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거란 전쟁/평가

덤프버전 :





1. 개요
2. 평점
2.1. 평론가 평
3. 전쟁 관련 묘사
4. 외교 관련 묘사와 평화적 주제
5. 인물 해석 및 묘사
5.1. 고려 측 인물
5.2. 거란 측 인물
5.3. 호불호 요소
6. 기타 반응


1. 개요[편집]


2023~2024년에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의 34번째 작품 고려 거란 전쟁의 평가를 다룬 문서.


2. 평점[편집]


[include(틀:평가/TV 프로그램 평점,
IMDb=tt26767539, IMDb_user=8.1, ## IMDb_highlight=display,
왓챠=tlnNZ0o, 왓챠_user=4.0, ## 왓챠_highlight=display,
키노라이츠=124191, 키노라이츠_light=87.04, 키노라이츠_star=3.6, ## 키노라이츠_highlight=display,
TMDB=218290, TMDB_user=88, ## TMDB_highlight=display,
MyDramaList=731965-the-goryeo-khitan-war, MyDramaList_user=8.1, ## MyDramaList_highlight=display,
Rakuten Viki=40249c, Rakuten Viki_user=9.5, ## Rakuten Viki_highlight=display,
NME=korea-khitan-war-review-old-school-k-drama-charm-3546510, NME_user=5, ## NME_highlight=display,
)]


2.1. 평론가 평[편집]


★★★★★ 이 잘 쓰인 한국 사극은 잔혹한 전쟁과 생존의 이야기로 여러분의 관심을 사로잡을 것이다. This well-written Korean historical series will keep you hooked its bloody tale of war and survival.

— 푸아 지웨이 (NME) #[1]

이쯤 되면 시청료는 물론 270억 제작비도 전혀 아깝지 않다.

— 정덕현 (엔터미디어) #[2]


3. 전쟁 관련 묘사[편집]



3.1. 전반적 묘사[편집]


전작 태종 이방원에서 전투신의 연출이 너무 처참하다는 평이 많았기에 본작에서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다행히 프롤로그의 귀주대첩 장면을 보면 전장에서 나름대로 대열을 유지하는 병사들의 묘사를 높게 칠만하고, 프롤로그에서 1인칭 시점으로 검차 아래로 적병 다수가 파고드는 장면이나 한국 사극에서 오래간만에 검차를 선보인 것도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3] 장수가 전장에서 싸울 때에 투구를 벗지 않는다는 점도 다수의 KBS 대하드라마와는 달리 잘 묘사되었다.[4] 프롤로그에서 중갑기병대가 등장할 때의 연출도 크게 호평을 받았는데, 잠깐의 등장이지만 역대 대하사극 최초로 부대 전원이 찰갑 형태의 갑옷과 면갑까지 갖춰 입고 말에게도 마갑을 입힌 형태로 등장하여, 재현도도 높은 동시에 위엄이 넘치는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위기의 순간 전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뿔나팔을 불며 언덕 위에서 나타난 대규모 기병대의 모습이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로한 구원군을 연상케 했다는 평가도 많다.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동원령 선언을 통한 군사 징집, 인원 수에 맞는 식량을 비축하는 과정, 검차 등의 무기를 제작하는 등의 장면이 상세하게 나온 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각 분야에서 활발한 준비가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이러한 장면을 그동안의 대하드라마에서는 이상하게도 보기 힘들었으며, 그나마 나오던 것도 군대 지휘 정도가 전부였기에 이 또한 장족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군상을 통해 순전히 전투만이 아닌 정치 영역에서의 전쟁도 이유가 있게 그려지고 있다.[5] 본작의 강감찬의 말대로 한 사람의 능력으로 막을 수 없고 온 고려가 총력을 다 해야하는 일이기에 전쟁이라는 점을 잘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프롤로그 중 거란군의 경갑기병대가 언급만 되고 활약이 안 나온 점 및 7회의 통주 전투에 나온 거란군의 철갑기병대를 보면, 태종 이방원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극에서 기병전 묘사를 제대로 진행할 만한 마땅한 액션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 아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간 나온 한국 사극 드라마의 기병전 묘사 중에서는 10년 전의 정도전보다 훨씬 더 발전한 최상급에 속하지만 아직은 제작여건의 한계와 연출 기술의 부족으로 갈 길이 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전투에 따른 묘사의 규모 차이가 너무 크다. 흥화진 전투의 경우 TV 사극 중에서는 역대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퀄리티의 전쟁씬을 선보인 반면, 통주 전투는 회전 한 번 하고 기습으로 어이없게 강조가 잡혀버렸고[6] 서경 전투에 이르러서는 싸우는 거 몇 초와 출격 장면 외엔 죄다 대사만으로 날려버렸다. 게다가 흥화진 전투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카메라에 동원되는 인원 자체도 너무 적고 인원을 불리는 CG도 쓰지 않아서 부대 규모가 굉장히 초라해보인다. 다만 애초부터 인터뷰에서 흥화진 전투와 귀주 대첩에 크게 힘을 들였다고 했고 실제로 흥화진 전투는 굉장히 뛰어났던 것을 보면, 한도가 있는 제작비 안에서 애매하게 분배하느니 차라리 힘을 확실하게 줄 부분을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를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사실 KBS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제작비 약 270억원 투자가 명색이 전쟁 사극이라는 본작의 제작비로는 그렇게 많은 금액이 아니다. 옆동네 MBC의 로맨스 사극 연인의 경우엔 20회차 방영분에 300~400억이 들었다고 언급되고 있다. 해당 사극도 병자호란의 참상을 다루는 등 전쟁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란 도중 연인들의 비극적인 사랑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때 이건 KBS가 평소 강조하는 수신료를 제대로 못 써먹는다고 할 수 있다.

3.2. 제2차 여요전쟁[편집]



3.2.1. 흥화진 전투[편집]


5회부터 시작된 흥화진 전투에서는 당시 시대상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7] 중세의 무게추식 투석기 사용법을 정확하게 재현하였다. 게다가 5회는 빛과 색감을 잘 활용한 세련된 영상미로 찬사를 받았는데, 결말부에 양규가 낀 깍지에 불길이 비치며 거란군이 투석기로 화염을 두른 돌을 던지고, 관측병이 거리를 조절하며 군사들이 다시 돌을 여럿 던지면서 어두운 하늘이 점차 밝아져 양규가 지키는 흥화진을 향해 날아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다. 특히 관측도구까지 사용해가며 상대방 투석기의 위치를 파악해 점차 사거리를 맞춰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8] 현대에도 정밀한 포격이 힘든데, 근대 이전 투석기는 말할 것도 없다. 공성측이나 수성측 양쪽에서 투석기를 사용하는 것은 반지의 제왕이나 킹덤 오브 헤븐에서 묘사된 바가 있지만, 이렇게 투석기의 사거리나 타점 조절을 한 것은 고려거란전쟁이 처음이다.

6회에선 기존 사극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던 전쟁에서 진형을 갖추고 처절하게 싸우는 묘사가 큰 호평을 받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심한 부상을 입으면서 싸우는 양국의 병사들, 화살을 너무 많이 쏘아 시위가 망가져서 피범벅인 손으로 다시 각궁을 재정비하는 양규, 틈틈이 물을 마시고 밥을 먹다가 입에 묻은 밥풀을 뗄 시간도 없이 분전하는 고려군, 피로 물들어진 성벽 아래에 쌓인 거란군의 시체 등의 여러 장면들을 통해 잘 묘사하였다. 거란군이 고려 사람들을 포로로 잡은 다음 방패막으로 삼아 성벽을 올라오려고 할 때에도 고려군이 고뇌 끝에 결국 화살을 쏘는 묘사 역시 비슷한 평을 받았다.[9] 기존 사극에서 소위 지휘관라는 사람들이 독려 혹은 독전만 하고 지휘는 안 하는 것에 비해, 독특하게 화살로 지시하여 불화살을 따라 맹화유를 투석기로 날리거나 효시를 발사하여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거란군에게 화살을 쏘는 식으로 지시를 내리는 양규의 모습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기존 사극의 전투씬에서는 적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화살을 쏘고 가까이 있으면 칼을 들고 싸우는 천편일률적인 연출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나 일반적인 전투나 연출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연출만 놓고 보면 그냥 칼싸움 잘하면 이기는 거고, 칼싸움 못하면 지는 수준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10] 반면 고려거란전쟁의 흥화진 전투는 고려군이 맹화유를 활용하여 화공을 가하거나 성 주변에 함마갱을 파서 적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철저하게 준비를 해왔음을 잘 보여준다는 점도 호평받았다.

기존 사극에서 중요 장수를 제외한 병사들은 그냥 죽어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흥화진 주둔 병력은 확실히 정예로 묘사된다. 방패병들이 적의 화살을 막고 궁병이 대기하다가, 양규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방패병이 비키고 궁병이 화살을 쏜 뒤에 물러나면 방패병이 다시 적의 화살을 막는다. 연출만이 아니라 3천명이 40만명을 막은 전투 결과도 작중에서 강조해서 이들의 성과로 확실히 언급한다. 다만 투석기를 발사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7일 간의 전투라기에는 백병전이 거의 없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일도 거란군의 시체가 바닥에 쌓여있는 묘사 등 여파 자체는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과 별개로 과정이 생략되었으며, 예산 부족으로 인해 성벽도 급조한 세트 느낌이 여실히 보인다.

7회에서는 흥화진 전투의 여파가 묘사되었는데, 고려군의 승전이면서도 전쟁에서의 승리가 마냥 통쾌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 가족을 잃은 백성들[11]과 몸이 만신창이가 된 병사들을 통해 잘 드러났다. 다만 흥화진 전투 다음에 흥화진의 양규가 병사들과 봉화를 올려 승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매복해 있는 거란군과의 전투 자체는 창작이라서 중세의 정보 전달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굳이 필요했냐는 반응도 있는데, 특히 이 싸움이 묘사된 7회에선 후술할 통주 전투 외에 개경의 장면들과 전쟁터의 장면들 간에 분량 조절이 아쉽다는 의견이 있다.

프롤로그 장면 한정으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있었는데, 5회 말미부터 피드백이 되었는지 고려군과 거란군 장면에서 모두 자막이 삽입되었다. 다만 일점사 같은 용어를 해설 자막까지 동원해가며 차용한 것은 현대어투 치고도 다소 어색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극 중에서 일점사가 현대의 사격 분야도 아니고 게임 분야에서 사용되는 뜻으로 나오기도 했고, 사극에서 자막은 당대의 표현을 해설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더욱 그렇다.


3.2.2. 통주 전투[편집]


5~6회의 흥화진 전투는 중세 전투의 역사 재현도가 높아지고, 전투의 처절함을 잘 살린 연출이 돋보여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7회에서 다뤄진 통주 전투 연출은 원작자 길승수 포함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12] 일단 통주 전투의 전초전에서 검차를 앞세워 고려군이 질서정연 하게 진을 치고 다양한 장병기를 이용해 거란 기병을 막는 장면까지는 호평이다. 한국 사극에서 이렇게 전근대 군대가 대열을 잘 갖추어 전투에 나서고, 전열을 잘 유지한채 다양한 중장병기(투석, 쇠도리깨, 장창)를 사용해 기병을 격퇴하는 보병의 모습을 잘 묘사한 적은 거의 이번이 처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위기를 끝까지 잘 이끌었으면 좋았겠지만, 여기서 통주 전투의 스케일을 더 묘사하지 못하고 거란군의 야밤 기습으로 강조가 사로잡히고 고려군이 무너지는 스케일이 너무 초라하게 묘사되었다.

사실 7회가 시작하자마자 흥화진 전투의 결과가 대충 스킵되고 이미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묘사된 개경 상황 장면으로 시간을 질질 끄는 등의 불안한 요소들이 많았다. 이런 불필요한 장면들이 늘어날수록 전투 묘사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3][14] 그리고 막상 통주 전투 부분이 시작되자 아니나 다를까 약 3분 가량만 묘사된 전초전이 끝난지 5분만에 야율분노가 소수 병력만 이끌고 기습을 꾀하는 장면이 나오고, 힘 한번 못 써보고 2분만에 강조가 고려군 본진 한복판에서 붙잡히는 급전개와 개연성 없는 전개를 보여준다.[15] 불과 4천의 병력이 수성에 나선 흥화진 전투 장면이 6회에서 30분 이상을 할애해 제대로 각잡고 묘사된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가볍게 넘어갔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통주 전투는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인 귀주 대첩보다 큰 규모의 회전으로 역사적으로도 대충 다루기 어려운 전투이다.[16][17] 따라서 허망하게 무너진 고려군이 왜 졌는지에 대한 빌드업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전투가 빨리 끝나서 급전개가 너무 심한 편이다.

사실 통주 전투 초반부의 화면 화질이나 고려군, 거란군 병사들의 질서정연한 연기는 작중 초반 맛보기로 보여줬던 뛰어난 퀄리티의 귀주 대첩 장면 분위기와 거의 유사하다. 이에 비하면 삼수채 전투 장면의 경우 화면 화질, 어수선한 분위기라든지 주변 환경 묘사 퀄리티 차이가 전초전 묘사와는 다른 것이 매우 극명해서, 확실히 삼수채 전투 묘사는 본작 제작진이 힘을 덜 쓴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 이 외에도 태종 이방원 촬영 당시 있었던 말 학대 및 죽음으로 인해서 그런 것인지 고려군 보병의 뛰어난 묘사와 달리 거란군 중기병대가 격파당하는 장면이 맥아리없이 진행된 문제가 발생했다.[18] 이에 대응해 기병이 닥치기 전에 방패 뒤에서 적의 동태를 살핀 뒤 호각을 불어 검차를 출진시키는 고려군 보병의 연출은 한국 사극 연출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 연출이라고 볼 수 있었기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통주 전투의 전반적인 묘사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영상 작품이라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 시청자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일상 생활 장르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등장 인물이 사는 장소를 보여줄때, 그리고 타국으로 장소를 이동했을때 전체적인 분위기나 장소를 조감도로 보여준다. 특히나 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는 드라마인데 전투 장소, 병력들이 어느 정도 크기로 진을 치고 있고, 어떻게 진법을 구사하고 있는지 스케일을 보여주는게 걱정 될 만큼 없다.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마치 CG를 쓸 여력이 안되고 사람을 많이 동원을 못했다는걸 숨기려는 듯 클로즈업이 많다. 드론 촬영 기법으로 거란 진영과 고려 진영이 어떻게 대열을 이렇게 유지하고, 어떻게 대치하고 있는지를 조감도로 잠깐만이라도 보여줘야 할 필요도 있었다.[19][20]

어떤 면에선 14년전 천추태후제3차 여요전쟁을 날림 처리하는 등 최악의 역사 재현을 보여준 작품 중 하나인 것과는 별개로 통주 전투만큼은 전장을 어느 정도 넓게 조명해서 최대한 규모감 있는 싸움으로 묘사하려는 노력을 하거나 강조가 초전에 승리하고 나중에 패배하는 장면을 제대로 구분해서 넣는다든가, 패전 후 포로로 잡혀 항복했단 기록이 있는 이현운을 처음부터 배신자로 몰아 패전 책임 몰빵하는 판타지를 써서라도 삼수채에서 고려군이 지는 개연성이라도 챙겼는데 본작의 통주 전투는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진 고려군이 왜 졌는지 빌드업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전투가 너무 빠르게 끝나버려서 급전개가 너무 심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전인 흥화진 전투가 더 크게 느껴지고, 본전인 통주 전투는 그냥 난전처럼 묘사된 문제가 생겼다. 어찌 되었든 간에 8회에서 통주 전투의 여파가 잘 묘사된 것과는 별개로 7회에서 고려사 최대 규모 전투 중 하나인 통주 전투의 '기승전'이 이렇게 허무하게 연출된 것은 변함이 없다.[21]


3.2.3. 기타 전투 관련[편집]


원래부터 생략하거나 날림으로 처리하는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10회의 서경 전투에 들어와 생략씬이 더 심해졌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전투 장면은 없고 출격하는 장면만 보여주고 전령의 대사로 때우는 게 전부일 정도인데, 더 자세히 풀자면 야율융서의 진격이나 공성전은 아예 묘사되지도 않았고, 지채문의 승리는 출격과 귀환 장면만 나왔다. 또한 이후 패하는 장면에서 화살비가 쏟아지는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들어와 패하여 쫓기고 있다고만 이야기되며, 대도수가 사로잡힌 부분은 아예 보여주지도 않고 전령의 대사로 대신해 비판 받는 중이다. 그럴만한 것이 드라마 방영 전 부터 제작비 약 270억원을 투입했다고 홍보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주연, 심지어 단역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납득가는 스토리가 스케일의 부실함을 만회하는 중이다. 또한 최소한 장수들이 무기를 휘두를 때 화면의 흔들림을 통해 무게감이 더해졌으며, 잠깐 나오는 지채문과 대도수 등이 거란군에 맞서는 난전 묘사에도 화면의 구도와 자연광 덕분에 볼만하다는 평도 있다. 아울러 양규의 야간정찰 당시 기도비닉을 위해 말굽에 천을 감싸는 디테일한 연출들로 리얼리티를 살리려 노력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제작비와 분량 문제 때문인지 전투의 규모 자체는 축소되었지만, 대신 전투 내의 자잘한 리얼리티와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이를 메꾸고 있는 셈이다. 이와는 별개로 아이러니한 점은 서경 전투가 묘사된 10회에서 시청률이 10%에 처음 도달했다는 것이다.

11회에서 그대로 이어진 조원과 강민첨 등이 이끈 서경 공방전은 비록 흥화진 전투 묘사만큼은 아니었고 장면도 짧게 묘사되었지만, 충분히 절망적이고 처절한 상황을 잘 그려내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절령에서 지채문, 장연우, 황보유의 등이 거란군을 최대한 막아내던 장면 역시 기병은 없지만 제파전술로 고려군을 끊임없이 괴롭혀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묘사를 잘 보여주었다. 다만 여전히 동네 싸움처럼 보일 정도로 부족한 스케일과 개경 성문이 열리는 장면을 빈약하게 묘사하여 지적 받았다.

더행히 12회에서 연출된 곽주성 탈환은 이전 회차의 아쉬웠던 부분에 비하편 큰 호평을 받았다. 기록이 부족한 곽주 탈환 과정을 잘 메꾸었다는 평을 받았는데, 양규가 먼저 효시를 날려 지시를 보내자 성을 사수하려고 혼란스러워진 거란군 사이에 먼저 포로로 들어간 김숙흥 등이 내란을 일으켜 성문을 열고, 마찬가지로 포로로 잡혔던 다른 백성들이 악에 받쳐 거란군을 학살하는 묘사는 작품의 주제였던 거란과의 전쟁이 온 고려가 총력을 다해야하는 일이라는 점을 잘 보여줬다는 반응이 많다.[22] 또한 당시 거란군이 개경을 함락한 과정과 백성들에게 저질렀던 만행은 지상파 드라마 치고는 영아 살해도 묘사되는 등 굉장히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4. 외교 관련 묘사와 평화적 주제[편집]


거의 기존 한국 사극에 대한 안티테제에 가까울 만큼 파격적인 외교 묘사가 많다.

그동안의 한국 사극에서는 외교와 전쟁을 민족주의적 자부심이라는 면에서 다뤘으며, '평화를 위한 굴종'은 거의 금기에 가까운 묘사이다. 오직 원 간섭기~조선시대만이 예외일 뿐이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고려를 외왕내제로 묘사하면서도[23] 고려가 거란에 사대한다는 걸 매우 분명하게 명시적으로 묘사하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즉위 초 현종을 '정치 초보의 무지함'으로 일축하였다[24]. 동시에 고려의 대(對)거란 적개심도 노골적으로 묘사하여, '종주국이면서 동시에 주적'이라는 거란의 특수한 위치를 부각하고 있다. 민족적 자부심을 부각하는데 특화된 여요전쟁 시대를 다루면서도, 오히려 거꾸로 민족주의적 사관과 선을 긋는 것이다.[25]

'민족적 자부심'을 내려놓은 것과는 정반대로, 본작에서는 '평화'라는 주제가 오히려 부각된다. 본작은 고려 거란 '전쟁'을 다루면서도 전쟁이 결코 영광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전장의 참혹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전쟁이 양국뿐만 아니라 다른 교류국에도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대신들의 발언을 통해 잘 묘사하고 있다. 본작의 고려가 기존의 그 어떤 한국 사극보다도 뻔뻔하고 교활한 마키아벨리즘적인 외교술을 전개하는 것도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26] 본작의 고려는 '하늘 아래 부끄럼 없이' 목종은 시해당하지 않았다는 거짓말까지 불사하고 '친조한다고 했지 항복한다곤 안했다'는 말장난까지 하면서 시간을 번다.[27] 특히 승하한 왕[28]의 사인(死因)을 숨기는 사기는 기존 사극의 한국 묘사에선 거의 금기에 가까운 것이며, 심지어는 거란에 진실을 이실직고한 여진족을 고려가 적반하장으로 여진은 신의를 모르는 종족이니 믿지 말라며 매도하기까지 한다. 얼마나 고려 측의 기만전술이 강조되는지 오죽하면 팬덤에서 보이스피싱 드립이 나올 정도. 단순 사실관계 공방에서는 고려의 외교야말로 뻔뻔함의 극치이지만, 본작은 이런 뻔뻔하고 비겁한 짓을 해서라도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는 걸 계속해서 강조한다.[29] 동시에, 본작이 단지 싸움만이 없는 '거짓 평화'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현종이든 강감찬이든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영토를 잃은 채 종전하는 건 반대하고 있다. 즉 전쟁은 단호히 반대하지만, 그게 끌려간 백성을 꼬리 자르듯 유기하고 상황을 모면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동시에, 거란 측의 외교 역시도 굉장히 뻔뻔하게 묘사된다. 거란의 대외 명분은 "역적 강조를 토벌하자"이다. 즉 '책봉된 제후왕의 억울한 원한을 황제가 갚아준다'라는, 겉으로는 참 아름답고 유교적이며 의리가 넘치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실상 거란은 목종과 강조에게 아무 관심이 없고 그저 침략을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웠을 뿐임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야율분노가 독단적으로 강조를 생포해 오자 분노한 소배압이 일갈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명분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야율분노는 역적 강조를 잡았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항변하나 이에 소배압은 대놓고 "그럼 철군하라는 말이냐? 황제 폐하께서 원하시는 건 강조가 아니라 이 고려 전체를 정벌하는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종합하자면, 본작의 외교는 거란이든 고려든 굉장히 뻔뻔하고 추잡한 진흙탕 싸움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추악한 진흙탕 싸움의 끝을 보여줌으로써, 침략은 나쁘며 '국가와 백성의 진정한 평화'가 가장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다. 애초에 침공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면 이런 추악한 모습은 보일 이유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5. 인물 해석 및 묘사[편집]


1회부터 세 명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현종, 강감찬, 양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우선 강조나 고려 황실의 묘사부터 먼저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리하게 스토리를 현종이나 강감찬에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목종과 천추태후, 강조의 서사 모두 비추어줬다. 이에 반해 강감찬은 1회에서는 프롤로그인 전쟁 장면에 8분 가량만 출연하였고 현종도 1회에서 반쯤 지나서야 나온다.[30]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을 거쳐 사병이 완전히 혁파되고 중앙집권이 완비된 조선시대의 왕권과는 전혀 상반되게 묘사되는 고려의 왕권 묘사도 특징이다. 조선은 대한제국 이전까지 한 번도 스스로 황제국을 자처한 적이 없음에도 왕권은 역대 한국사 왕조 중 가장 강력했던 반면, 고려는 외왕내제로 내부적으로는 황제를 스스로 칭하고 있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 왕권은 조선 시대보다 약했다. 이는 한국사 기준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중세[31]라는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데, 중세 시대 대부분의 국가들은 봉건제 사회였고 중앙의 행정력이 강하지 않아 지방 영주[32]들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이다[33]. 이를 잘 나타낸 것이 극초반 김치양의 왕 시해 시도와 뒤이은 강조의 난이다. 왕이 무능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치양은 일국의 왕을 우습게 여기고 왕의 어머니와 사통해 사생아까지 낳는 모습을 보인다. 강조는 한술 더 떠 무능한 황제를 본인 손으로 시해하고 허수아비 황제를 옹립하기까지 하는, 전형적인 중세 유럽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왕 앞에서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목이 날아가던 조선과는 상반되는 부분.

또한, 주인공들을 포함하여 극의 인물들의 대사가 기존 KBS 사극 같진 않고, 대사가 비교적 가벼운 편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점이 오히려 젊은 층을 유입하기에 좋은 점일 수도 있다. 과거 사극들(2010년대 초반까지)은 그 편수가 100회 내외로 길었고 내용도 길게 이어가는 편이었고, 당시 시대의 한자나 사자성어를 인용하는 일도 자주 있었던 상황과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본의 투박함과는 별개로 각 인물의 감정선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고, 기록을 적절히 반영하여 각색하였기에 이런 스타일에 의외성을 느끼는 반응도 있다. 그래도 덕분에 여러 인물들을 다각면에서 조명하거나 실제 역사에서의 행적에 맞게 적절히 빌드업을 진행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당시 시대 정황상 여러 인물들이 어지러이 오가는 일종의 군상극이기에 이러한 스타일의 각본이 오히려 적절할 수도 있다.


5.1. 고려 측 인물[편집]


방영 첫 주에는 현종(대량원군)의 인물 해석에 관하여 그가 자존심만 앞세우며 태후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 하는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어 좀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다.[34][35] 일단 현종은 17~18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이후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누구보다 냉정한 판단을 할줄 아는 인물이었으며, 본작의 큰 관건은 몇 개월 후면 왕위에 올라 엄청난 결정들을 해야 할 현종이 저렇게 저돌적인 성격에서 여요전쟁이라는 시급한 상황을 어떻게 냉정하게 대처하는지를 묘사하는 방식일 것이다.

방영 둘째 주부터는 반응이 더 좋아졌는데[36], 3회까지의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만 하는 철없고 저돌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승려들까지 입막음으로 죽이려 하는 자객들을 보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각성하고 왕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나온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던 최 상궁과 대화하며 누구였는지를 기억해내어 과거에 쫓겨날 때 달래준 일에 대한 감사를 표하였고, 후에 목종의 명으로 그를 지키러 온 군사들이 나타나자 그녀에게 찾지 않겠다고 말하여 빨리 도망갈 것을 재촉한다. 이렇게 본작에서는 현종의 초반부 캐릭터를 아직 미숙하지만 성장이 빠르고, 위기의 순간에 좋은 판단력을 보여주며 적이라도 일단 최소한의 자비를 베푸는 인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4회에서 현종이 고려와 거란의 관계에 대해 빠르게 배우는 모습 및 비록 즉위 직후에는 계속 밀리지만, 결국 논리정연하게 강조를 질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의 캐릭터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었다.

지승현이 연기한 양규는 초반부터 나라에 끝까지 충성하는 무인이라는 점이 강조와 대조되어 무결한 인간상을 보여주어 시청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으며, 6회에서 고려의 포로들을 죽이게 되는 상황을 겪은 것이 그가 훗날 다른 포로들을 구출하는 장면에 대한 암시라는 의견이 많다. 한편 최수종이 연기한 강감찬은 그가 대외적인 인식과는 달리 본래 장군이 아닌 문관인데다가 4~7회까지는 남들과 타협할 줄 몰라서 융퉁성이 부족한 인물로 그려졌지만, 8회부터는 현종에게도 쓴소리를 하게 된 이후 점차 심경의 변화를 겪고 대신들의 의견을 수용하되 자신만의 신념을 따라서 계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여 그 또한 어떻게 보면 성장형 캐릭터라는 평을 받았다. 11회에선 계속해서 항쟁을 주장할 때 전쟁을 이기는 것만 주장하지 이겨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또한 그의 성장을 암시하는 부분인지 주목할만하다.[37]

백성현이 연기한 목종의 경우 그간 대하사극에서 묘사된 웬만한 암군과는 다르게 재상들을 믿어주는 모습, 황실의 후계만큼은 신경 쓰는 모습, 그리고 의외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면모를 보여 여러 복합적인 캐릭터성으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감형 캐릭터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대하사극 치고는 천추태후 이후로 오랜만에 1회부터 동성애나 근친, 애정 묘사 같은 게 적극적이라 화제가 된 면도 있다.[38] 또한 그동안 거의 부각되지 않았던 고려 전기의 성문화[39] 및 당시 고려 왕실의 개족보를 어느 정도 조명하였다.[40] 덕분에 초반부에는 현종보다는 오히려 목종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가 극 중 시해당한 이후에도 그의 이른 퇴장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원종이 연기한 강조는 3~4회가 되어서야 권신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서 1~2회에서 묘사된 덕장으로서의 면모와 크게 대조되는 바람에 캐릭터 변화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5회에 들어서 현종의 결단을 내리는 태도에 대해 사실상 인정하였고, 그가 후에 부월을 하사하면서 전쟁에서 이기면 아무도 그를 역적으로 매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격려의 말을 전하자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바치는 장면은 훗날 강조의 최후에 대한 좋은 빌드업이라는 반응이 많았다.[41] 통주 전투 및 삼수채 전투의 묘사가 너무 허무하게 진행되어 시청자들 사이에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맹세했던 그의 최후만큼은 사서의 기록을 적절히 반영하여 마무리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5.2. 거란 측 인물[편집]


거란국 고위층 인물들의 경우 재현이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목 민족의 부족제와 농경 민족의 군현제를 연합한 이원(二元) 체제를 같은 국가 내에 공존하는 거란족 인물들과 한족 인물들을 통해 잘 묘사하였으며, 유목민족으로서의 생활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몽골을 방문하여 실제 유목민들의 생활상을 촬영한 점 덕분에 호평을 받았다. 갑옷 외에 변발 양식 등도 높은 수준으로 재현되었기에 일각에서는 고려 측 재현보다 더 낫다고 평하였다. 거란군 자체도 꽤나 강력한 부대로 묘사되었는데, 특히 6회에서 고려군이 파놓은 함마갱에 보병들의 발이 빠지자 이를 하루만에 다 메우는 묘사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고위층의 문화 재현과는 별개로 아직까진 그저 적국의 인물들로만 묘사되어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김혁이 연기한 거란의 황제 야율융서는 첫 원정인만큼 미숙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유목 민족의 잔혹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대국의 군주답게 위엄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 호펑을 받았다. 제2차 여요전쟁을 일으킨 원인이 축약된 것과는 별개로 승천태후(예지황후)에 대한 아들로서의 효심을 보이거나 소배압을 신뢰하는 장면들을 통해 그의 가족에 대한 정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강대국의 황제로서의 자존심이 강하다고 묘사되며 자신에게 복종하는 이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성격도 보이는데, 강감찬이 올린 거짓 친조 요청에 속은 후 그가 약탈(타초곡)을 금하여 달라고 청하자 흔쾌히 허락하고 포로들에게도 제대로 대접을 하겠다고 말한다. 한편 강조에게 '야만'인이라는 모욕을 받자 그를 처참하게 죽이는 장면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엄벌을 내리는 모습과 더불어 강대국인 거란이 국력이 약한 고려에 비해 중원의 문명을 늦게 받아들여 어느 정도 문화적인 열등감을 느끼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견이 있다.

김준배가 연기한 거란의 장수 소배압도 젊은 군주를 보필하는 노회한 신하로서 강감찬과 대립각을 세우며 크게 호평을 받았다. 거란 측 인물들 중에서 머리가 좋은 인물로 묘사되어 일종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등 그저 적국의 장수로만 묘사되는 다른 이들에 비해 확고한 인물상이 구축되어 있고, 정치적 수완도 다른 거란 측 인물들에 비해 독보적이다. 의외로 인격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데, 휘하 장수들이 고전하자 조언을 주기도 하면서 패전의 책임으로 그들을 질책하지는 않는다. 한편 배우의 얼굴과 분장이 꽤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아서 실제 거란 사람 데려와서 연기하게 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으며, 배우 본인 특유의 사시와 쇳소리도 무섭게 들린다는 반응이 있다.

5.3. 호불호 요소[편집]


일단 극이 전개되면서 강감찬, 현종이 극의 중심으로 등극하여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드라마 초반부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의견이 존재하는데, 몇몇 시청자들은 아마도 과거의 대하사극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극의 초반을 이끌어 갔어야 하는 천추태후, 김치양에 노련한 배우를 배치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나름의 위기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어야 하는 천추태후는 연기의 무게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김치양은 비중이 적어 권신이라는 느낌조차 주지 못했다.[42]

목종의 경우 혼군으로 묘사된 것에 대해 은근히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가 처음 등장하기 직전에 개경을 묘사할 때에 융성하고 풍요로운 시장의 모습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시청자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백성들의 삶을 빈곤하게 묘사하거나[43] 차라리 목종이 직무를 유기한 상태에서 재상들이 업무를 보고 판단을 내려 고려를 주도해 나가는 내용을 더 삽입했다면 나았을 부분이라는 의견도 있다.[44] 다만 극 중에서 다루는 목종 당시의 문제는 임금의 태업, 계승 갈등, 총신의 발호 같은 정치 문제에 국한되어 행정이나 민생 문제까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수준이고, 강조도 정치 문제와 함께 그로 인해 국방 문제에 대한 대비가 소홀해지고 있는 것에 경각심을 가질 뿐이지 민생을 걱정하지는 않는다.[45]

거란국 고위층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과는 달리 거란군 엑스트라들은 작위적인 느낌이 대놓고 들 정도로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다. 특히 6회에서 고려 사람들을 포로로 납치한 거란 병사들을 인간이 아닌 악마적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야만성을 보여준답시고 뜬금없이 원시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차용하여 동물처럼 소리를 내거나 행동을 묘사하는 1차원적 방식을 동원했다. 거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거란은 수당시대를 거치면서 중원의 문물들을 받아들이며 북방민족 치고는 꽤 문명화 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요나라 시기에는 그 절정에 이르면서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는 민족이었다. 사실 거란군이 40만의 대군인데다 다국적군에 출신 성분도 다양해서 개개인마다 규율이 천차만별이긴 했을테고, 실제로 사람을 납치하고 죽인데다 그 과정이 절대로 인도적일 리는 없기 때문에 극 중에서 묘사한 잔혹함 자체는 틀렸다고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고도의 문명을 지닌 나라의 병사가 흡사 원시인같이 행동했던 묘사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볼 수 있을 것이다.[46]

7회에서는 고려와 거란의 장수들 묘사에 모두 비판을 받았는데, 뜬금없는 거란 장수들 간 경쟁 구도가 보여 소배압의 군재도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고, 부월씬으로 대표되던 강조의 복잡한 심리도 잘 활용되지 못했다. 특히 7회 한정으로 소배압은 활약이 없는 무능한 장수처럼 보여졌고[47], 삼수채 전투에서 야율분노는 지도만 보고 난생 처음 온 적국의 산을 야간에 완벽하게 넘어와서 도통사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잡아가는 모습을 보인다.[48][49] 때문에 흥화진의 승리로 희망을 얻는 부분이 강조의 대패로 무너지는 극적인 장면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였고, 거란군의 위엄과 그로 인한 강조의 절망감을 적절히 그려내지 못하였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6. 기타 반응[편집]


각 화가 일정한 분량이 아니라서 1~4회는 60여분 정도의 안정된 분량이었지만 5회부터는 50분 이하까지 떨어지는 등 분량이 약간 일정하지 않은 면이 있고 중간 광고 투입으로 인해 분위기나 긴장감이 갑자기 꺼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느낌도 있다.[50] 특히 5회부터는 대부분의 회차[51]가 48~49분이라서 생각보다 일찍 끝나 놀랐다는 얘기가 있었다.[52]

5회 마지막 장면에서 거란군의 투석기들이 불이 붙은 수많은 화염구를 흥화진 성에 던지고 이에 덮쳐지는 양규가 이걸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딱히 어떤 역사 장면을 오마주한 게 아니라 토탈 워: 삼국 DLC 팔왕의 난 트레일러에서 사마영사마옹사마예와 공성전에서 대결하는 장면 중 성에 던져진 화염이 자신에게 떨어지자 사마예가 이를 바라보는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글들이 있었다.# 두 장면 모두 당시에는 없었던 회회포를 사용한다는 점도 비슷하다.[53]

프롤로그 장면을 제외한 해설의 부재 역시 특이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있다. 그나마 이를 강감찬의 말로 해결하거나 당시 백성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상황을 조명하였기에 너무 다큐멘터리 같지 않아서 좋다는 평도 있지만, 그간 대하드라마에 비해 이질적이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

아울러 전근대시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초반부에는 대표적으로 전쟁소식을 황성문 앞에서, 동요하는 개경백성을 다리에서 막아서 직접 전하는 황제의 모습이나 황제의 조서를 관리나 서생같이 글을 알법한 계층이 아닌 남루한 차림의 백성이 대독(代讀)하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 등이 있다.

감성적이면서도 웅장한 느낌의 오프닝 음악을 비롯한 OST의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뛰어나다.

[1] 영국의 유명 잡지 NME의 해당 기사는 4회까지 시청하고 작성된 리뷰이며, 본작이 여요전쟁 시기를 고전적인 스타일의 사극으로 조명한 점 및 목종 역의 백성현의 연기와 강감찬 대 강조의 대립을 호평하였다. 또한 현종의 성장을 기대하는 듯한 말을 적기도 하였다.[2] 해당 기사는 6회까지 시청하고 작성된 리뷰이며, 문화예술 평론가 정덕현은 본작이 묘사하려는 것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전쟁의 이유와 양상 및 소위 '난세의 영웅들'이 싸우려는 이유라고 평하였다.[3] 7회에서 묘사된 통주 전투의 검차와 비교하면 모습에 은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약 10년에 가까운 시대의 변화 및 제3차 여요전쟁의 준비 과정에서 검차의 발전을 암시한다는 평이 있다. 참고로 해당 검차는 14년전 사극 천추태후에서 나오던 통주 전투 검차 소품 재탕이다. # 당시에는 워낙 드라마가 엉망이라 검차가 나오고도 제대로 활용도 못해보고 등장이 종료되었다.[4] 이전 KBS 대하드라마 중에서 전장에서 꼬박꼬박 투구를 착용시킨 마지막 작품이 13년 전근초고왕이다.[5] 과거의 작품들이었다면 교전 내지는 항쟁을 부르짖는 주인공이 항복론을 찍어누르는 묘사가 강했던 데에 비해, 이 작품에서 항복론은 국가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보다 우세의 상황에서 교섭을 이어가야 한단 논리를 통해 강세를 보이며 항전론은 주역의 입장이지만 현종의 억지로 진행될 뿐이고 강감찬은 끝없는 항전을 주장하다 결국 후대의 평가를 생각해 당대의 백성을 져버린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 상황이 이어졌으며, 결국 항전론의 주역인 둘도 항전의 상징인 개경을 버리는 것에 동의해 현종이 몽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6] 실제 역사에서는 고려군이 몇 차례의 회전에서는 승리했지만, 야율분노가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속하고 강력한 종심돌파로 반격해 방어선을 단숨에 깨부수고 지휘부가 있는 후방까지 빠르게 밀고들어온 것에 가까웠다.[7] 작중 등장한 무게추식 투석기는 망고넬에서 트레뷰셋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적 형태로, 무게추와 인력 밧줄 꾸러미를 함께 사용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무기는 동양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주로 인력이 모자라 최소한의 인력으로 더 큰 돌을 날리려 했던 서양에서 발달했다. 이후 여기서 최소한의 인력마저도 배재하고 무게추만으로 투석하는 무기가 바로 트레뷰셋으로, 몽골군이 이 트레뷰셋 전문가를 중동에서 고용하여 중국의 양양성 공격에 사용하였다. 회회포(回回砲)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무기는 동아시아에서 인력식 투석기가 아닌 다른 종류의 투석기가 사용된 유일한 사례다.[8] 엄밀히 말하면 극중 등장한 거란군의 관측도구는 훗날 몽골군이 이슬람권을 정복하면서 얻은 수학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여요전쟁 당시 거란군이 사용할 수는 없다. 연출의 디테일을 살려내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자료가 많이 남은 몽골 관련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고증오류이기는 하나 전쟁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감각을 잘 전달해준다는 점 때문에 호평이 더 많은 편이다.[9] 이 장면 한정으로 신파가 아니냐는 의견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서 실제로 거란군이 고려군 앞에서 포로들을 학살해서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기록을 토대로 각색한 것이고, 훗날 양규가 포로들을 구출하는 장면을 위한 빌드업으로 볼 여지가 있다. 게다가 어쭙잖은 신파와 달리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 간의 사랑이나 감정선이 아니라 엄연히 전쟁 중에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도 여러 사례가 존재하는 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연출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존 한국 영상물에서 신파가 비판받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신파가 과해서 그랬던 것이지, 신파를 넣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10] 이는 비단 드라마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영화 명량 역시 이순신의 대장선에서 백병전을 하는 연출이 대거 등장하는 것을 두고 '조선군이 저렇게 칼싸움을 잘하는데 배가 13척이라서 위험하다 이런 얘기는 왜 한 거냐?' 는 식의 반응이 꽤 있었다. 이는 김한민 감독이 이 피드백을 받아들였는지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포격전 연출이 훨씬 많아지면서 개선되었다.[11]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리기는 해도 신파성 장면이라는 반응이 나름 있다.[12] 이는 사실 본작이 100% 사전 제작이 아니라서 발생한 문제로 2023년 11월 중순의 역사저널 그날 회차를 보면 적어도 10~11월까진 아직 통주 전투를 촬영 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3] 사실 작가가 태종 이방원 때부터 무슨 스페셜 재방 보여주듯이 매끄럽지 않게 쓸모없는 부분은 많이 늘리고 중요한 사건은 툭툭 던져서 스킵하는 식으로 각본상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런 문제가 고려 거란 전쟁에서도 재발하였다.[14] 심지어는 본작의 원작인 고려 거란 전쟁 소설에서도 통주-삼수채 전투를 비롯한 주요 전투들은 고려군과 거란군 장수들이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하며 극의 재미를 살리는 장면으로 묘사되고, 강조의 최후도 충분히 독자들이 납득 가능하게 설명되었다. 각본을 맡은 작가의 각색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작 묘사[15] 당장 흥화진의 고려 병력은 거란 본대가 남하한 뒤 남아있던 포위망조차 제대로 뚫지 못해 전령이 아닌 봉화를 올려야 했을 정도였는대, 수십 기에 불과한 거란 기병이 기록상 30만이나 되는 고려군이 지키고 있는 고려군 본진을 기습해 강조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물론 강조의 지휘부 근처에 있는 야산을 이용해 기습했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지형이 있다면 다른 곳보다 경계를 더욱 강화해야 정상이다. 강조가 제대로 된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바로 사로잡힌다는 전개는 현실성이 없다.[16] 기록만 놓고 보면 50만명이 맞붙은 전투이며, 이 수치가 과장일 가능성이 높더라도 사실상 역대 여요전쟁의 모든 회전 중에선 가장 큰 전투인 것은 분명하다. 강조의 본군이 격파된 삼수채 전투도 원래 야율분노의 거란군이 수많은 고려군을 전사시키고 포로로 잡은 스케일 큰 국지전이다. 물론 초반부 통주 전투에서 기를 다 빼버릴 순 없기에 이해할 수는 있지만, 후에 진행될 대규모 회전에 대한 기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사료상의 삼수채 전투의 전개와도 차이가 나는 묘사라 혹평이 많다. 웹상에선 야율분노가 다크템플러 폭탄드랍, 혹은 아비터 리콜이라도 시전한거냐며 아연해 하는 반응들이 나왔다.[17] 사실 나름대로 상황 설명을 넣기는 했는데, 우선 거란 측이 숨겨진 루트를 통해 침투했고, 강조가 그들이 군량미를 노린다는 보고를 접하고는 주변 군사들을 그 쪽으로 보내는 장면이 있었고, 부도통사 장연우가 후방 군율을 잘 잡지 못하는 장면이 빌드업으로 나오기는 했다. 물론 거란 측은 군량미가 아니라 강조 자체를 노리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허무하게 잡혔던 것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연출이 뭔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야율분노의 군대가 본진을 들쑤시고 들어오는 장면이 하나도 없이 그냥 보고로 때운 다음 갑자기 강조가 있는 본영으로 전부 등장하니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빌드업이 하나도 없다며 어이없어하는 것이 당연하다.[18] 말이 뾰족한 것을 두려워해서 눈을 가리라거나 하는 표현은 중국의 명작 사극영화인 명장에서도 청나라 기병이 이런 제스처를 취하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로 노련한 유목 기병의 말에 대한 순간 대응을 잘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적절했으나 그 외의 묘사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말이 어떤 병장기에도 맞지 않고 사람만 공격당해 붕괴되는 장면은 너무 이질적인 묘사였으며, 이 외에도 40만이 동원된 전쟁임에도 기병이 너무 소수라 명색이 유목제국의 정예병인 거란 기병이 빈약하게 묘사됐다. 기병의 수가 많을 때 주로 묘사되는 땅울림이나 흔들림 역시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19] 전체적으로 통주 전투를 묘사하는 카메라의 시야가 너무 좁아서 거란 기병도 너무 노골적으로 가깝게 잡아주고, 어느 정도 대규모 병력이 검차진 쪽으로 몰려온다라는 느낌이 시청자들에게 전혀 없었다. 때문에 통주 전투의 묘사에서 이 드라마는 수십만 대군이 저기 어디 화면에 잡히지 않는 곳에 주둔해 있다는걸 추측하고 상상하라고 시청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흥화진 전투도 사실 기록대로 거란군 40만이 한번에 몰려오는 연출은 딱히 없었지만, 이는 작은 성을 지키는 소규모 병력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것을 그들 시점에서 보여주는 부분이라 시야가 제한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무려 대회전인 통주 전투를 저렇게 허무하게 스킵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불친절한 부분이며, 연출 역량의 부족 또는 분량 조절 실패로 볼 수 있다.[20] 물론 제한된 제작 환경에서 나름대로 역량을 짜내어 3분간 대규모 기병전을 잘 묘사한 부분은 호평하는 의견이 적지 않은 편이다. 촬영에 동원된 말은 10~20필 정도로 보이고, 그나마도 CG로 일부 장면을 보완해 넣은 것이 보이지만, 컷을 빠르게 전환하고 기마병이 진군하는 역동성을 강조하는 연출 기법을 사용해서 최대한 대규모 회전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노력이 엿보인다. 다만 아무래도 케이블이나 OTT 오리지널이 아닌 지상파 드라마라서 영화처럼 실감나고 잔인한 묘사를 할 수 없는 한계는 있다.[21] 사실 방영 직전에 제작발표회 때부터 흥화진 전투 및 귀주 대첩에만 크게 공들인 것을 밝히긴 했지만, 퀄리티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특히 5회에서 현종이 강조에게 부월을 수여하는 장면이 본작의 명장면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었는데, 이때 생긴 기대감을 7회에서 배신당해 허탈해 하는 시청자 반응들이 많다. #1 막판에 강조가 잡힌 부분도 차라리 원 역사를 반영해서 담요로 싸가는 편이 낫지 기존에 강조가 보여주던 위엄에 비하면 너무 볼품없고 오히려 웃기는 장면처럼 보였다는 비평들도 있다. #2[22] 여담으로 유성이 나오지 않은 부분은 애초에 고려사에서도 곽주에 유성이 떨어졌다는 점만 기록했을 뿐이고, 유성을 통해 곽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설은 기록 자체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일각에서의 추측일 뿐이기에 이를 굳이 묘사할 필요는 없다.[23] 엄밀히 말하면 고려의 외왕내제 여부는 학계에서도 논쟁적이긴 하지만, 이건 본작이 역사를 왜곡한 게 아니라 '상충하는 학설들' 중 일부를 극의 전개를 위해 취사선택한 것일 뿐이다.[24] 이런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현종의 모습이 실제 역사 속 현종의 모습과 너무 달라 아쉽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이는 현종의 캐릭터를 빌어서 역사나 정치외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 시청자에게 당시의 상황과 이후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고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장치로 활용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현종이 결과적으로 성군으로 재위기간을 마치긴 했으나 즉위 당시에는 명백히 후계자로서 필요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급하지 오른 것이 사실이다. 사서에 현종이 처음부터 정치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기록도 없는 만큼 이러한 각색이 실제 역사 속 현종과 다르다는 근거는 없다.[25] 기획의도에서 애국 마케팅을 보였기에 본작도 그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 모습이었기에 의외였다는 반응이 있다. 동시에 민족주의적 사관과 국뽕을 싫어하는 역덕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26] 이 표현만 보고 근본적으로 고려가 사악하고 저열한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한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중원 및 만주 세력과 비교해 늘 약자의 포지션이고, 당시 고려가 힘대힘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거란과 동등하진 않더라도 최소 밀리지 않으려면 겉보기에는 뻔뻔하고 교활해보이는 기만책과 외교 전술을 써서라도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를 속이고 뒤통수를 치더라도 나를 노리는 적을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사기가 아니라 전술이자 책략이다. 더불어 정치와 외교에 선악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강감찬이 지적하듯 애초에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먼저 쳐들어온 건 거란이다.[27] 또한 외교는 아니지만, 백성들에게 전장 상황을 속이는 것도 기존 사극과 달리 옹호된다. 상식적으로 봐도 이쪽이 더 현실적인 것이, 백성들의 동요로 후방이 붕괴하면 더 큰 재앙이 나기 때문이다. 현종은 "전쟁을 이겨도 백성들의 신의를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지만, 이는 "그런 생각은 일단 살아남고 나서 하자"고 반박된다.[28] 정확히는 시해한 왕.[29] 이런 고려 거란 전쟁의 성향을 상징하는 대사가 강감찬의 입에서 나온다. "폐하께서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운 것이 전쟁이옵니다. 인간이 살아서 겪는 유일한 지옥이 바로 전쟁이란 말이옵니다." 전쟁을 마냥 영웅적이고 낭만적으로만 묘사하는 중국의 현대 프로파간다 영화들과 그야말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입장.[30] 양규 같은 경우에는 (프롤로그로 나온 강감찬을 제외하면) 세 인물 중 가장 먼저 등장했고, 천추태후에 비해서 등장이 굉장히 빠른 편이기는 하다.[31] 조선은 중세 후기부터 근대까지 걸친 중근세 왕조이다.[32] 고려의 경우 호족[33]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의 묘사도 그렇고 실제 역사에서도 왕건은 거느리던 비빈의 숫자가 그야말로 맘까페를 개설해도 될 정도로 많았는데, 이들이 모두 지방 호족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으로 혼인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다.행복한 너 고려여, 결혼하라 실제로 왕건의 비빈들 중에는 첫날밤 이후로 평생동안 왕건의 얼굴도 못 보고 죽은 비빈들도 많았을 정도였다고.[34] 사실 현종이 아예 야심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궁에서 쫓겨나 강등된 시절에 작은 뱀이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며 나름 와신상담하는 모습도 보여주고는 했다. 본작의 현종이 황제가 되어서는 그 무게에 짓눌려 갈팡질팡하면서 흔들리는 모습이 나오는 캐릭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엔 황족이라는 자신감만 가득 차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캐릭터로 해석되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선 당연히 그럴 수 있어 보이지만, 그게 '여요전쟁을 승리로 이끈 강인한 명군 현종'이라는 대다수 한국인의 실제 역사 인물 감상과 꼭 일치하는 캐릭터 해석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평도 있다.[35] 사실 현종은 왕족이긴 하지만 부모의 불륜으로 인해 출생했고 또, 그 때문에 왕위 계승권은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출가를 할 수밖에 없는 신세인 데다가 여차하면 숨을 수 있게 토굴을 파놓고 김치양과 천추태후가 암살을 위해 사람을 보내면 숨곤 했을 정도였으니 현대인 입장에서는 성격이 자신만만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현종의 이미지는 목숨 부지도 어려운 상황에서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거쳤다가 강조라는 권신에 의해 꼭두각시로서 옹립되었으니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설령 격렬한 성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고난의 인생사로 인해 이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심이 강하며 현명한 신하들의 보필을 받는 것을 꺼리지 않는 외유내강형 인물로 생각할 것이다.[36] 특히 현종을 연기하는 김동준의 경우 1~2회에는 발성이 사극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진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점차 발전해 왕위에 오른 4회부터는 힘 없는 소년 군주에서 점차 군주의 위엄을 갖춰가는 성장형 군주의 역할에 잘 맞는 연기를 보여주어 호평을 받고 있다.[37] 대신 여요전쟁의 결말을 아는 현대의 입장에선 절대로 있어선 안됐을, 항복을 주장하는 다른 신하들의 말이 왜 설득력이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이점도 있다고 할 수 있다.[38] 4회에서도 사촌 관계인 현종원정왕후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기에 이런 측면에서 또 화제가 되었다.[39] 동성애자인 목종 외에 김치양과 사통으로 아들을 낳았던 태후는 흔히 알려져 있었으나, 태후의 교성 때문에 부처님이 노했냐는 드립과 초반부의 개경 전경을 보여주는 장면의 마지막에 나오는 연인의 키스신 등이 기존 사극과 다른 느낌을 줘서 신선해하는 반응이 있었다.[40] 작품에서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목종은 태조 왕건의 3대손(증손자)이지만 1/8이 아니라 1/2이 왕건의 피로 친가외 외가 모두 통틀어 증조부가 태조 왕건 단 한 명 뿐이다. 목종의 부모인 경종천추태후사촌간 혼인이었고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도 모두 태조 왕건의 자녀들로 이복남매끼리 혼인하면서 생긴 일이다. 현종의 경우 숙부(1/2왕건)조카딸(2대손, 1/2왕건)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로 모계로는 3대손이고 부계로는 2대손이지만 1/2이 왕건의 혈통이며 목종과도 부계(당숙-당조카)와 모계(이종사촌)를 통틀어 모두 혈연으로 엮인다.[41] 동시대를 다룬 JTBC의 다큐멘터리 평화전쟁 1019에서도 현종이 강조에게 부월을 수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해당 작품에서 강조는 부월을 자기 멋대로 부여잡고 왕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오만함을 보인다. 즉위 초기의 현종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해당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본작에서는 강조가 부월을 받들고 감개에 젖은 듯한 복잡한 감정을 보이고 있으며, 현종도 왕으로서의 위엄을 차려 오히려 역적을 감복시키고 동기부여까지 해주는 현명한 군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다.[42] 특히 이민영의 경우엔 비슷한 시기를 다루는 모 드라마처럼 천추태후를 미화하고 띄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연기하는 캐릭터의 힘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아들을 휘어잡는 위엄보다는 배우의 미모가 돋보인다는 평이 많다.[43] 흔히 무역 대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대중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최소 절반을 상회하는 높은 소출 세율과 허술한 구휼 제도로 인해 고려의 중하위 계층 민생은 전성기에도 거의 항상 파탄 수준이었다. 고려도경에서는 고려의 백성들이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다(然其爲人寡恩)라는 대목으로 빈곤함을 돌려 말하고 있으며, 다수의 학자 사이에서도 고려의 국가적인 부유함과 별개로 민생은 피폐한 시간이 더 길었으리라는 것은 사실상 합의된 내용이다.[44]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묘당(廟堂)과 재상들이 회의와 직무를 하는 것이 묘사되어 시청자들이 국가의 상황을 파악하게 하였다.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회의나 직무수행을 거의 등장시키지 않고, 대부분의 국가 상황 중 특히 거란과의 관계를 변방의 강조와 양규의 대화만으로 때우고 있다.[45] 실제 목종 항목에도 보면 상세히 나와있지만 목종은 초반에는 열심히 정치를 하였으나 계속되는 어머니의 섭정과 김치양이 본격적으로 권력을 가지게 되면서 정치에 염증이 난 모습을 보이기에 이 묘사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이는 목종의 대사나 신하들의 대사를 통해서 여러번 강조된다.[46] 물론 한국 사극 특성상 적군 묘사가 완전히 공평할 수는 없지만, 거란 고위층들은 상당히 카리스마 있고 현실적인 악역으로 묘사한 반면, 유독 병사 묘사만큼은 기존 한국 사극들의 그 어떤 적군 엑스트라보다도 과장된 게 아이러니하다.[47] 다만 8회에서 소배압은 고려군의 전멸이 목표였기에 야율분노가 강조와 수뇌부만 잡고 오는 바람에 고려군이 전부 흩어져 섬멸하기 어려워지자 야율분노에게 하루만 더 있었으면 회전으로 고려군을 전멸시킬 수 있는데 일을 더 키웠다면서 일갈한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야율분노는 정당하게 회전에서 검차를 돌파한 후 기병대를 이끌고 강조를 납치했는데다가 후에 소배압과 함께 개경을 불태운 공을 인정받은 공신이었기에 실제 인물에 비해 조금 격하된 묘사였다고 볼 수 있다.[48] 이 장면 자체의 개연성이 좀 많이 이상한 편인데, 아무리 작중 고려군 대다수가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정예병이 없지는 않을 것인데 최고 지휘관을 지키는 고려 병사들도 없고 제대로 싸우는 병사들도 거의 없다. 심지어 군량미 창고를 치는 이중트랩의 경우 전날 밤에 처음 본 고려군 30만이 먹을 식량 창고를 단번에 알아채는 모습도 석연치 않고, 아무리 고려군이 궤주하고 있다고 해도 소수의 거란군 특작부대가 고려군 사령부 한복판에서 도망도 안 가고 강조를 잡아다가 불을 피우고는 그 위에 매달아 크게 떠들며 조롱하는 장면은 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3 그것과는 별개로 고려군이 와해되어 도망가는 장면 자체는 애초에 대다수가 농민이기에 사기가 금방 꺾인 것으로 볼 수 있어 크게 이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49] 야율분노의 묘사도 문제인 것이 소배압이 연이은 패전에도 아율분노를 옹호하고 목숨을 구명해 줬는데도 야율분노가 갑자기 뜬금없이 전공 때문에 소배압을 견제하는 소인배로 묘사되었다.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해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앞의 복선도 없는 어이없는 전개이다.[50] 예를 들어 6회에서는 1차 흥화진 전투로 피를 말리는 전투가 벌어지는데 중간에 이걸 딱 끊고 갑자기 성상 폐하께서 등장해서 할미넴이랑 변비약 광고를 진행해 많은 이들이 뿜었다. 거기다 종료 후에는 우측 배너광고로 강감찬의 상조회사 광고도 매회 나온다.[51] 54분 분량의 8회 제외.[52] 사실 전작 태종 이방원뿐만 아니라 2014년 정도전 이후 KBS 대하드라마는 극 초반부에는 원래 1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50분 이하로 분량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2TV로 방영되기 때문에 전후반+중간 광고까지 포함해야 1시간 정도 진행된다.[53] 무게추식 트레뷰셋 투석기는 11세기를 다루는 본작으로부터 한 세기 후인 12세기에 서양과 중동에서부터 점차적으로 무게추를 사용한 무게추식 투석기, 즉 우리가 아는 형태의 트레뷰셋 투석기가 등장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고려 거란 전쟁 문서의 r1242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고려 거란 전쟁 문서의 r1242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8 09:20:35에 나무위키 고려 거란 전쟁/평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