춘, 음갈문왕과 함께 선덕여왕국서(남편) 중 한 사람으로 써 있다.

이름이 이찬의 다른 표기인 을찬(乙粲)과 자형이 비슷하기 때문에 원래는 이찬 관등으로 별도의 이름이 있었는데 오각으로 을제가 이름이 되어버리고 원래 이름은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 각종 매체에서의 을제[편집]



2.1. 드라마 선덕여왕[편집]


을제(선덕여왕) 문서로.


2.2. 드라마 대왕의 꿈[편집]


담당 배우는 이우석. 굉장한 고비중으로 각색된 선덕여왕(드라마)와는 달리, 여기서의 을제는 삼국사기에서의 비중처럼 직급만 높은 공기에 가깝다(…). 주로 알천과 같은 진영에서 상대 진영을 논박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상당히 강직한 성격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담이 실세가 된 이후엔 비담과 협력하게 되는데, 결국 비담과 척을 진 알천과는 달리 을제는 끝까지 비담의 편에 선다. 이후 난을 일으킨 비담이 열세에 몰리자 술을 마시며 반쯤 정신 나간 모습을 보이자, "저런 자를 내가 섭정으로 추대했다니"라면서 비담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 그러나 비담을 선택한 것은 잘못이었지만 비담이 정변을 일으킨 명분에는 찬동했기에, 김춘추의 포섭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이미 비담을 배신할 것을 결심한 사진에게 그 자리에서 칼에 찔려 죽는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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